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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한 정서는 민족주의였다. 사회주의도, 민주주의도 휘청거렸지만 전세계 어디든지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정서가 민족주의였던 것이다. 실제로 2차대전 이후 성공했던 모든 혁명은 민족적(national) 방식으로 혁명 주체를 정의한 혁명들이었다. 사회주의자 그룹 내부에서도 민족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으며, 한국의 현대사 역시 민족주의의 아래에서 이행돼온 경향이 존재한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민족의 권위는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를 대체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만약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엇이 될 것인가.
 
베네딕트 앤더슨 저, 서지원 옮김, 2018, <상상된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 저, 서지원 옮김, 2018, <상상된 공동체>
ⓒ 도서출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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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상상된 공동체, 즉 허상임을 주장한다. 저자는 한 시대를 지배했던 강력했던 개념이 허구임을 지적한 것이다. 저자의 위와 같은 주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저자가 제시한 민족의 개념을 찾아보아야 한다.

민족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가장 수준 높은 저서로 꼽히는 저서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다. 저자는 민족성이나 민족주의를 하나의 문화적 인공물(cultural artefacts)로 상정한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민족주의란 고대가 아닌 근대의 산물이며,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가져야만 하게 된 기념이며, 그 내용이 공허해 철학적 빈곤이 발견되는 사상임을 지적한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를 18세기 전후 바라본다. 18세기 서유럽은 종교시대의 황혼기였다. 근대 합리주의가 대두됨에 따라 종교가 약화됐다. 그러나 종교성의 약화는 일상의 고통을 가라앉혀 주던 종교 기능의 부재이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민족주의가 종교의 영역을 어느정도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토록 오래 예언되어 오던 '민족주의 시대의 종말'은 아무리 멀리 봐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민족된(national-ness)은 실로 우리 시대의 정치적 삶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정당성을 띠는 가치이다." (21쪽)

민족주의가 종교를 대신해서 우연을 숙명으로 둔갑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민족주의의 성장 배경에 인쇄 자본주의를 기능을 강조한다. 자본주의가 보편화 된 이후 인쇄업자들은 더 큰 이윤을 위해 지배계급의 언어인 라틴어 인쇄뿐만 아니라 수요층이 많은 일상언어(영어, 불어)로 된 인쇄물을 찍어내기 시작한다.

이는 라틴어로 쓰여져 있기에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종교라는 신성성을 금가게 만들었다. 일상에서 공유되던 언어가 대중 공동체의 근간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크리올 출신이자 남미의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
 크리올 출신이자 남미의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
ⓒ britanni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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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체적 사레가 남미의 독립운동과 크리올이다. 남미에서 식민지 본국민의 2세인 크리올들은 유럽보다도 먼저 확교한 민족관념을 발전시켰다. 크리올들은 재능도 있고 격식을 차릴줄도 알았지만 출신지가 남미라는 이유만으로 권력에서 배제됐다.

출세에 한계가 명확했던 크리올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지방신문이라는 인쇄물은 크리올들에게 본인들이 유럽인이 아니라 아메리카인이라는 정체성을 형성시켜 나가게 만들었다.

또한 크리올들은 같은 교육체계 아래에서 성장하면서 유럽식 민족주의를 자신들의 상상된 영토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자신들만의 민족을 상상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민족 만들기 과정에서 언어를 적극 이용했다. 구체적으로 크리올들은 모국, 조국, 고향 등 민족과 관련된 문학과 정서를 설파함에 따라 개인들은 민족 전체를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정신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언어를 통해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민족으로 일반 대중들을 초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의 재구성

또한 민족을 만들어낸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우리가 아는 민족개념의 시작은 인위적이고 근래였기에 대중들은 민족의 과거를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민족의 역사라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
 
"인류학적인 정신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민족을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민족은 상상된 정치적 공동체로서, 본성적으로 제한적이며 주권을 지닌 것으로 상상된다. 민족은 상상되었다(imagined)." (25쪽)

민족의 과거를 소급해 올라가는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다. 마오쩌둥이 진시황을, 스탈린이 이반 뇌제를 후하게 기념했던 것이 그 사례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허구에 가깝다.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국부로 추앙하는 윌리엄은 영어를 쓸 줄도 몰랐다.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민족을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들은 단절된 과거의 그들을 '우리의 것'으로 기억, 혹은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위와 같은 지적들은 과연 현대에서 사라진 옛 개념일까. 그리고 만들어진 공동체는 민족만일까. 우리는 여전히 어떠한 인위적 공동체로 편입돼 허상을 추구하며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된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에 대한 고찰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서지원 옮김, 길(2018)


태그:#상상된공동체, #민족주의, #베네딕트앤더슨, #앤더슨, #상상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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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사회복지학 학사 졸업. 사회학 석사 졸업. 사회학 박사 수료. 현직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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