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필 감독의 <어스>가 지난 3월 27일 개봉했다. 그의 지난 영화 <겟 아웃>(2017)이 화제와 흥행을 모두 잡았던 터라 <어스>도 기대를 모았다. <어스>는 해외영화전문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는 신선도 지수 100%를 받았지만, 개봉 전 예상과는 달리 현재 국내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비틀기의 정수"라는 평가부터 "무슨 의미를 담은 건지 모르겠다"는 의견까지. 개봉 전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반응이다.
 
한편 조던 필 감독은 주연 배우 루피타 뇽에게 촬영 전 추천했던 10편의 공포영화를 해외 매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스>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쳤던 루피타 뇽이 어떤 영화를 참고했는지 확인한다면 <어스>를 보다 이해하고 즐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 '10편의 공포영화'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1. <환생(Dead Again, 1991)>
 
 영화 <환생>(1991) 스틸컷.

영화 <환생>(1991) 스틸컷. ⓒ 파라마운트 픽쳐스

 
사랑하는 이들이 만나게 된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가끔은 운명이란 것을 믿게 된다. 케네스 브래너(마이크 처치)와 엠마 톰슨(그레이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인생은 누구에게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는 곧 과거의 기억 속 파편 속에서 몸부림치는 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응원하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전생이 사실은 동일인물의 삶이었다는 반전이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이 영화의 각성제 역할을 한다.
 
2. <샤이닝(The Shining, 1980)>
 
 영화 <샤이닝>(1980) 스틸컷.

영화 <샤이닝>(1980)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영화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 겨울철 오버룩 호텔의 관리인이 된 잭 토랜스(잭 니콜슨)가 아내 웬디(셸리 듀발), 그리고 말을 하지 않아도 소통을 하고 과거와 미래의 일을 보는 영적 능력을 지닌 어린 아들 대니(대니 로이드)와 폐쇄된 호텔에서 보내는 한 달 동안의 이야기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를 통해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던 잭 니콜슨이 주연을 맡아 신경질적인 무표정과 활짝 웃는 광기를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개봉 이후 원작소설의 작가 스티븐 킹의 혹평을 받았다는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40대가 되어버린 대니가 주인공인 <닥터 슬립>이 <샤이닝>의 후속격 소설로 출판되기도 했다. 이미지의 잔혹함과 기괴함을 이용해 공포를 박아 넣는 방식이 아닌, 영화에 흐르는 기류의 불온함과 불안함이 온 사방에서 관객을 서서히 압박하다가 마지막 도끼질로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3. <바바둑(The Babadook, 2014)>
 
 영화 <바바둑>(2015) 스틸컷.

영화 <바바둑>(2015) 스틸컷.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미이라>의 미국 가정판 버전. 죽은 남편의 창고에서 발견한 책을 읽고 아멜리아(에시 데이비스)와 그녀의 아들 사무엘(노아 와이즈만) 가족의 일상은 혼란 속으로 빠진다.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아멜리아는 바바둑과 죽음의 대결을 벌인다.

과잉행동장애를 앓는 사무엘과 바바둑과 힘겨운 대결을 보이는 아멜리아를 바라보면서, 도리어 둘 중 누가 악령에게 미쳐가는 건지 혼란에 빠진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바바둑의 신음소리에 저항하며 주인공 아멜리아의 심정으로 틀어 막힌 호흡을 가까스로 내쉬어 보자.
 
4. <팔로우(It Follows, 2014)>
 
 영화 <팔로우>(2014) 스틸컷.

영화 <팔로우>(2014) 스틸컷. ⓒ 브리즈픽쳐스

 
19살 제이(마이카 먼로)의 남자친구 휴(제이크 웨어리)는 그녀와 섹스를 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널 따라 다닐 거야. 정말 미안해." 자신에게만 보이는 알 수 없는 이들을 떨쳐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해서 저주를 넘기는 것뿐이다.

섹스를 통해 저주가 전염되고 옮겨진다는 흥미로운 설정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뿌리치려 해도 계속해서 어디서든 따라오는 정체불명의 존재는 영화에 장르적 쾌감을 더한다.
 
5. <장화, 홍련(A Tale Of Two Sisters, 2003)>
 
 영화 <장화,홍련>스틸컷.

영화 <장화,홍련>스틸컷. ⓒ 청어람

 
전래동화 <장화, 홍련>의 영화 버전을 기대한다면 착각이다. 마지막 10분의 진실을 위해 우리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끈기있게 추적할 필요가 있다.

