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스페셜 > 장내 세균 혁명

장내 세균 혁명 ⓒ SBS

 
지난 1976년 첫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주체가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주장을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물론 이후 리처드 도킨스는 개체인 인간은 자유 의지와 문명을 통해서 이런 유전자의 독재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의 의견을 보완했다.

만약 리처드 도킨스가 지난 6일 < SBS 스페셜 >에서 방송한 '장내 세균 혁명'을 봤다면 어땠을까? 세균을 또 다른 주체로 세우려 하지 않았을까? 

꾸준히 현대인의 건강과 식습관에 대한 건전한 모색을 해온 < SBS 스페셜 >이 이번에는 그 시선을 '장내 세균'으로 돌렸다. 

'장 트러블'이 일상이 된 현대인

방송에 나온 63세의 김진숙씨는 잦은 방귀, 트림, 그리고 설사를 달고 산다. 56세의 이금씨는 변비와 설사가 교대로 와서 고생 중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몸 속에서 소식이 오면 내려서 화장실을 찾아들어가야 할 정도라, 지하철 역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훤히 안다. 

38세 강용관씨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그는 혹시나 휴게소를 지나고 나서 신호가 올까봐 휴게소마다 들러 억지로라도 미리 볼일을 보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부분이 있다. 그와 한 집에 사는 그의 아내 이해일씨는 강용관씨와 같은 음식을 먹고 사는데도 변비로 고생 중이다. 심하게는 2주일 동안 화장실을 못갈 정도로 말이다.

60대부터 30대까지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마도 현대인들 대다수가 겪는 불편함을 넘어 '고통'에 가까운 것들이다. 도대체 왜 세대를 막론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장 트러블'을 겪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몸, 그 중에서도 장내에만 100조, 많게는 400조의 세균이 산다. 그 종류만도 수 천가지가 넘는다. 그 세균들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며 우리의 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몸에 유익한 균들도 있지만 반대로 방귀, 트림, 설사, 변비, 심하게는 복통, 궤양 등을 유발하는 균들도 있다. 결국 우리의 장은 '세균들의 왕좌의 게임', 그 전쟁터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장을 그저 소화 기관이 아닌 면역 기관으로 보고 있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의 장내 세균을 분석해 봤다. 잦은 방귀와 트림, 설사에 시달리는 김진숙씨의 경우 이상 발효를 일으키는 퍼미큐티스 균이 많았다. 변비와 설사가 오락가락하는 이금씨의 경우 병원성 균들, 대장균,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질균 등이 다른 균에 비해 활발했다. 강용관씨의 경우 매일 밤 야식과 함께 먹는 알코올이 장내 균들 사이의 균형을 무너뜨려 박테로이스균이 77%를 점령한 상태다. 즉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도 누구는 설사를 하고, 다른 누구는 변비가 오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장내 세균총이 달라서다.

우리 몸의 주인은 세균?
 
 < SBS 스페셜 > 장내 세균 혁명

< SBS 스페셜 > 장내 세균 혁명 ⓒ SBS


코끼리는 하루 50kg의 대변을 본다. 엄마 코끼리가 큰 일을 보자 아기 코끼리가 달려가 엄마의 똥을 먹는다. 초식 동물의 경우, 아직 장내에 미생물군이 미성숙한 아기들은 이렇게 엄마의 똥을 먹음으로써 엄마의 장내 미생물을 '계승'한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균 상태로 태어나는 아기는 엄마의 산도에 정예부대로 모여있던 락토 바실라스 균 등 유산균 샤워를 시작으로 엄마의 모유를 통해 비피더스 유산균 등을 취하여 장내 미생물총을 형성해간다. 

이렇게 엄마를 통해 건강한 유산균 중심으로 장내 미생물군을 형성한 아기들이라고 해도 크면서 각종 스트레스와 인스턴트 식품, 불균형한 식습관, 음주 등을 장내 세균총이 달라지게 된다. 위에 언급된 60대에서 30대까지의 참가자들은 모두 '육식'을 매우 즐기며, 간식으로 '밀가루' 음식을 먹고, 야식으로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데 술까지 한 잔 하는 식의 식생활 패턴을 가졌다.

결국 평생 동안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나의 장내 세균총이다. 그런데 장내 세균총이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현대인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장 트러블' 때문만이 아니다. 최근 장내 신경이 뇌 신경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장내 세균의 새로운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치매와 장내 세균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치매가 박테로이스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연구중인 한국인 박사 허준열 교수 부부는 자폐아들 대부분이 위장 장애를 겪고 있는 것에서 착안하여 엄마 쥐의 장내 세균인 절편 섬유상 세균이 새끼의 자폐 증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우울증과 관련하여 주목받고 있는 '세로토닌'의 90% 이상을 장내 세균이 만든다. 그래서 오늘날 학계는 장을 '제 2의 뇌'로 주목하고 있는 중이다. 

다큐는 이처럼 '장 트러블'을 넘어 인간의 뇌를 관장하는 장내 세균들을 '호모 박테리아누스'라 정의한다. 이는 결국 '장 건강'을 관리하는 건 '장 트러블'을 넘어 아이부터 노인까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다.

장 건강이 곧 뇌의 건강
 
 sbs스페셜-장내 세균 혁명

sbs스페셜-장내 세균 혁명 ⓒ sbs


그렇다면 장 건강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영양 성분'이 관건이 된다. 즉 우리가 섭취하는 것 중에는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것과 세균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밥을 예로 들면 흰쌀로 지어진 밥은 사람이 소화시키지만, 현미 밥의 경우 그 껍데기의 식이섬유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 미생물이 좋아하는 것이란다. 즉 통곡류와 해조류 등이 미생물이 좋아하는 것들로 이런 것들을 많이 섭취해서 장을 건강하게 만들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어진 미생물들은 대장 점막을 자신의 먹이로 삼고, 결국 점막이 약해져 그 틈 사이로 염증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다큐 초반에 나온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12살부터 궤양성 대장염을 앓기 시작해 19살이 된 환자는 결국 타인의 분변 미생물을 이식하여 자신의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60대부터 30대까지 각종 '장 트러블'로 고생하던 사람들도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로바이틱스 등의 유익균을 일주일간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한층 호전됐다. 

결국 장과 세균을 둘러보며 돌고 돌았던 다큐가 마지막에 도달한 결론은 인스턴트와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진 오늘날 현대인들이 장은 물론 갖가지 신체적 이상 증상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건강한 장, 건강한 뇌,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는 우리 몸은 물론, 세균들이 좋아하는 통곡물과 해조류, 그리고 각종 유산균들이 풍부한 식단을 꾸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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