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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우리가 계약한 마을카페 공간은 낡은 건물 2층에 텅 비어 있던 재개발조합 사무실이었다. 시멘트 벽면과 콘크리트 바닥뿐인 황량한 17평짜리 공간을 보증금 천만 원, 월세 30만 원에 계약서를 썼다. '주민들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자'며 33명에게 받은 출자금과 차입금을 모아 2개월에 걸친 셀프 공사 끝에 문을 열었다.

마을과 젠트리피케이션
   
테이블을 만들기위해 목공방에서 재단해 온 나무를 여러 날 사포질하고 칠을 하고 있다.
 테이블을 만들기위해 목공방에서 재단해 온 나무를 여러 날 사포질하고 칠을 하고 있다.
ⓒ 안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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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대 상부장까지 설치하기엔 돈이 부족해서 직접 타일을 사서 부착하고 선반을 제작해 달고 있다.
 씽크대 상부장까지 설치하기엔 돈이 부족해서 직접 타일을 사서 부착하고 선반을 제작해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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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간의 셀프 공사를 끝내고 오픈한 마을북카페 나무.
 2개월간의 셀프 공사를 끝내고 오픈한 마을북카페 나무.
ⓒ 안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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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을 채우고 자동연장 계약으로 있는 1년 사이에 건물이 팔렸다. 부동산에서 새 건물주가 월세를 10만 원 올리고 싶어 한다는 연락이 왔다. 계약한지 3년도 안 되었는데 월세가 33%나 오르는 셈이었다. 느닷없는 통보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새로운 시설에 투자할 돈은 고사하고 이사할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에 출자받은 출자금과 차입금을 갚을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폐업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 후로 3년이 넘도록 월세를 꼬박꼬박 40만 원씩 내고 있다. 그나마 재개발구역의 오래된 상가 2층이라 이 정도만 내는 거라고 위안을 해보지만, 1년이면 무려 오백만 원에 가까운 돈이다. 전기요금과 상수도, 인터넷과 프린터, 정수기 임대료 등 각종 운영비용을 더하면 한 해 동안 마을 카페에 필요한 유지비용이 7백만 원이 넘는다. 

가끔은 우리의 활동이 '이만큼의 값어치를 하고 있나'하는 의문이 든다. 건물주에게 돈 벌어다 주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막상 내일 있을 모임을 생각하면 이 공간의 활동성과 마을의 관계망을 비용으로만 따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마을카페의 지속가능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비용'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14년 성미산 마을카페 '작은나무'가 겪은 위기도 바로 이 '비용'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성미산 마을카페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당시 마을에서 다양한 공간을 일구어가는 전국의 수많은 공동체들에 '마을과 공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건물주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작은나무'가 결국 문을 닫았다가 서울시의 '마을 활력소' 사업에 선정되면서 1년 만에 골목 안쪽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마을 활력소'는 3년간 위탁운영을 하는 사업이다. 위탁운영 기간이 끝나면 작은나무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은 곧 공동체가 활동하는 공간의 지속가능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안정된 공간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개별 공동체가 지속해서 재정적 부담을 지면서 공동체 활동과 공간을 오랜 기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도시 재생이나 마을공동체의 활성화 후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마을공동체 활동과 지역거점 공간에 위협이 되는 사례는 비단 성미산 마을과 같은 서울 지역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2016년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주민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마을카페 사례 연구'를 진행했다. 그중 안산의 마을카페 '마실'은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공동체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준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유럽은 어떻게 해결할까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주민커뮤니티공간으로서의 마을카페 사례 연구'_ 누군가를 위한, 우리를 위한 작은 연구 보고서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주민커뮤니티공간으로서의 마을카페 사례 연구"_ 누군가를 위한, 우리를 위한 작은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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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넘어'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마실'은 성미산의 마을카페가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읽고 월세로 계약하려던 계획을 보류하고 몇 달간의 논의 끝에 건물을 매입하기로 방향을 바꾼다. 10년간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이미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경험했기에 내린 결론이었다. 

3층짜리 건물의 매입대금은 대략 7억여 원. 협동조합원이 마련한 출자금 1억 원과 건물을 담보로 한 은행 대출, 그리고 2층과 3층에 자리한 다섯 가구의 보증금을 더해 매입 자금을 마련했다. 1층에 자리한 마을카페는 월세를 내지 않는 대신 2층과 3층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이 내는 월세를 모아 은행 이자를 낸다. 어떠한 행정의 도움 없이 온전히 자율적으로 지역공동체가 자산을 소유한 것이다. 

