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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토론회장 입구
 "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토론회장 입구
ⓒ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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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월 시사프로그램에 나와 문재인 대통령의 20대 남성 지지율이 급락한 원인에 대해 첫 번째로 '젠더 이슈'를 꼽았다. 이후 표 의원의 행보는 남달랐다. 지난 1월 국회에서 '20대 남성들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간담회를 연 데 이어, 이번에는 '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13일, 신촌역 근방의 얘기아트시어터에서 펼쳐진 토론회에서 패널로 은하선 작가, 정재훈 교수, 오세라비 작가, 이선옥 작가가 마이크를 잡았다. 약 40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표창원 의원의 사회로 3부에 걸쳐 3시간이 넘도록 토론이 이어졌다.

표창원 의원은 20대 남성들과 온라인에서 많은 추천을 받은 분들로 패널을 구성했다고 밝히며, 한쪽(은하선 작가, 정재훈 교수)은 '페미니스트', 한쪽(오세라비 작가, 이선옥 작가)은 '20대 남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분'이라 소개했다.

또 표 의원은 "이 네 분을 모셔서 양측 모두로부터 많은 공격을 당했다"며 논란이 격화된 사안을 토론한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최재성 의원실에서 3월에 비슷한 패널 구성(오세라비·이선옥 작가)으로 '젠더갈등 토론회'를 열려고 하다가 누리꾼들의 반대 목소리에 의해 무산된 적이 있었다. 
 
'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토론회 중 표창원 의원
 "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토론회 중 표창원 의원
ⓒ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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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페미 정책" vs. "대통령 주변에 성평등적 인물 늘어야"

패널들의 자기소개는 3시간여 토론회에서 이어진 각자의 말을 대표하기에 충분했다. 왼편에 앉은 은하선 작가는 "결국 모든 이들이 성차별 없는 사회, 성폭력 없는 사회를 원한다"며 자기소개를 대신했고, 정재훈 교수는 본인을 "우리사회 1세대 남성 페미니스트"라 소개했다.

오른편에 앉은 오세라비 작가는 "20대 남성도 사람"이라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슬로건을 언급했고, 이선옥 작가는 자리 마련에 감사를 표하며 "합의 지점, 동의 지점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토론회는 시작부터 뜨거웠다. 은하선 작가는 "젠더 갈등이 왜 이렇게 심각한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왜 이제야 이렇게 심각한 것처럼 드러났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역 사건을 기점으로 없던 페미니스트들이 '갑툭튀'한 것이 아니라 1987년도부터 이미 조직된 여성노동자회를 비롯한 여러 여성단체들이 있었음을 강조하며 "이제야 링 위에 올라온 것"이라 말했다.

한편 오세라비 작가는 2017년만 해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굉장히 높았던 문재인 정부 국정 지지율이 지난 3월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결과에서는 20대 남성의 긍정 평가가 20퍼센트에 불과한 점을 지적하며, 원인이 정부의 '친페미 정책'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소속의 정재훈 교수에게 대통령 주변을 페미니스트로 더 채워야 하냐고 물었고,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의 문제를 나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정재훈 교수는 "청와대 업무 사진만 봐도 아실 것"이라며 "여전히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여성의 숫자가 부족해 성평등적인 인물을 주변에 채울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워마드' 문제에 관해서는 '일베'를 한국 남성들의 경향이라고 말하면 모독이듯, '워마드'를 이야기하면서 페미니스트로 프레임화하는 논쟁은 발전적인 방향이 아니라고 정리했다.

이선옥 작가는 이날의 주제를 젠더갈등이 아니라 '성별갈등'이라 부르겠다며,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혐오, 성범죄 등의 개념이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는데, 이를 대중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다. "설득은 안 된 상황에서 갈등만 노출"되면서 "(개념과 동시에) 반감이 같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은 작가와 오 작가는 메갈리아, 워마드의 변화 과정, 영페미 분류 등에 대해서 서로 파악한 팩트가 다르다며 공방을 이어갔다.

오세라비 "여성차별은 낡은 담론"  
 
'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토론회 중 오세라비 작가, 이선옥 작가
 "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토론회 중 오세라비 작가, 이선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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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밤길이 전혀 무섭지 않아요. 저는 경상도에 태어나고 자라고 했지만, 밤길이 무서워 본 적이 없어요."

