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생일 >의 한 장면.

영화 < 생일 >의 한 장면. ⓒ (주)NEW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광화문 광장을 찾을 일이 많았다. 광장을 찾을 때마다 세월호 천막을 들렀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사진과 이름을 조용히 바라보곤 했다.

'세월호' 하면 나에게 가장 가슴 아프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희생 학생의 어머니가 단상 위에 올라 '네가 좋아하던 닭도리탕을 해 주고 싶다'며 울먹이는 모습이었다. 시간의 흐름 앞에 무뎌졌다고 한들,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세월호는 현재진행형이다.
 
세월호 5주기를 앞둔 지난 4월 3일, 영화 <생일>이 개봉했다. 세월호 사건을 간접적으로 다룬 영화 <악질경찰>이 있었고, 그간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었지만, 세월호 사건 자체를 주제로 한 극영화로는 처음이다. 이 영화에는 팽목항도, 배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세월호 이후 남은 사람들의 모습을 조용히 담아낸다.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생일>을 연출한 이종언 감독은 2015년 가을 무렵부터 영화를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전에 그는 안산 지역 치유 모임 '이웃'에서 일을 도왔고, 그곳에서 여러 차례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다. 희생된 아이의 생일에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기억을 나누는 일이 그 모임에서 하는 주요한 행사 중 하나였다. 세 시간 동안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갈 만큼 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그 슬픔이 덜어지는 듯했다고 한다. 이종언 감독은 이 경험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실화에 대한 이 영화 특유의 조심성은 감독의 특별한 경험에 기인한다. <생일>은 무언가를 꾸민다기 보다는, '보여주는' 일에 집중한다. 전도연과 설경구의 밀도 높은 연기는 이 극의 설득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대배우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실 이후를 살아가는 방법
 
<생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월호 이후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이들이 상실을 마주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수호의 어머니 순남(전도연)은 매사에 냉소로 일관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미소를 짓는 일이 거의 없고, 눈빛은 공허하다. 다른 세월호 유가족들이 노란 옷을 입고 단체 행동에 나설 때, 그녀는 늘 호의적인 모습이다. 아들 수호의 생일을 기념하자는 사람들의 제안에도 날카롭게 가시를 세운다.

가족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외국에 있었던 아버지 '정일'(설경구)은 아무 것도 하지 못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어린 딸 예솔(김보민)은 그 날 이후 물에 발을 담그지 못 하며, 생선을 먹지 않는다.

고단한 형편 때문에 정부의 보상금을 받는 유가족이 있고, 납골당에서 자식들의 사진을 놓고 맛난 음식을 나누며, 서로 가족처럼 지내는 유가족들이 있다. 생존자 학생은 살아 돌아온 것을 죄스러워 하고, 자신이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아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 한편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 '돈 받았으면 되지 않았냐'고 말하는 사람도 등장하지만, 악마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 누구도 옳다 그르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는 것도 답이고, 웃는 것도 답이다. 정치적 가치 판단을 완전히 배제하고, '사람'에 집중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있다. 영화 속의 많은 인물들은 2014년 4월 16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상투적인 위로처럼, '그러나 삶은 계속 된다'는 아픔이 이 영화 전체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영화 '생일' 오마이뉴스 단체관람 행사에 참석한 이종언 감독  영화 '생일'의 이종언 감독이 8일 오후 서울 신도림역 인근 씨네큐에서 진행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 초청 단체관람 행사에 참석해 영화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영화 '생일' 오마이뉴스 단체관람 행사에 참석한 이종언 감독 영화 '생일'의 이종언 감독이 8일 오후 서울 신도림역 인근 씨네큐에서 진행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 초청 단체관람 행사에 참석해 영화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남소연

 
지난 4월 7일,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영화 <생일> 단체관람에 참석했다. 이날 이종언 감독 역시 자리에 함께 했다. 감독에게 '많은 이들에게 민감한 실화를 다루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이종언 감독은 이와 같은 답변을 해 주었다.
 
"(너무나 큰 불행이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리는) 너무나 큰 고통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비극은 유가족뿐 아니라 그 주위 사람들에게도 번진다. 그래서 감독의 개인적 시선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옮겨 담아내고 싶었다. 그 경계에서 늘 고민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이 울었다. 현관 센서가 켜질 때마다 아들이 돌아온 것 같아 눈을 뜨는 순남을 보며 울었고, 생일 모임에서 소중한 기억을 나누는 수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울었다. 감독의 의도대로, <생일>은 역지사지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산파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결국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공감'과 '연대'다. 순남이 목놓아 울 때 달려와서 안아준 옆집 이웃처럼, 혹은 생일 모임에 참석한 수호의 친구들처럼. 함께 목놓아 울고, 함께 말하고 손잡는 경험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생일 세월호 이종언 전도연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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