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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 둘째 날, 삼달다방 마당에서 찍은 사진
 제주 여행 둘째 날, 삼달다방 마당에서 찍은 사진
ⓒ 조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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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대구 장애인지역공동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조민제라고 합니다. 저와 장애인들이 너무나 사랑하는 '삼달다방' 방장 이상엽님이 제주에서 장애인들이 한달살이를 할 수 있는 '이음'동을 건립한다는 모금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두 번째 편지'를 성큼 띄웁니다.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저는 경험상 장애인과 함께 '제주'를 가는 일은 '쉼'보다는 '막막함'이 늘 앞서 생각났었습니다. 장애인들은 비행기에 타기 위해 몸과 같은 휠체어를 분해하여 접어야 하고, 누군가의 등에 업혀 좌석에 앉아야 하고, 제주에 도착해도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차를 운 좋게 렌트할 수 있어야 하고 편의시설을 갖춘 숙소를 찾는 과정은 비장애인의 유럽배낭여행보다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마음 편히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 바다를 바라보며 차 한잔을 할 수 있는 카페를 찾는 일은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식당과 카페를 들리는 일보다 몇 배 노력해야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이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이 여행에서 겪는 보통의 것도 여전히 특별하고 애써야만 하는 현실이지요.

그런 제주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인권운동의 '큰 언니' 두 분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3박 4일간의 여행에서 삼달다방을 통해 방장 상엽님의 미소처럼 넉넉하고 포근하게 정말 별 걱정 없이 진짜 '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쉼'의 시간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각별했기에 여러분들에게 여행기를 짧게나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주여행 보편화된 세상에도 장애인의 여행은 여전히 힘든 일
 
노랑버스를 타고 이동한 협재해변. 휠체어가 해변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어 아쉽게 먼발치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노랑버스를 타고 이동한 협재해변. 휠체어가 해변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어 아쉽게 먼발치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 조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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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무더위를 넘어 기록적인 폭염으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2018년 늦여름이었습니다.

"대표님, 우리 여행 한번 가까예? 우리 맨날 투쟁한다고 같이 놀러도 한번 못 갔다 아입니까? 이번에는 한번 가지요."
"진짜예? 그라믄 진짜 좋지예, 서울에 영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랑 현숙쌤(장애인활동지원사)이랑 같이 한번 가볼까예?"


박명애 대표님(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과 이 말 한마디를 나누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박명애 대표님과 저는 2006년부터 대구에서 함께 일을 시작하여 장애인활동보조제도화 투쟁, 이동권 투쟁, 탈시설-자립생활 투쟁, 교육권 투쟁 등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 늘 거리위에서 투쟁하여 왔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가득한 사회를 바꾸고자 늘 거리에서 빡빡하게 살아온 삶에 우리는 꽤나 지쳐 있었고 마음 편히 '쉴 곳'이 정말로 필요하였습니다. 활동가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싸우면서 정작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쉼'을 주는 것에는 매우 각박하였으니까요.

여행이 결정된 후 우리는 마음 맞춰 마음껏 수다도 한바탕 떨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풍경을 만끽할 공간을 고민하였습니다. 바다도 보고 싶었고, 사람들과 찬찬히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주'로 여행지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주여행이 보편화된 요즘 세상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여성 2명이 함께 여행을 꿈꾸는 것은 여전히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여전히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차량을 구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고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숙소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차에 제주의 삼달다방이 떠올랐습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탈 수 있는 '노랑버스'
 
