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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열린 기자회견 모습
 4월 3일 열린 기자회견 모습
ⓒ 정치하는엄마들 김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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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정치하는엄마들이 다시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섰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기업 맥도날드의 만행에 대한민국 공무원과 대한민국 검찰이 동조했다면 그건 곧 국가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뜻에서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기업에선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고, 공무원은 기업의 편의를 봐주고, 검찰은 공중 보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한 기업에 대해 아무 말이 없는데 아이가 '내가 욕심 부려 벌받는다'는 가슴 찢어지는 말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짐을 받아내고 세상을 바꾸는 것, 그것 뿐이어서다.     

시은이(가명) 엄마와의 만남은 201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전 공동대표는 아이 엄마를 만나고 돌아와 정치하는엄마들 온라인 회의방에 그 내용을 공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언니들, 이거 사건 내용을 보시면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그런 문제입니다. 꼭 읽어봐주세요."

사건 경위서를 회람하던 회원들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상태가 심각했다. 또래 아이들을 둔 엄마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슬프고 화가 났다. 아이 엄마가 맥도날드를 형사고소해서 검찰이 압수수색까지 해가며 조사를 했지만 맥도날드는 불기소 처분되었다고 했다.

그 많은 패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이렇다. 2016년 6월에 생산된 패티에서 장출혈성대장균이 검출되었다. 검사를 시행한 세종시 가축위생시험연구소는 6월 말, 이 사실을 패티 납품업체인 맥키코리아에 통보했고, 맥키코리아는 맥도날드에 통보했다. 당시 납품된 패티의 양은 무려 2000박스, 27톤 분량.

장출혈성대장균이 검출되면 즉시 이 사실을 보건 당국에 보고하고 해당 제품을 회수, 폐기해야 하는 것이 축산물위생관리법상의 원칙이다. 그런데 맥도날드는 해당 패티의 재고가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패티가 모두 소진되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회수/폐기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00박스에 달하는 패티는 아무런 제재 없이 모두 사람들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은 패티가 팔렸는데 아픈 아이가 하나 뿐이라면 그저 운 나쁘게 걸려든 것 뿐, 맥도날드의 책임은 아니라고.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오염 가능성 있는 맥도날드 패티의 공급량이 어마어마했다는 사실이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맥도날드 패티에서는 2016년 6월과 11월, 그리고 2017년 8월, 세 차례에 걸쳐 장출혈성대장균이 검출되었는데, 해당 패티의 전체 유통량 중 회수/폐기량은 11.7%밖에 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괜찮았을지라도, 누군가에겐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잔인한 우연? 누군가에겐 닥칠 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다른 일들처럼, 이 일에 관해서도 대다수의 우리는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해 연말에 열린 '위해식품 규제 관련 현행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16~2017년에 맥도날드 햄버거 섭취 후 심각한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증상을 보인 아동의 수는 공식적으로 접수된 건만 다섯 건이다.

그리고 알려진 것처럼 2017년 9월에는 전북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은 초등생들이 비슷한 증상을 겪기도 했다. 오염 사실을 알고 즉시 회수/폐기 처리했다면 겪지 않을 수 있었을 일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 중 다수가 어린 아이들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장출혈성대장균은 햄버거 패티 뿐 아니라 다른 식재료에서도 흔히 검출된다. 실제로 과일, 상추 같은 채소, 심지어 물에서도 장출혈성대장균이 검출되는 사례가 전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다른 식재료 때문일 수도 있는데 맥도날드에 책임을 묻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제대로 짚어야 할 것은 대장균이 검출되었을 때 맥도날드의 대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90년대에 햄버거 패티의 장출혈성대장균 오염 문제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비극을 겪은 미국에서는 장출혈성대장균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즉시 해당 제품을 납품 받은 마트에 '판매 중지 및 공표'가 시행되고 회수/폐기 조치에 들어간다.

그렇게 해도 이미 해당 제품을 섭취하고 아프게 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최대한 빨리 사실을 공표해 피해를 줄여야 함에도 그런 위험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이미 다 팔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재고를 모두 팔아치워 평소와 다름없이 어마어마한 이윤을 남겼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직무유기이며 범죄행위다.  

맥도날드 아웃!

바로 그래서 정치하는엄마들은 맥도날드를 상대로 단체 고발을 하고, 불매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책임을 묻고 바로잡지 않으면 언제고 이 일은 다시 돌아와 내 아이를, 내 아이의 친구를, 내 친구의 아이를 위협할 것이 뻔했다.