정재훈 교수가 젠더폭력으로 여성이 생명과 관련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가자 오세라비 작가는 손을 내저으며 큰 반감을 표하더니, 본인은 밤길을 무서워해 본 적이 없다며 은하선 작가가 언급한 버닝썬 사건에 대해서도 0.01퍼센트 상류층 연예인의 일탈이기에 일반 남성에게 일반화시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세대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성도 다른 20대 남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한 공감을 표하며 그들을 대변하는 오 작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성들의 문제에 있어서는 동의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여성들이 느끼는 실제적인 공포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이선옥 작가와도 입장이 확연히 달랐다.

서울여자대학교에 재직 중인 정재훈 교수는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되는 일요일에 자신이 교수 신분증을 갖고 학교에 갈 경우, 안에 있던 학생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지금도 목격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 집단으로 몰자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문제, 인지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서 인식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물론 오세라비 작가는 "여성차별은 이미 낡은 담론"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586 책임론'에는 패널들 동의
 
'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토론회 중 은하선 작가, 정재훈 교수
 "젠더갈등 어떻게 풀어야 할까" 토론회 중 은하선 작가, 정재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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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는 표창원 의원을 비롯해 패널들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지점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눈에 띈 것은 현재 정치를 주도하는 '586세대'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이었다. 젠더 폭력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 정책은 분명하게 변하고 있는데, 이런 정책을 주도하는 '남성 지도자'들의 실제 모습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성 지도자들이 빠르게 정책 결정을 하기에 앞서 '반성문'부터 써야한다는 정재훈 교수의 제안이 설득력 있게 들린 이유다.

이뿐만 아니라 자유권, 평등권 등 기본권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참석자들 간의 반복적인 동의가 나왔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의 "기업 임원 여성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이슈가 된 '여성할당제'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이 붙었다. 이선옥 작가는 "비례대표 여성할당제를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정치 영역에서부터 더 나은 정치가 되었는가 하는 데이터를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정재훈 교수는 "긴 호흡으로 분석하며 기회의 균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은하선 작가는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던 목소리를 다 들어주었다면 아직까지 호주제는 폐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여성을 위한 제도 개혁 실시를 주장했다.  그러나 오세라비 작가는 "여성들의 눈높이가 높은 것,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한숨과 비웃음에 담긴 권력, 번지수를 잘못 찾은 논쟁

"피해자로만 있었던 여성들"
"능력이 있지만 가부장제로 인해 불이익은 받은 여성들"
"잠재적 가해자로서의 남성" 
"강간을 이야기하는 것만 강간문화가 아닌, 장난으로 그냥 넘어갔던 아이스께끼" "각종 위험에 노출된 직군 텔레마케팅..."


위의 내용은 기자가 토론회에 있으면서 한숨이나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순간을 기록해 나열해본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청중은 대부분 20대 혹은 30대 남성들이었고, 이들이 한숨을 쉬거나 웃은 대목은 대부분 여성의 차별과 같은 피해를 언급했을 때임을 알 수 있다. 토론자가 역사 왜곡 망언이나 사회적 약자 혐오발언을 한 것도 아니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주장을 이어갔을 뿐인데, 위 대목에서 남성들의 '조롱'은 끊이질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토론회의 질은 '목소리의 크기'가 담보해주지 않는다. 기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논의의 깊이가 토론회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이날 토론에서 내용과 태도에서 모두 낙제점을 주고 싶은 오세라비 작가와 입장을 같이 하는 이들이 오늘 청중의 다수였다는 점은 토론회가 '젠더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예견하지 않았을까. 용어의 사용에서부터 합의 없이 시작된 토론회는 결국 젠더는 간데없고 갈등만 남겼다. 마음껏 비웃고 크게 한숨 쉴 수 있는 것도, '권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

표창원 의원은 지난 1월 30일 국회에서 있었던 '20대 남성 간담회'를 시작으로 이날의 토론회를 이어서 기획한 것이라고 밝히며, 다음엔 취업, 공정성 문제 등을 포함해 청년을 아우르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부디 그때부터라도 젊은 세대가 느끼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은 정치 개혁으로, 많은 남성들이 느끼는 징병의 불합리함은 국방 개혁으로,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사회적 빈곤은 경제 개혁으로 각각 번지수를 잘 찾아가길 바란다. 여러 단면의 구체적인 사회문제를 대충 '젠더 갈등'으로 치환해 '성별 대결'로 몬다면,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잘못된 프레임'만 더 퍼져나갈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표창원 의원은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분하게 진행되었다"고 만족해했지만, 지켜본 바로는 결코 깊이 있는 토론회는 못 되었다. 민감한 문제라고 회피하지 않는 표 의원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책임 있는 정책들로 이 부족함을 채워주길 바란다.

태그:#젠더갈등, #표창원, #젠더갈등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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