노랑버스는 제주를 오는 장애인들을 위해 상엽님과 여러사람의 힘으로 구입한 차량이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3명까지 탑승가능하다. 노랑버스 덕에 우리는 제주를 맘껏 누볐다.
 노랑버스는 제주를 오는 장애인들을 위해 상엽님과 여러사람의 힘으로 구입한 차량이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3명까지 탑승가능하다. 노랑버스 덕에 우리는 제주를 맘껏 누볐다.
ⓒ 조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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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삼달다방을 운영하시는 상엽님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차 '노랑버스'까지 마련해 두셨더군요. 삼달다방에 장애를 지닌 사람들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늘 고민하시던 상엽님은 집과 다방, 마당을 넘어 이동수단까지 고민하셨고 덕분에 박명애 대표님, 박김영희 대표님, 활동지원사이신 이현숙 선생님과 저는 제주여행을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박명애 대표님과 저는 대구공항에서, 박김영희 대표님과 이현숙 선생님은 김포공항에서 각자 어렵게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모였습니다. 10월초 가을햇살을 가득 머금은 제주는 참으로 따스했습니다. 공항에서 잠시 기다리는 사이 상엽님에게서 곧 전화가 왔습니다. 주차장으로 저희를 마중 나오셨습니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노랑버스'함께 말이죠.

'노랑버스'는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3명이 탈 수 있게 봉고차를 개조한 차량입니다. 이 노랑버스에는 삼달다방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손글씨와 그림이 아기자기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노랑버스를 타고 식당을 우선 들리기로 했습니다. 상엽님은 장애인분들이 갈 수 있는 식당을 이곳저곳 잘 알고 계셨습니다. 상엽님의 추천대로 저희는 제주 분들이 자주 들리는 해장국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하였답니다.

무심한 듯 '여기 바닷가가 괜찮아요.'라고 말하던 상엽님이 추천한 산책로는 매우 세심하였습니다. 꽉 막힌 빌딩 숲에 둘러싸여 살아온 우리에게 탁 트인 바다전망을 보며 느긋하게 산책할 수 있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산책로를 안내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바닷내음과 바람을 실컷 느끼고 저희를 보러 내려온 상엽님의 아내인 옥순님을 만나 노랑버스를 타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였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제주 곳곳의 숨겨진 역사, 아픔들에 대해 상엽님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이동했고 상엽님의 추천으로 절대 횟집이라고 생각되지 않은 식당에서 제철 회를 한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상엽님이 추천해주셔서 들린 식당은 늘 그런 곳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이 주로 오는 식당이 아니라 제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편히 먹을 수 있는 곳. 거기에다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말이죠.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식당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한 추억을 회상하며 한껏 수다를 떨었습니다.

식당에서의 시간이 지나고 어둑한 밤이 되어 우리는 삼달다방에 도착하였습니다. 여행 첫날의 두근거림이 아쉬웠던 우리는 삼달다방에서 가볍게 맥주 한 캔을 하며, 상엽, 옥순 부부가 추천한 찰리 채플린의 'The Kid'를 보았습니다. 삼달다방에는 여러 문화공연과 강연 등의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는데요. 삼달다방에는 대형스크린과 음향시설이 매우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다방에서 우리는 채플린의 영화를 보며 한껏 웃을 수 있었고 그렇게 기분 좋게 여행 첫날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자연경관 훼손치 않으면서 이동할 수 있는 길
 
우도는 해변까지 가는 길은 없지만 바다가 가까워, 한참을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우도는 해변까지 가는 길은 없지만 바다가 가까워, 한참을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 조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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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우리는 노랑버스를 직접 몰고 제주 중 산간 지방을 지나 협재 해변을 다녀왔습니다. 제주도의 날씨는 다행히도 우리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너무나 맑은 날씨였고 우리는 협재에 들러 해변을 바라보고 제주로 정착한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던 활동가, 장애여성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만나 그간 못 나눴던 이야기를 찬찬히 나눌 수 있었습니다.

노랑버스가 있었기에 우리는 제법 먼 거리도 욕심을 내서 갈 수 있었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저녁시간은 상엽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식사와 보고 싶은 영화를 삼달다방에서 함께 맥주를 먹으며 편히 볼 수 있었습니다.

