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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4일)과 어린이날(5일)에 시가에 다녀왔습니다. 시부모님이 가까운 곳에 사실 때는 수시로 찾아뵀지만, 지난 4월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신 뒤로는 두 번째 방문입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매년 어린이날엔 어버이날을 겸해 시가를 찾습니다. 결혼하고 반 년을 함께 살았고, 나머지 2년 반동안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은 뵙고 지냈던 터라 한 달만에 뵈려니 설레고 반가웠습니다. 살짝 긴장도 됐지요. 혹시나 너무 오랜만에 온다고 서운함을 마음에 담아두신 건 아닐까 하고요.

수원에서 천안까지 보통은 1시간 반 걸리는데, 연휴라 2시간가량 걸렸습니다. 아기는 1시간이 지나니 차 안에 묶여있는 게 불편하다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10분간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는지 휴게소 주차장도 만원이었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 음식으로 살이 오르셨지만

3년 전부터 어머님의 반복되는 골절과 갖은 질환으로 입원과 수술, 통원치료가 일상이 됐습니다. 병원에 계실 때나 입·퇴원을 전후한 며칠은 자녀들이 돌아가며 아버님과 공동으로 어머님을 간호하고, 음식도 만들어드리고, 집안일도 챙겨드렸습니다. 하지만, 평시엔 아버님이 어머님을 돌보는 일과 집안일까지 맡으시면서 식사가 허술해졌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차려주시는 음식을 드시고 살이 오르셨지만 아버님은 귀찮다며, 입맛이 없다며, 소화가 안 되신다며, 식사에 소홀하셨습니다. 평생을 아내가 차려주는 음식을 드시며 사시다가, 늦은 연세에 역할이 뒤바뀐 겁니다. 반찬 만드는 일이 어렵기만 하실 텐데, 아버님은 어머님이 기운차리고 오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호 만큼은 지극 정성입니다.

시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 열무김치와 오이무침을 담그고, 반찬과 부식거리, 생활용품을 박스에 한 가득 담았습니다. 약재 상점에서 어머님이 차로 끓여드실 우슬도 샀습니다.  
 
할아버지댁 마당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아이.
 할아버지댁 마당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아이.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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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과 어머님은 오랜만에 만나는 손자를 무척 반가워 하셨습니다. 골골하고 시원찮은 며느리의 건강을 염려하며 안부도 물어주셨습니다. 2주 전에 넘어져서 어깨를 다치신 어머님은 어깨를 고정하는 보조도구를 착용하고, 꼼짝 못하고 계셨습니다.

먼저 도착한 시누이 가족들과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습니다. 아기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누나가, 고모가, 할아버지가 놀아주니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신이 났습니다. 일찍 잠잘 사람들을 위해 이부자리를 정리할 때도, 야식으로 먹을 라면을 준비할 때도 참견을 하더군요. 아기는 식탁 위에 올라가고, 냉장고 문을 열고, 할머니 침대 맡의 물컵을 건드리고...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녔습니다.

대가족이 모여 자다 보니 밤잠은 거의 못 자고 날을 새우다시피 했습니다. 연로하셔서 한밤중에도 화장실을 여러 번 가셔야 하는 어머님과, 어머님이 넘어질 까봐 부축하기 위해 여러 번 일어났다 누웠다는 반복한 몇몇 사람과, 새벽에 깨어 담배와 커피를 즐기신 아버님, 밤늦게까지 TV를 보다가 주무신 큰 형님,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자주 깨고 잠들기를 반복하는 아기 덕분에 깊은 잠을 못 자는 저를 포함해 모두가 잠을 설쳤습니다. 그런 가운데, 전날 마신 술에 취해 밤 9시도 안 돼 일찍 잠자리에 든 두 시매부는 큰방 하나를 차지하고 숙면을 취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작은형님과 함께 아침 식사준비를 했더니, 아침식사와 후식, 뒷정리까지 다 마치고도 아직 오전 8시 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두 시누이 가족은 오전중에 집을 나섰습니다. 배웅하고 나서 저희 부부도 아이가 여름에 신을 샌들과 시원한 옷을 사기 위해 잠시 외출했습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 시작한 후로는 양말 신기를 거부하는 아이를 보니, 샌들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 때는 모르고 샀는데, 신겨보니 삑삑 소리가 나는 신발이라 아기가 즐거워 하더군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가면 좋았을 텐데... 어머님이 걷지 못하시기 때문에 외출이 어려워서 아쉬웠습니다. 대신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으로 아기 신발과 옷을 살 수 있었습니다. 카네이션을 담은 화분도 하나 샀습니다.

