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간이 없어 사진만 찍고 떠난 하의호수(lake hawea)
 시간이 없어 사진만 찍고 떠난 하의호수(lake hawea)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잠시 머물며 정들었던 호키티카(Hokitika)를 떠나 다음 목적지 클라이드(Clyde)로 떠난다. 뉴질랜드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유명한 관광지 퀸즈타운(Queenstown)에서 가까운 곳이다. 숙소까지 6시간 이상 운전해야 하는 먼 거리를 향해 떠난다.

일찌감치 일어나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는 설렘을 간직하고 서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가는 도중에 관광지, 프랜즈 조세프 빙하(Franz Josef Glacier)라는 동네를 거치게 된다. 숙소에 늦게 도착하더라도 볼거리를 지나칠 수는 없다. 일단 만년설을 볼 수 있는 관광지로 향한다.
 
빙하로 향하는 등산로, 주위 풍경이 특별히 뛰어나다.
 빙하로 향하는 등산로, 주위 풍경이 특별히 뛰어나다.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목적지에 도착하니 헬리콥터를 이용하는 관광 상품을 선전하고 있다. 만년설이 있는 정상까지 헬기를 타고 가는 것이다. 한자로도 헬기 상품을 광고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 사람도 많이 이용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등산객의 편의를 위해 산 정상까지 헬기로 서비스하는 관광 상품을 본 적이 없다. 산악인이 반대한다고 들은 기억도 있다. 그러나 만년설을 보려고 헬기를 이용해 산에 오르는 것은 허용하는 것 같다.

주차장에 도착했다. 큰 주차장이 서너 개 있다. 이곳도 캠핑카를 비롯해 관광객이 타고 온 렌트한 자동차가 대부분이다. 빙하로 향하는 입구는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화장실 앞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산으로 들어가는 등산로는 2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것부터 시작해서 5시간이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1시간 30분 정도 걷는 등산로를 택했다. 관광객과 어울려 등산로에 들어선다. 화려한 등산복으로 무장한 사람부터 가벼운 옷차림에 샌들을 신은 사람까지 다양하다. 주위에서 들리는 대부분의 말소리는 영어가 아니다. 유럽이나 남미에서 온 관광객이 많은 것 같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시야가 트이며 멀리 있는 계곡 사이로 만년설이 보인다. 안내판에는 1921년에는 이곳까지 만년설이 있었다는 설명이 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금은 한 시간 이상 더 걸어가야 만년설을 만날 수 있다.

자갈이 많은 등산로를 걷다 보면 크고 작은 폭포를 자주 만난다. 등산로 주변은 작은 나무와 돌 위를 감싸고 있는 이끼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넓은 강 건너편에 계곡과 계곡 사이를 이어주는 출렁다리가 보인다. 이곳에 며칠 지내면서 건너편에 있는 등산로도 걷고 싶다는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등산로가 끝나는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만년설은 저만치 떨어져 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바위 위에 앉아 쉬고 있다. 주위를 서성이며 산 정상에 있는 만년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람도 많다. 온난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거대한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편한 삶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지구는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강 건너에 보이는 또 다른 등산로. 출렁 다리가 눈길을 끈다.
 강 건너에 보이는 또 다른 등산로. 출렁 다리가 눈길을 끈다.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만년설을 보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도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길을 떠난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폭우로 변한다. 가파른 바위를 깎아 만든 도로 주변이 온통 폭포로 변했다. 장관이다. 폭우로 운전에 어려움은 있지만, 폭포에 둘러싸인 도로를 운전하는 행운을 만났다.

폭우와 파란 하늘이 교차하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헤치고 하의호수(lake hawea)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첫눈에 보이는 것은 산에 둘러싸인 거대한 호수다. 이곳도 관광지로 알려진 곳이지만 숙소까지는 한 시간 이상 가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자동차로 동네 한복판을 둘러보며 호수를 사진에 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흔히 이야기하는 점만 찍고 가는 관광이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저녁은 해결해야 한다.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도로에 한국 식당이 보인다. 영어로 '시나브로(Shinaburo)'라는 식당 이름이 눈에 띈다. 한국 식당이다. 그러나 간판에는 한국어가 전혀 없다.

식당에 들어선다. 손님으로 붐비는 작은 식당이다. 한국 사람은 보이지 않고 서양 손님이 대부분이다. 식탁에 앉아 음식을 기다린다. 식탁에 돌솥비빔밥을 앞에 놓고 있는 서양 손님에게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비빔밥 먹는 법을 유창한 영어로 설명한다.

비빔밥에 대한 설명을 끝낸 후 우리와 잠시 대화를 나눈다. 오래전에 이곳에 정착했다고 하며 우리를 반긴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반갑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독특한 한국 식당 ‘시나브로’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독특한 한국 식당 ‘시나브로’
ⓒ 이강진

관련사진보기

 
제대로 된 한국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늦게 숙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한식으로 저녁을 먹어서일까, 생각만큼 피곤하지 않다. 역시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 음식이 최고다.

문득 조금 전에 만났던 식당 여주인이 생각난다. 순수한 한국말 '시나브로'를 식당 이름으로 정한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며 지내는 모습 보기에 좋다.

나는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질랜드, #남섬, #HAWEA, #FRANZ JOSEF GLACIER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