셋째 날, 저는 두 언니들과 우도를 가고 싶었습니다. '우도'는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섬이고 장애인화장실, 장애인이 접근가능한 식당 등 편의시설이 가장 안 되어있는 곳 중 한 곳이긴 했지만 함께 배를 타고 우도의 해안과 바닷가를 함께 느끼고 싶어 고심 끝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노랑버스와 함께 배에 탄 뒤 우리는 우도로 향했습니다. 배에서 바라보는 우도를 보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선박 내 장애인 접근성은 여전히 매우 열악한 환경이라 차에 탑승한 채로 그대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이내 우리는 우도에 도착하였고 노랑버스는 잠시 세워두고 우도의 해변을 거닐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하면 우도에 며칠씩 머무르는 일이 꽤 있는 편인데요. 날씨가 화창한 날 우도를 거닐어본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그날 우도의 날씨는 너무나도 화창하고 맑아서 휠체어를 탄 언니들이 섬 속의 섬 우도를 한껏 산책하고 해변에서 그늘을 찾아 바다를 한참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를 우도에서 보낸 뒤, 여행의 마지막 밤을 즐겁게 보내고자 바비큐 재료를 구입하여 삼달다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삼달다방 마당에서 장작을 지펴 바비큐 파티를 하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습니다. 삼달다방은 마당 역시 세심함을 느낄 수 있는데요.

휠체어가 편히 이동하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마당길은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야자수 줄기로 엮은 멍석이 깔아 두신 거죠. 자연경관을 훼손치 않으면서도 장애인당사자가 이동할 수 있는 길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마당에서 우리는 따듯한 모닥불을 곁에 두고 깊은 밤까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답니다.

차별 가득한 세상이지만 잠시 삼달다방에 머물며
 
삼달다방 마당 앞의 나무 그늘에 앉아있으면 한참을 머물게된다. 하늘과 나무와 삼달다방이 어우러짐은 
어우러진 멋을 늘 선사한다.
 삼달다방 마당 앞의 나무 그늘에 앉아있으면 한참을 머물게된다. 하늘과 나무와 삼달다방이 어우러짐은 어우러진 멋을 늘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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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있으면 끝이 항상 있지요. 너무나 아쉽지만 제주도에서의 여행은 너무나 성큼성큼 빨리 지나가 버렸습니다. 점심 경까지 우리는 삼달다방 방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노랑버스로 다시 제주공항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작별의 아쉬움을 나누며 상엽님과 두 언니들은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꼭 들리겠다고 말하며 아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행복했던 기억은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기 마련이죠. 삼달다방은 저희에게 순간이 있는 그대로 살아남을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애가 있든 없든 기꺼이 그리고 넉넉하게 맞이하는 상엽님이 그곳을 지키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행이 끝난 한참 뒤에도 우리는 가끔 채팅을 통해 삼달에서 함께 다시 머무를 날을 가지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답니다. 삼달다방에서의 여행이 단순히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달다방의 공간과 사람을 통해 '회복'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삼달다방의 상엽님이 장애인당사자들이 좀 더 편하게 오랫동안 머물 수 있도록 삼달다방에 '이음'동을 짓는다 합니다. 저는 그 공간이 장애인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주라는 곳이 특별한 여행지를 넘어 삼달에서 넉넉한 쉼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비장애인에게는 많이 알려진 제주 한 달 살이가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여전히 꿈으로 그리던 일이기만 했었으니까요.

삼달다방 '이음' 동에서 장애인분들이 아침에 내리쬐는 햇빛을 느끼고 삼달다방 앞 나무가 바람을 만나 새가 머무르며 내는 소리를 듣고 삼달의 여러 창문 속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볼 수 있으면 합니다. 그래서 차별 가득한 세상이지만 잠시 삼달다방에 머물며 장애인분들에게 기댈 곳이 되어 차별과 배제로 인해 받은 상처를 회복하여 세상에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삼달다방 이음동 건축기금 마련 프로젝트]
길동무가 되어주시는 모든 분께는 앞으로 삼달다방이 우리 사회에서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인간다운 쉼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겠다는 약속과 함께 준비한 작은 마음의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https://forms.gle/DdEQjHBxh6L43HCM6


태그:#삼달다방, #인권, #이음, #제주,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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