오랜만에 북적북적... 밥 한 공기 뚝딱 비운 아버님

카네이션을 받아든 부모님은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방 안에만 주로 계시는 어머님을 위해 2시간 쯤 창가에 놓아뒀던 꽃을 아버님이 가지고 나가, 물을 뿌리고 마당에 옮겨 심으셨습니다. 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꾸고, 화초 기르기를 좋아하시는 아버님이 마당도 잘 가꾸어 놓으셨습니다.

덕분에 아기도 마당에 나와서 산책도 하고, 비눗방울 놀이도 하고, 이것저것 다 만져보며 꺅꺅 소리지르며 재미나게 놀았습니다. 손에는 시커먼 흙먼지가 잔뜩 묻었습니다. 졸려해서 재우려 해도 낮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저희 부부도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는 아이를 감시하느라 잠시도 누워 쉴 틈을 얻지 못했습니다.

어둠이 깔리기 전에 일찌감치 저녁을 차려 먹었습니다. 낮에는 삼겹살을 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으시다던 아버님이 저녁에 새로 내놓은 열무김치를 맛보시고는 입에 맞으셨는지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셨습니다.

결혼 초에는 아버님, 어머님 두 분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몹시 어려웠는데 3년이 지나고 나니, 대강은 어떤 음식이 입맛을 살려드릴지 알게 됐습니다. 시부모님이 연로하시고 어머님이 편찮으시다 보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형편없는 음식 솜씨로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 봤는데, 입맛을 살려드릴 맛난 요리를 자주 못해드리는 것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사실, 시누이 가족 분들이나 다른 친척 분들까지 한 자리에 모이는 날에는 식사 준비에 긴장을 많이 합니다. 맛에 자신이 없어서지요.
 
김치를 담그려고 채소를 다듬는 외할머니의 옆에 붙어앉아 함께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뒷모습.
 김치를 담그려고 채소를 다듬는 외할머니의 옆에 붙어앉아 함께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뒷모습.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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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돌아서는 길, 짠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아기는 차가 출발하자 곧장 잠이 들었습니다. 자녀들이 다녀가는 날은 손자 재롱도 보고, 대화나눌 사람도 있고, 집안일을 도와주고 식사를 챙겨줄 사람도 있지만, 자식들이 다 빠져나가면 두 분이 마주할 적막함을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아릿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연세 드시면 외로움이 싫어 텔레비전을 아주 크게 틀어놓으시나 봅니다.

올해 어버이날은 10년 전 어버이날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음력 제삿날이기도 합니다. 올해 또 어버이날과 겹쳤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제사에 참여하기 위해 외삼촌댁에 걸음하시겠지요.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경조사가 아니면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했는데, 올해는 아이도 제법 자랐으니 친척 어른들께 인사도 드릴 겸, 외할머니를 추억하고 추모하는 자리에 참석해볼까 합니다. 며칠 사이에 어린이집에서 챙겨주신 어린이날 선물을 받고는 학부모가 됐다가, 이제는 자식을 의지하실 연세가 되신 어버이의 자녀가 됐다가, 또 한 주 뒤면 그리운 스승님의 제자로 돌아가 학생시절 좋아했던 선생님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태그:#육아, #어린이날, #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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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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