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포스터.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포스터. ⓒ 엣나인필름

 
상업 영화에서든 예술 영화에서든 대부분의 모성은 신성불가침 영역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엄마의 사랑은 내리사랑이거나 쉽게 망가질 수 없는 요소, 나아가 주제의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묘사되곤 했다. 제70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에이프릴의 딸>은 이 단단한 공식을 깨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은 남편 혹은 아빠의 존재가 희미해진 한부모 가정이다. 17세 나이에 임신한 발레리아(안나 발레이라 베세릴)는 자신의 언니와 단둘이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딸을 찾아온 엄마 에이프릴(엠마 수아레스)은 딱한 표정으로 두 자매를 보듬고 챙기기 시작한다. 

초중반까진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에이프릴의 헌신과 딸들의 순종이 이어지며 단조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엄마와 딸의 견고해 보이는 관계가 흔들리는 건 다름 아닌 발레리아의 남자친구이자 아이 아빠인 마테오(엔리케 아리존)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에이프릴의 철저한 의도 때문이다. 

엄마이자 장모로서 에이프릴은 한없이 친절하다. 다만 영화 중후반 이후부터 마테오에 대한 에이프릴의 행동이 조금은 달라지고 있음이 보인다. 관객 입장에선 '설마' 하는 의심과 모성에 대한 고정 관념 사이에서 혼란을 느낄 수 있다. 연출을 맡은 미셸 프랑코 감독은 그 혼란을 의도했다. 에이프릴에 대한 의심이 확신이 되는 지점에서 발레리아와 마테오의 관계, 발레리아와 에이프릴에 대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한 장면.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한 장면. ⓒ 엣나인필름

  
인위적인 감정 고조를 배제하려는 듯 영화에선 특수효과나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은 아이 양육 문제를 두고 갈등하고, 성인과 미성년의 역할과 책임을 강요당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인격은 무너지고, 그 어떤 극적 사건보다도 극적인 절망이 인물들을 감싼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알폰소 쿠아론에 이어 멕시코가 낳은 뛰어난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셀 프랑코 감독은 자신이 관찰한 멕시코를 냉정하면서도 풍성하게 영화에 풀어놓으려 했다. 실제로 멕시코에선 흔하게 만날 수 있는 10대 임산부를 보며 감독은 "행복해 보이면서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런 대조적 감정이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법적으로는 미성년이지만 몸은 이미 다 커버린 이들은 진짜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에이프릴의 딸>은 이런 착한 주제에 집착하지 않았다. 어쩌면 고도 산업화 시대에서 이미 균열 나버린 전통 가족의 역할과 그 관계성에 대한 처절한 역설적 접근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잔잔한, 엔딩 크래디트에서조차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건조한 작품이지만 동시에 묵직한 한방이 느껴진다.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한 장면.

영화 <에이프릴의 딸>의 한 장면. ⓒ 엣나인필름

 
한 줄 평 : 오랜 믿음을 깨버리면서 사고를 확장하게 하다
평점 : ★★★☆(3.5/5)

 
영화 <에이프릴의 딸> 관련 정보

감독 : 미셸 프랑코
출연 : 엠마 수아레스, 안나 발레리아 베세릴
수입 및 배급 : 엣나인필름
러닝타임 ; 103분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 2019년 5월 9일
 
에이프릴의 딸 멕시코 칸영화제 미셸 프랑코 미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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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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