지난 1월 30일, 정치하는엄마들 외 8개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3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단체고발장을 접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체고발 소송 비용 마련을 위해 전용 계좌를 개설하고, 단체고발에 참여하는 사람들로부터 1만원의 소송비용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SNS를 통해 '맥도날드 아웃' 이라는 손피켓을 들고 가까운 맥도날드 점포 앞에가 인증샷을 남기는 릴레이를 제안해 이어오고 있다.
 
가까이에 맥도날드 점포가 없는 경우 이렇게 만들어 릴레이에 동참하기도 한다
 가까이에 맥도날드 점포가 없는 경우 이렇게 만들어 릴레이에 동참하기도 한다
ⓒ 정치하는엄마들 윤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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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는 자사의 글로벌 프랜차이즈를 관리감독하기 위한 최소한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맥도날드 표준 사업 방침'(McDonald's Standards of Business Conduct)을 만들어 공표해 놓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공중 보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한 한국 맥도날드의 행태는 맥도날드 본사의 방침을 위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피해 아동의 엄마는 한국 맥도날드, 패티 납품업체인 맥키코리아, 한국 맥도날드의 지분을 100% 가지고 있는 맥도날드 미국 본사(글로벌 맥도날드), 그리고 맥키코리아의 지분을 80% 가지고 있는 미국 키스톤 푸드를 상대로 민사 소송도 함께 제기했다. 그 첫 재판이 바로 이번 주 금요일, 4월 5일에 열린다.

하지만 수십년 된 글로벌 기업 맥도날드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따위 없는 한국 땅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나올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 맥도날드의 직무유기는  분명 공중보건에 위해를 가하는 '반사회적' 행위다. 이런 행위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 금전적 보상 의무를 지움으로써 기업의 행위에 책임을 부여하는 게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다.

잘 알려졌다시피 미국에서는 82~87도 사이의, 과도하게 뜨거운 커피를 제공하면서 화상 주의 안내를 하지 않아 소비자에게 하반신 3도 화상을 초래한 맥도날드에 대해 16만 달러의 손해배상 명령이 내려졌다. 10년 이상 커피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화상 환자가 발생했는데도 책임을 회피해 왔고, 불필요하게 높은 온도로 커피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잠재적 위험성을 알면서도 영업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는 게 큰 이유였다.

한국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있었다면 맥도날드 본사가 지금처럼 뒷짐만 지고 있는게 가능했을까? 맥도날드에 대한 단체고발, 그리고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도 더 이상은 이런 일을 용납할 수 없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픔으로 연결되는 엄마들

피해 아이의 엄마로서 정치하는엄마들에 도움을 요청했던 최은주씨는 이제 정치하는엄마들 회원으로서 다른 활동도 함께 해 나가고 있다. 매일 밤 10시간씩 복막투석을 해야 하는 아이 곁에서 잠 한 번 편히 자지 못할 엄마가 밤낮으로 단체의 다른 활동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고 손발을 보태는 걸 보며, 이것이야말로 정치'하는' 엄마의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 특히 환경보건과 돌봄, 학교 급식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은주 언니의 모습을 보면, 또 다른 아이의 아픔을 막아내야 한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1993년 미국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 라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햄버거를 먹은 사람들에게서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증이 대규모로 발생했을 때, 피해 아동의 부모들은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모여 미국 사회의 식품안전/위생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단체를 조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체 S.T.O.P.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피해 당사자로서 식품위생/안전 문제에 목소리를 냈다. 각종 식중독 균에 대한 지식과 정보 확산, 공중보건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책임 촉구, 관련 법령과 행정 절차 정비 등에 힘써온 이 단체의 배경에는 한순간에 자식을 잃은 아픔을 공유한 부모들, 그리고 그 아픔에 공감하며 손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렇게 손잡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연결되어 이어져야 한다. 은주 언니의 손을 잡은 우리의 손을, 누군가가 더 잡아주길 원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가 있든 없든 이렇게 아픔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바로 그 아픔과 상처 덕분에 단단하고 강하게 연결될때,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이미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맥도날드 퇴출 캠페인 페이지: McOut.org
맥도날드 단체고발 소송 관련 고발장 전문: https://cafe.naver.com/politicalmamas/3641


태그:#맥도날드아웃, #정치하는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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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활동가로 살고 싶은 사람. 아이의 선천성 희소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T 증후군)'을 계기로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다.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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