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텝포드 와이프>(1975) 포스터

영화 <스텝포드 와이프>(1975) 포스터 ⓒ Palomar Pictures

  
1970년대 미국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게 된다. 위기 속에서 미국 사회가 겪은 변화는 가부장제의 균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승전을 경험한 아버지들은 영웅과도 같았고 그들은 가정 내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위기는 미국의 많은 가정을 빈곤으로 몰아넣으며 아버지의 위치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영화 <스텝포드 와이프>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남편들은 무너지는 가부장적 위상을 되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눌려 있던 자신을 지키려 한다. 영화는 이를 스릴러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스텝포드 와이브스>에는 당시 시대가 요구한 이상적인 아내상, 어머니상이 등장한다. 이는 여성을 개성과 인격을 지닌 존재가 아닌 규격에 맞춘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영화는 아마추어 사진작가 조안나(캐서린 로스)가 남편을 따라 스텝포드라는 마을을 향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뉴욕을 떠나 가족들과 함께 외곽의 스텝포드로 떠나는 조안나는 출발 전 마네킹을 바라본다. 마네킹은 '이상'이 잘 구현된 사물이다. 옷을 전시하기에 완벽한 신체비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네킹은 이후 작품 전개에 대한 은유로 작용한다.

이상하리만치 완벽한 아내들
  
 <스텝포드 와이브스> 스틸컷

<스텝포드 와이브스> 스틸컷 ⓒ Palomar Pictures

 
조안나는 스텝포드 마을에서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아내들이 너무 완벽하다는 점은 그의 시선을 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바랄 법한 '이상적인 아내상'이다. 아내는 집안일에 충실하고 정숙하고 예의바르며 남편의 말에 순종한다. 조안나가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모습이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다. 수동적이고 예속되어 있지 않다. 조안나가 사진작가를 꿈꾸듯 개인이 이루고 싶은 꿈이나 소망이 있기 마련이다. 헌데 작품 속 여성들은 오직 가정이 최우선이다. 부엌일을 좋아하고 남편만 바라보는 그 모습에 조안나는 의문을 품는다.
 
그 의문은 남편이 가입했다는 '남성협회'로 인해 더욱 증폭된다. 순종적인 아내들은 모두 협회에 가입된 남성들의 아내였던 것. 남편은 그 협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조안나는 아내들을 모아 자신들의 미래와 여성의 권리에 대해 말하지만 그녀들은 요리와 집안일에 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운다.

비밀은 '로봇'이었다. 조안나는 자신과 함께 아내들을 조사하던 친구의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친구는 다른 아내들과 똑같아진 모습이었다. 알고보니 친구가 로봇으로 개조되어 버린 것이었다. 스텝포드 마을의 남편들은 아내들을 '로봇'으로 개조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페미니즘이 부흥했던 시기... 그러나

1960~70년대 미국은 다양한 가치관들이 목소리를 내며 기존의 가치관을 위협하던 시기였다. 그 가치관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힘을 받게 된 사건도 있었다. 1969년 1월 닉슨 대통령 취임식 반대 집회에 여성 활동가가 여성 차별을 주제로 연설을 하자 일부 남성들이 입에 담기 심한 욕설을 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여성이 여전히 사회 외곽에 존재하고 있으며 남성으로부터 공공연한 차별을 받는 존재라는 걸 인식시켜주는 사건이었다.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 있는 조안나는 '페미니스트' 면모를 지닌다. 그녀는 일방적으로 이사를 감행한 남편 월터에게 반기를 드는가 하면 남편에게 아이를 돌보는 일을 시키기도 한다. '여성이라도 꿈이 있으면 할 수 있다'며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반대로 남편 월터를 비롯한 남성들은 아내들이 조용히 집안일에 매진하고 남편에게 사랑만을 주기를 원한다. 스텝포드 마을은 고요하고 정적이며 아름다운 곳이다. 남편들은 이 아름다움 속에서 아내들이 오직 '꽃'으로만 존재하길 원한다. 

스텝포드 마을의 남성들은 아내들을 '로봇'으로 개조함으로 자신들의 이상적인 상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마을 여성들에게 의문을 품은 조안나는 시내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입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원래 스텝포드 마을에는 여성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단체가 있었다는 걸 말이다.
 
여성을 로봇으로 만든 남자들

영화에서 아내들은 세 가지를 잃는다. 첫 번째는 목소리이다. 남성 협회의 남성 중 한 명은 사전 편찬을 이유로 조안나에게 모든 단어를 하나하나 읽어 녹음해 달라 부탁한다. 그녀가 녹음하는 목소리는 추후 로봇으로 재탄생할 조안나의 목소리를 대신하게 된다. 목소리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목소리의 상실은 인간 대 인간으로써의 대화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몸이다. 몸 역시 권리와 강하게 연결된다. 신체에 대한 폭력과 훼손은 직접적인 위협과 위험을 의미한다. 아내들은 몸을 상실함으로써 주체적인 존재로서 인정 받지 못한다. 로봇은 수동적이고 기능적인 역할만을 한정적으로 수행한다. 이 작품에서 여성들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취향에 맞춰 행동하는 존재로 개조되어 버린다. 
  
 <스텝포드 와이브스> 스틸컷

<스텝포드 와이브스> 스틸컷 ⓒ Palomar Pictures

 
세 번째는 가정 내에서의 역할이다. 스텝포드의 남편들은 아내로부터 자신과 자식을 보살피는 것 외에 모든 역할을 빼앗아 버린다. 하물며 극중에서 아내는 자식을 가르칠 수조차 없다. 
 
작품 도입부에 등장했던 마네킹은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 욕망의 원천은 남성들이 권력을 잃기 싫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스텝포드 와이프>는 가정 스릴러라는 장르적 규격 속에 이러한 갈등을 담아낸다.

기득권층은 사회가 자신들이 그리는 풍경이 되길 바라고 그 안에서 인간은 마치 도구처럼 상(像)의 모습으로 머무른다. 이런 욕망은 변화를 위한 물결이 강하게 휘몰아칠 때 더 강하게 발현된다. 완벽해 보이는 마을의 비밀이 벗겨질수록 서서히 풍기는 욕망의 악취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공포를 선사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한 지금,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을 전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스텝포드 와이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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