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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에서 영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충북 괴산 연풍면에는 천주교의 연풍성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로 연풍지역에 은거하던 가톨릭 교인 추순옥, 이윤일, 김병숙, 김말당, 김마루 등이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이곳에서 처형을 당했으며, 또한 한국 천주교의 순교 성인인 황성두 루카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죠.

연풍면은 괴산읍에서 문경 방면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고, 문경새재 서쪽 기슭의 고지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따라서 예로부터 소백산맥의 험지에 둘러싸여 서울, 경기에서 박해를 피해서 온 천주교인들의 피난처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성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연풍성지'가 새겨져 있는 구멍 난 바위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조형물이겠거니 하고 넘어가지만, 성지를 걷다보면 그것이 교수형 형구돌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형구돌은 천주교 신자들을 구멍 앞에 세운 다음, 목에 밧줄을 걸고 반대편 구멍에서 이를 잡아당겨 죽이는 잔혹한 교수형 형구라고 합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너무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잡혀오자 그들을 손쉽게 처형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네요. 성지 중앙에는 거대한 십자가가 있는데 그곳이 많은 이들이 처형당한 장소라고 합니다.

또한 연풍성지 중간에는 성지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연풍면 수령의 행정을 보좌하던 자치기구 향청입니다. 풍속을 바로 잡고 향리를 감찰하며 민정을 대변하는 등의 일을 했다고 하네요. 이 건물은 1691년(숙종 17)에 처음 지어져 일제 강점기 때는 주재소로 사용되었으며, 1963년부터는 천주교 연풍공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연풍성지가 성역화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천주교에서 63년 향청을 매입하고 나서 주변 토지 정리를 하다가 박해 때 순교자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들을 발견하였고, 68년엔 연풍면이 황석두 성인의 고향임이 밝혀지면서 성지개발이 본격화되었다고 합니다.

이화령과 문경새재를 넘기 전, 연풍면의 연풍성지를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조선 말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조용한 사색처를 원하신다면 적절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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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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