진실이라 믿고 있었던 이야기가 전혀 뒤틀린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올바른 현실을 적확히 직시하고 정상적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임수정의 억척스러움과 문근영의 순수함,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지리게 하는 염정아의 압박감을 버티며 영화 속에서 헤엄쳐보자
 
6. <새(The Birds, 1963)>
 
 영화 <새> 스틸컷.

영화 <새> 스틸컷. ⓒ 알프레드히치콕 유니버셜

 
다프네 뒤 모리에의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그러고 보니 알프레드 히치콕의 미국 데뷔작 <레베카> 역시 그녀의 소설이 원작이다.

어느 여자가 여동생에게 선물할 잉꼬새를 찾는 남자를 만난다.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여자는 잉꼬새를 사들고 남자가 사는 '보데가 만'을 찾아간다. 그러나 여자가 보데가 만에 도착하면서부터 새 몇 마리들이 마을의 사람들을 이유없이 공격하기 시작하고,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화면에 허용된 만큼의 지평선에 가득 찬 새들의 모습은 괴물영화라는 영화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관철시키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7. <퍼니 게임(Funny Games, 1997)>
 
 영화 <퍼니게임> 스틸컷.

영화 <퍼니게임> 스틸컷. ⓒ wega film

 
감독이 관객과 폭력에 대해 한판 승부를 작정했다. 휴가차 놀러온 가족들을 악동 폴과 피터가 감금하고 남편 게오르그는 발이 분질러진다. 순식간의 한 가족의 보금자리를 망쳐놓은 폴과 피터는 남편의 다리까지 분질러놓고는 이 가족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영화 중간중간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시간을 되돌리는 등 폴과 피터는 이 가족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 불쾌감에 빠뜨린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 이후 두 번째로 칸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불쾌한 장면 있음"이라고 경고문을 적어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8. <마터스:천국을 보는 눈(Martyrs, 2008)>
 
 영화 <마터스:천국을 보는 눈>스틸컷.

영화 <마터스:천국을 보는 눈>스틸컷. ⓒ N.E.W

 
언제나 "아, 그 가죽 벗기는 영화?"로 회자되는 파스칼 로지에 감독의 데뷔작. 국내에는 200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소개됐다.

어느 평범한 가정의 아침식사시간, 누군가 벨을 울리고 문이 열리자 가족들을 향해 가혹한 총격이 시작된다. 그러나 진짜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표현의 수위로 논란되는 영화 리스트에서 언제나 상위권에 랭크되는 영화지만, 영화의 장르를 바꾸어 버릴 만큼 맥거핀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한 영화로도 평가받는다.

비위가 약하거나 고어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굳이 관람을 시도하지 말길. 꿈에 나온다.
 
9. <렛 미 인(Let The Right One In, 2008)>
 
 영화 <렛 미 인> 스틸컷.

영화 <렛 미 인> 스틸컷. ⓒ 씨네그루(주)다우기술

 
영화 속 뱀파이어는 대개 일반인 사이에 침투했다가 그들의 피를 약탈한다. <반 헬싱>과 <언더월드>시리즈, 멀게는 <노스페라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뱀파이어영화가 이 공식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아서 탄생했다.

그러나 이 공식은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렛 미 인>을 통해 산산조각난다. 가장 위험한 존재가 가장 약한 존재를 만나고, 그에게 '들어가도 되는지' 묻는다.

가장 위험한 존재에게 가장 약한 존재의 세상은, 초대받지 않으면 결코 들어갈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 이 영화는 영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뱀파이어 영화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10.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1999)>
 
 영화 <식스 센스> 스틸컷.

영화 <식스 센스> 스틸컷. ⓒ 할리우드 픽쳐스

 
'가장 뛰어난 반전영화'라는 수사는 이제 진부한 표현이 되었다. 그래도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관객이 느꼈던 충격은 오감을 넘어 육감 전역에 미칠 만큼 대단했다.

브루스 윌리스 역시 귀신이었다는, 이 영화의 반전을 지금 언급하는 것을 스포일러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나는 <식스 센스>를, 평생 자기 정체성을 모르고 살다가 마지막에야 가까스로 깨닫고 허무와 충격에 휩싸여버린 어느 대머리남자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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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잘 쓰진 못합니다. 대신 잘 쓰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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