영국이 시행한 지역주권법(Localism Act)과 같은 강력한 제도 및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영국의 지역주권법은 행정이 소유한 공유 자산이나 공동체의 자산을 지역 자산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지역 자산이 등록된 건물의 소유주는 건물을 매각하려고 할 때 반드시 지방정부에 매각 계획을 알려야 한다. 지역주권법에는 지역 자산이 등록된 건물을 매각할 시 공동체에 우선 입찰권을 주는 제도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지역공동체가 입찰에 응할 의향이 있다면 6개월간 매입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기간을 준다. 지역 자산의 운영과 관리 및 소유를 공동체가 장기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일찌감치 의회정치가 발달하고 지방정부의 권한이 높은 영국이기에 가능한 방법이겠지만, 지역공동체의 역량이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행정의 의지와 공동체의 노력이 동시에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마을 만들기 대상지에 현장사무소를 설치하고 여러 명의 마을 매니저가 상주하는 독일 베를린의 마을 매니저 시스템을 참고하여 이미 조성된 지역거점 공간을 현장사무소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수 있다. 기존의 공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도 절약할 수 있으므로 참고해볼 만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재생의 슬픈 그림자

지난달, 마을카페로 한 통의 우편 봉투가 배달되었다. 십여 년을 지지부진하던 이 동네의 재개발 사업이 확정되어 영업 보상평가서가 날아온 것이다. 서류를 적어 재개발조합 사무소에 제출한 지 일주일 후 영업 보상평가 용역을 진행하는 두 명의 남자 직원이 마을카페를 방문했다. 작은 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맞은 편에 앉은 두 사람이 이미 제출한 서류들을 들추어 보며 몇 가지 통상적인 질문을 했다. 

나는 '들어올 때 했던 인테리어 비용은 어찌 되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이들은 "인테리어는 '감가상각'이 되기 때문에 온전한 보전은 어렵다"고 했다. "이 공간에 있는 모든 물건이 그대로 옮겨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의 평가 목적이라며 이해해달라"며 "인테리어를 하는 데 얼마가 들었느냐"고 묻는다. 

"1200만 원이요."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이 되묻는다. 이걸 어떻게 그 돈에 다 했느냐고.

"주민들이랑 페인트 사다가 직접 칠하고, 테이블도 손수 만들었거든요." 

이곳이 이윤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해 열린 공간이라는 것을 이해한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 달라진다. 월급 받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이라고 하니,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느냐고도 묻는다. 나는 "문화 환경이 부족하고 낙후한 동네였기에 더욱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자리를 잡았는데,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는 취지 때문에 우리가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공동체 공간은 몇몇의 힘만으로는 지속이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공동체 공간은 몇몇의 힘만으로는 지속이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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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이들과 몇 개월 동안 마을탐험대 활동을 하며 마을지도를 만들었었다. 마을지도에 표시된 모든 공간은 재개발이 되고 나면 사라질 것이다.
 동네 아이들과 몇 개월 동안 마을탐험대 활동을 하며 마을지도를 만들었었다. 마을지도에 표시된 모든 공간은 재개발이 되고 나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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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마을은 지속가능할까?
 우리가 사는 마을은 지속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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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비용이 얼마로 책정이 되던 우리가 이사하고 새로운 공간을 꾸리기엔 부족할 것이다. 재개발이 끝나고 나면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인근에 비슷한 수준의 공간을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공간을 채워주던 많은 사람과의 관계망이 흩어지고 우리의 추억이 부서지는 것에 대해. 익숙하던 장소가 낯선 건물들로 탈바꿈하는 것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하는 우리의 무력감에 대해. 

이문재 시인은 '가장 슬픈 일은 장소가 없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어디에 가도 그곳을 찾을 수 없다고. 내후년쯤이면 어디에 가도 지금의 마을카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공간을 아끼고 사랑하던 이들에게는 가장 슬픈 일이 생기는 셈이다. 

단순히 도시를 물리적으로 쾌적하게 만드는 것만이 도시재생의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깨끗한 건물과 새로운 주차장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관계망을 통해 더욱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기존의 재건축, 재개발처럼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의미 있는 공간과 관계망까지 모두 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건물을 짓는 도시재생 방식은 이제 제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시의 자생적인 커뮤니티와 공동체 공간을 소중한 지역 자산으로 인식하고 도시재생 계획에 포함하는 행정의 변화를 간곡히 바란다.
 
다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다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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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마을북카페 나무의 카페지로 6년째 활동 중이며,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경제대학원에서 마을공동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태그:#마을북카페나무, #젠트리피케이션, #도시재생, #지속가능성, #지역자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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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간 주민들과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해오던 마을카페가 2021년 재개발 철거로 사라진 후 집 근처에 개인 작업실을 얻어 읽고, 쓰고, 공부합니다. 도시사회학 박사과정생으로 공간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실천과 연구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현재 지역자산화협동조합에서 시민의 자산화, 사회적경제, 로컬 연구, 지역계획수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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