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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와 같은 자연적인 재해가 발생하면 우린 빠른 시간에 복구란 이름으로 자연을 간섭하려 든다. 과연 그게 옳은 일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인위적인 간섭이 도리어 자연 스스로 회복하는 걸 방해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상당히 오래전부터 품었다.

최근 발생하는 재해는 그것이 수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간섭에 의해 잦아졌음은 세계적인 평가다. 화석연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사정이 날로 발전함에 따라 자동차가 늘고 고층빌딩이 들어서며 지구는 몸살을 앓아 온지 오래다. 전기가 없으면 단 몇 시간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 이젠 자신들의 편리함이 자연에 해를 끼치는 수준을 넘어 사람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 발생한 고성산불도 냉정히 따지면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낸 전기 때문에 발생한 인재다. 슬프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당장 전기가 없으면 밥을 못 해먹는 줄 아는 현대인, 냉장고는 몇 시간이면 냉장고 가격만큼의 음식 재료와 각종 음식들이 버려질 정도다. 냉장고 크기만큼 어떻게든 꽉꽉 채워야 만족하는 습관이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 그러니까 집과 창고 등 다양한 건축물은 어쩔 수 없이 새로 지어진다. 이 부분까지 뭐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복원하더라도 방식을 좀 바꾸면 좋겠다.
  
고성산불의 최초발화지점으로부터 5km 바닷가 방향으로 진행하면 장천마을입구가 나온다. 이 주변엔 서울시공무원연수원과 속초소방서, 그리고 세 곳의 가스관련 업체가 있다.
▲ 장천마을입구 고성산불의 최초발화지점으로부터 5km 바닷가 방향으로 진행하면 장천마을입구가 나온다. 이 주변엔 서울시공무원연수원과 속초소방서, 그리고 세 곳의 가스관련 업체가 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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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마을은 다. 속초에서 40여 km 떨어진 위치에 있는 마을이다. 산불이 처음 발생한 곳과 마찬가지로 설악권에 속하는데 오색마을은 마을 전체가 설악산국립공원 구역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 오색마을 오색마을은 다. 속초에서 40여 km 떨어진 위치에 있는 마을이다. 산불이 처음 발생한 곳과 마찬가지로 설악권에 속하는데 오색마을은 마을 전체가 설악산국립공원 구역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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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장의 사진을 보면 위의 사진과 아래 사진이 뭔가 차이가 있다. 위의 사진은 서울시공무원연수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장사동 장천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이고 아래 사진은 오색마을을 촬영한 사진이다.

장천마을입구는 이번 고성산불이 발생한 지점에서 도로로 5km 떨어져 있지만 채 1시간도 안 걸려 산불에 휩싸인 위치다. 오색마을은 이번 강원도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탐방객이 줄어 사실 확인을 위해 찾았던 곳이다.

하지만 서로 상충되는 이걸 확인하라는 얘긴 아니다. 분명히 다른 부분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면 이번 산불이 처음에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기억하면 된다.

오색마을은 2017년 오색초등학교부터 오색약수터까지 전기를 모두 지중화를 했다. 몇 곳, 지중화가 어려운 교량 등에 한해 서로 마주보게 전주를 두 개만 세워 연결하고 다시 지중화를 했다. 공사가 끝나자 마을은 몰라보게 깔끔해졌다.

예전엔 오색마을 풍경사진을 촬영하고 싶지 않았다. 어디로 카메라 렌즈를 돌리던 전주와 전깃줄이 눈에 거슬려서다. 지중화를 한 뒤론 어디서나 마음 드는 작은 풍경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진을 담을 맘이 생겼다.

단순히 비용의 문제로 지중화를 미룰 일은 아니라 생각된다. 고성산불과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몇 곱절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사라진 자연환경을 회복하는 건 또 다른 문제로 남겨진다. 최소 30년은 세월이 흘러야 어느 정도 옛 모습을 만날 수 있다지만, 그것도 사람의 판단일 뿐 한 번 잃은 자연은 영원히 원형을 되찾을 수 없다.

더구나 백두대간의 영동권역은 매년 봄 강풍이 분다. 이때마다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데, 이젠 단 한 번의 산불에도 1조 이상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분명 이와 같은 생각을 나만 지니진 않았으리라 생각돼 '속초시와 고성군 한전 항의 시위'로 혹시 기사가 나왔나 싶어 검색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한전을 찾아가 항의시위를 하지 않아서인지 제대로 다루어진 기사를 찾긴 어렵다.

이미 속초시와 고성군민이 비대위를 결성했다. 그들(속초․고성 고성산불 비대위)은 속초시의회 앞에서 "속초 고성산불 상습방화범인 한전사장 처벌하라"고 외치고, "상습방화범인 한전은 피해사실 인정하고 즉각 사과하라"는 항의시위를 했다.

강원일보와 강원도민일보가 "성난 주민 고성·속초산불 인재 한전·정부 상대 투쟁·소송 예고"와 같은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한전에서 "국과수의 조사결과가 나와 봐야"란 단서를 붙였을 때다. "개폐기와 연결된 전선에 강풍 때문에 이물질이 날아와 스파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 이란 뉴스가 나오자 지역 주민들은 2004년 속초시 청대산 산불을 떠 올리며 "이번에도 한전이 발뺌을 하러든다"고 했다.

속초 청대산 산불은 2004년 3월 10일 발생했음에도 여름휴가철이 된 7월 하순 한국전력 속초지점을 지나다 천막 농성을 하는 이들을 만났다. 넉 달 반이 넘었음에도 무더위 속에 천막을 치고 한전에 피해보상을 요구했던 이들로서는 미리부터 한전이 발뺌을 하리라 생각하고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국과수는 4월 19일 고성 산불의 원인으로 아크 불티를 지목했다. "산불이 발생한 당일 강풍으로 특고압선이 지속적으로 굽혀지면서 잘렸고, 잘린 특고압선이 전신주에 부딪히면서 불티가 발생했다"고 밝히며 "이 불티가 전신주 아래에 있던 마른 낙엽과 풀 등에 옮겨 붙으면서 산불로 번졌다"는 게 국과수의 최종 감정 결과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한전의 책임 여부를 중점 수사할 방침"이라거나, "2006년 전봇대와 고압선을 시공할 때, 설계 기준을 제대로 따랐는지를 살펴보고, 시공 이후에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도 확인할 방침"과 같은 후차적인 문제가 한전의 책임소재로 원인이 밝혀지는 산불발생 때마다 반복되는 현실부터 개선해야 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모두 잎가지 탔다. 자칫 바람의 방향이 남서방향으로 불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설악산 전역이 이와 같이 망가지지 않았다고 한전은 말할 수 있을까?
▲ 불에 탄 숲 아름드리 소나무가 모두 잎가지 탔다. 자칫 바람의 방향이 남서방향으로 불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설악산 전역이 이와 같이 망가지지 않았다고 한전은 말할 수 있을까?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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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번 산불이 발생한 인제군과 고성군, 그리고 속초시와 양양군은 매년 봄과 가을엔 산불방지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마을은 물론이고 주요등산로와 외진 골짜기나 시야가 넓은 산의 봉우리 등에 산불감시 인원을 배치해 입산자를 막는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사소한 부주의로 산불이 발생하면 설악산까지 불길에 위협받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이곳 4개 시군의 산지에 고압선을 그대로 노출된 고압송전탑을 운영하고 있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전력의 하루라도 빠른 대처만이 소중한 국가재산이며 유네스코가 인정한 식물권보존구역인 설악산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립니다.


태그:#강원도 산불, #고성산불, #설악권, #한국전력의 책임, #고압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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