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5주기 연극 <내 아이에게> 리허설 장면

세월호 5주기 연극 <내 아이에게> 리허설 장면 ⓒ 우민정

 
푸른 조명이 들어오면 노란 나비가 등장해 서서히 빈 의자에 앉는다. 무대 한쪽에는 주인 없는 신발이 보인다. 음악이 잦아들며 검은 목도리를 두른 여자가 들어와 신발을 소중하게 안는다.
 
"얘야, 내 아이야. 네 머리에 내려앉던 봄이 다시 왔다. 네가 없는 봄이 또 오고야 말았어."
 
5년 전 그날은 아침부터 새소리가 들릴 정도로 맑았다.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며 엄마는 제주의 하늘을 만끽할 아이들을 생각했다. 평소처럼 우유를 사와 식탁에 올리고 밥을 안칠 때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배가 기울어졌어. 근데 괜찮아. 구명조끼 입었고 가만히 있으래."
 
"가만히 있으래" 아이의 문자를 읽는 엄마의 목소리가 떨린다. 핸드폰을 눌러 전화한다. 안 받는다. 학교로 달려간다. 정신 차려, 정신. 엄마는 되뇐다. 강당 스크린에 '전원 구조'라는 글자가 뜬다. '전원구조'를 발음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오보였다. 390㎞를 달려 진도에 간다.
 
TV에서 서해청장이 말한 함정 164척, 항공기 24대, 특수 구조단 178명은 보이지 않았다. "왜 구조 안 하냐고. 구조하라고 이 새끼야."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들리지 않는다. 쉴 대로 다 쉬어버려 닿을 듯 말 듯 떨리는 작은 목소리. 극 내내 엄마는 큰소리로 절규하지 않는다. 절규하지 않아 더 슬프다.
 
"감당할 수 있었냐?" 묻는 기자에게 그녀가 한 말
  
 세월호 5주기 연극 <내 아이에게> 리허설 장면. 작품은 한 어머니의 내밀한 편지 형식으로 세월호 이후 미수습자 가족이 겪어낸 하루하루를 온전히 보여준다.

세월호 5주기 연극 <내 아이에게> 리허설 장면. 작품은 한 어머니의 내밀한 편지 형식으로 세월호 이후 미수습자 가족이 겪어낸 하루하루를 온전히 보여준다. ⓒ 우민정

 
연극 <내 아이에게>는 돌아오지 못한 아이에게 보내는 한 엄마의 편지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미수습자 가족 엄마의 목소리로 2014년 4월 16일 이후 세월호 가족이 겪어낸 하루하루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연출이자 극작을 한 하일호씨는 세월호 간담회에서 들었던 유가족의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았다가 작품으로 길어 올렸다. 하일호 연출을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성북마을극장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광화문에서 어떤 분이 '세월호는 학살이다' 이런 발언을 했어요. 그때 한 유가족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나는 학살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어미가 여기 이렇게 있을 수 있냐. 진실이 밝혀져 그게 사실이라면 그때 뭐든 다 하겠다'라고 말하는데 충격이었어요. 아, 우리는 지금 진실이 뭔지도 모르는데 손쉽게 적만 규정하고 있었구나 싶었죠."
 
작품을 쓰긴 했지만 극으로 올리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감당할 수 있겠냐, 유가족 아픔을 대변할 수 있냐, 몇 년은 지나야 하지 않냐'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시간이 지난 뒤에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럼 나는 모든 연극이 똑같지 않냐고 말했어요. 연극이라는 게 어떤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인물이 돼서 얘기하는 거 아니냐고요. 주인공을 맡은 김보경 배우도 어떤 기자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냐고 물을 때 그러더라고요.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아픔을 배우가 감당 안 하면 안 된다. 그건 배우의 운명이다'라고요."
  
진실은 아직 뭍에 올라오지 않았다.
 
실제로 대사 한 마디 내뱉기가 쉽지 않았다. 배우들과 함께 세월호 집회도 다니고, 공부도 많이 했다. 끝내 배우에게서 유가족의 이야기가 진실하게 나오는 순간 연습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그도 "연출하면서 처음으로 울면서 디렉션을 했다"고 말한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하일호 연출가. 지난 8일 성북마을극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하일호 연출가. 지난 8일 성북마을극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우민정


"2016년 공연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마지막에 공연 끝나면 '미수습자분들 기다린다'는 자막이 올라가는데 이십 분 동안 관객들이 안 나가더라고요."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5년 동안 연극은 관객과 호흡하며 매해 변했다. 감상적인 부분은 잘라내고, 팩트를 충실히 살려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사실들을 강조했다. 각색의 방향을 그렇게 잡은 이유는 하나다.
 
"슬픔은 자명하니까요. 중요한 건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우리가 모른다는 거예요."
 
달라지지 않은 건 5년 동안 함께 한 김보경 배우와 극 중 등장하는 종이로 만든 세월호이다. 처음에는 세월호가 육지로 올라오기 전 떠오르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만든 소품이었다. 하일호 연출은 지금은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지만 진실이 여전히 뭍으로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도 종이로 만든 배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 뭍에 올라오지 않았다. 연극 <내 아이에게>는 진실이 표류해온 5년의 시간을 압축해 전달하며 관객에게 묻는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12일부터 14일까지, 연극 <내 아이에게>는 성북마을극장에서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관객들을 기다린다.
  
"내 아이야 내가 가장 고통스러운 게 뭔지 아니? 가장 고통스러운 건 그건 88일이 지났는데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거란다." - <내 아이에게> 中
 
 연극 <내 아이에게>

연극 <내 아이에게> ⓒ 우민정

세월호 인권연극제 종이로만든배 내아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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