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터 오브 마인> 포스터

<도우터 오브 마인> 포스터 ⓒ 씨네룩스

  
이탈리아의 한 축제장, 축제를 보던 소녀 비토리아는 걸어 다니다 어떤 광경을 보게 된다. 금발의 여인이 야외에서 한 남성과 정사를 나누는 장면. 여자는 소녀에게 들키자 황급하게 행위를 멈추고 옷을 입는다. 이 도입부가 충격적인 이유는 금발의 여성 안젤리카가 비토리아의 생모이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오프닝 장면은 <도우터 오브 마인>이 지닌 감정적인 힘을 보여준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감정을 무덤덤하게 꾹꾹 눌러 담는 화면의 기술은 세 여자의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를 더욱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친구가 낳은 아이 보살피기로 한 여성, 그 후
 
몸을 팔며 되는 대로 살아온 안젤리카에게는 절친한 친구 티나가 있다. 티나는 10년 전, 안젤리카가 아이를 임신하자 그녀의 출산을 돕는다. 그리고 친구가 감당할 수 없는 아이를 자신이 돌보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10년, 티나는 비토리아가 완전히 자신의 아이가 되었다고 여긴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티나와 비토리아 모녀를 불안하게 만든다. 남편과 티나는 둘 다 머리색이 검은 색이지만 비토리아는 붉은색을 띤 금발이다. 더불어 비토리아의 피부는 부모와 달리 새하얗다. 비토리아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대화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는다. 그러다 자신과 너무나 비슷하게 생긴 한 여자를 축제에서 보게 된다.
  
 <도우터 오브 마인> 스틸컷

<도우터 오브 마인> 스틸컷 ⓒ 씨네룩스

 
안젤리카는 금전적으로 가난하기에 티나에게 기댄다. 티나는 안젤리카가 절친한 친구라는 점 때문에, 비토리아의 생모라는 점 때문에 그녀를 돕는다. 남자에게 몸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그녀는 주체성이 없고 남에게 의존만 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 안젤리카에게 비토리아의 존재는 예기치 못한 행복을 준다. 비토리아는 본능적으로 끌려 안젤리카를 찾아간다. 안젤리카는 티나의 존재 때문에 비토리아를 밀어내야 된다는 걸 알지만 차마 그러질 못한다. 이내 안젤리카의 마음에 모성이 피어난다. 그녀는 비토리아와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면서 삶에 희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안젤리카가 어떤 여자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티나는 그녀와 비토리아가 만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고 안젤리카를 마을에서 쫓아내고자 한다.
 
출생의 비밀을 두고 타오르는 욕구

<도우터 오브 마인>은 비토리아의 출생 비밀을 기점으로 불꽃처럼 타오르는 세 여자의 욕구를 다루고 있다. 티나의 욕구는 소유욕이다. 그녀는 10년 동안 비토리아를 키우면서 비토리아가 완전한 자신의 딸이 되었다고 여긴다. 남의 것을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녀는 비토리아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다.

그런 비토리아가 자신의 발로 안젤리카에게 찾아간 순간, 그녀의 마음 속 소유욕은 잔인한 행동을 명령한다. 티나는 안젤리카가 진 빚을 이용해 그녀를 쫓아내려고 하는가 하면 비토리아에게 안젤리카가 몸을 파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티나의 소유욕은 친구와의 우정도, 딸에 대한 존중도 무너뜨린다.
  
 <도우터 오브 마인> 스틸컷

<도우터 오브 마인> 스틸컷 ⓒ 씨네룩스

 
안젤리카의 욕구는 모성을 통한 행복이다. 안젤리카에게는 비토리아를 향한 모성을 쌓을 시간이 없었다. 비토리아를 낳는 순간 옆에는 친구 티나가 있었고 아기를 키울 자신이 없었던 그녀는 바로 티나에게 아기를 넘겨버렸다.

하지만 다시 만난 비토리아가 자신과 너무 닮았다는 걸, 그리고 그 아이가 자신에게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안 순간, 안젤리카는 비토리아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품게 된다. 이를 보여주는 부분이 말을 팔지 않는 장면이다. 안젤리카는 빚을 갚기 위해 말을 팔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비토리아가 말을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차마 자신의 말을 팔지 못한다.
 
비토리아의 욕구는 정체성의 실현이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다른 외모를 지닌 비토리아는 자신과 비슷한 안젤리카를 만난 뒤 본능적으로 끌린다. 이 본능은 마음 속 깊숙이 숨어 있던 정체성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은 모든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질문이며 우리는 직업, 사회적 위치, 가정 내에서의 역할을 통해 이 욕구를 충족시킨다.

한데 비토리아는 자신의 뿌리에 의심을 품으며 이런 욕구 충족에 어려움을 겪었다. 안젤리카는 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존재다. '키운 정'보다 '낳은 정'이 더 강하게 비토리아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내면의 욕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도입부 장면과 함께 인상적인 장면으로 비토리아와 안젤리카의 롱테이크 장면을 뽑을 수 있다. 비토리아와 안젤리카는 함께 장어를 잡으러 가고, 두 사람은 웃음꽃을 피우며 장어를 잡는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양식장 주인과 안젤리카의 대화를 통해 안젤리카가 주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으며 주변 사람들도 비토리아와 안젤리카가 닮았다는 걸 인지한다는 사실을 비토리아는 알게 된다. 이때 카메라는 양식장을 떠나는 비토리아의 모습을 정면에서 롱테이크로 잡는다.
  
오래 곱씹을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는 영화
 
 <도우터 오브 마인> 스틸컷

<도우터 오브 마인> 스틸컷 ⓒ 씨네룩스

 
비토리아는 생모의 낮은 사회적 위치와 부도덕성, 그럼에도 끊을 수 없는 핏줄의 끈끈함을 동시에 확인한다. 그리고 '장어는 새끼를 낳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죽는다'는 안젤리카의 이야기는 비토리아의 감정을 더욱 심화시킨다.

카메라는 비토리아의 표정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그녀의 복잡한 감정을 강조한다. 안젤리카가 나오는 롱테이크 장면은 그녀가 비토리아를 몰아치며 애정을 끊으려는 장면에서 비롯된다. 안젤리카는 비토리아를 강제로 굴에 넣으려고 하며 이를 거부하는 비토리아를 몰아친다.
 
강압적인 방법으로 인연을 끊으려는 안젤리카는 이후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슬픔에 찬 표정을 한다. 이 장면에서 굴은 마치 자궁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안젤리카는 비토리아에게 굴에 들어갈 것을 강요하면서 딸의 탄생 자체를 부정하려고 든다. 이 자극적이고 독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안젤리카의 모성 깊이를 드러낸다. 롱테이크로 담아낸 안젤리카의 표정에는 오직 어머니만이 느낄 수 있는 슬픔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도우터 오브 마인>은 음악의 사용을 줄이고 짧은 편집을 통해 장면을 단편적으로 이어간다. 그러면서 감정적인 동화나 격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대신 장면 하나하나에, 대사 하나하나에 담긴 인물들의 심리를 압축시켜 감정적인 깊이를 최대화한다. 세 여자의 욕구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 드라마를 만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피어나는 감정적인 심화는 오래 곱씹을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키노라이츠,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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