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영화 <령희>의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우상기, 이경화, 한지원, 연제광 감독.

제72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영화 <령희>의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우상기, 이경화, 한지원, 연제광 감독. ⓒ 이선필


 
장편 영화와 달리 단편은 감독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와 이야기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참고서기도 하다. 배우들은 더 집중력을 발휘해 이 작은 세계를 관객에게 온전히 설득시켜야 한다. 이런 묘미가 어쩌면 단편 영화의 큰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제72회 칸영화제 학생 단편에 해당하는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영화 <령희>는 불법체류자 신분인 두 중국 교포 홍매(한지원)와 령희(이경화)가 어떤 위기를 겪고, 제조공장 사장과 실장(우상기)은 사건을 덮으려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15분 길이의 작품. 칸영화제 기간 중 이를 연출한 연제광 감독과 배우 한지원, 이경화, 그리고 우상기를 만났다.  

네 사람의 인연은 학부생 시절로 올라간다. 대학교 동문인 연제광 감독과 배우 우상기, 이경화 그리고 감독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면서 알게 된 한지원. 이미 전작 단편에서 한지원과 작업했던 감독은 "뭐든 제가 구상한 걸 지원 배우가 해낼 것 같았다"며 <령희> 시나리오 작업 당시 한지원을 떠올리며 썼던 사연을 밝혔다.

영어 제목은 'Alien'. 그만큼 영화 자체가 품고 있는 주제의식이 명확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노동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나아가 이민자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제 서른을 갓 넘긴 감독의 머리에서 이런 보편적 주제에 대한 이미지들이 집약된 결과물인 것. "사람이 죽었잖습니까"라며 공허한 눈빛으로 공장 사장을 바라보는 홍매의 대사가 크게 다가온다. 

"몇 년 전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하다가 추락사했는데 자살 처리가 됐다는 뉴스에 충격을 받았다. 외갓집이 충북 괴산인데 거기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 그런 뉴스와 흩어진 사람들을 보면서 구상했다. 찾아보니 에일리언이라는 단어가 불법체류자를 지칭하는 공식 용어더라 차별적 뉘앙스가 담긴 단어라 생각해 그렇게 제목을 지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지만 어찌 됐건 단속을 피하다가 사망했다. 뉴스에 따르면 그런 상황에서도 단속이 계속 됐다고 한다. 최소한의 인간성조차 지켜지지 못한 것이다. 그걸 <령희>의 모티브로 따왔다.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인 관심이 있던 편이 아니었는데 당시 그 소식에 대한 충격이 컸다." (연제광 감독) 


배우들 역시 이런 주제의식에 공감했다. 특히 홍매와 령희 일에 침묵하는 캐릭터를 맡은 제조공장 실장 역의 우상기는 "시나리오를 본 뒤 해당 뉴스를 접했는데 제 인생 모토가 사회적 문제와 인간, 철학과 연기와의 관계"라면서 "습관적으로 뉴스를 챙겨보는데 이게 작업할 때 도움이 되더라. 영화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화 역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영향으로 이런 뉴스를 많이 접했다"며 "극적 상황에 몰리는 령희를 생각하며, 홍매와의 관계도 생각하며 작품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적게는 20대 초중반, 많게는 30대 중반. 이 배우들은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연기를 위해 여러 경험을 쌓고 있었다. 주연을 맡은 한지원은 연기를 전공한 오빠가 있고,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했던 재원. "처음엔 입시로 연기를 접했다가 여러 단편 작업을 하며 연기에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며 한지원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기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한 결단
 
 제72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영화 <령희>의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우상기, 이경화, 한지원, 연제광 감독.

제72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된 영화 <령희>의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우상기, 이경화, 한지원, 연제광 감독. ⓒ 이선필


"학생일 때 오히려 마음이 급했다. 졸업 이후엔 오디션을 보면서 다니는 게 행복하다. 떨어지는 것에 실망하지 않는다. 100번을 보더라도 한 번 붙으면 작품을 할 수 있는 거니까. 단편 작업도 그렇고 하나씩 열심히 하면 이렇게 영화제에 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칸영화제는 제게 버티면서 연기하면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처럼 다가온다." (한지원)

"단편 영화일수록 더 많이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더라. 제 경우엔 그렇다. 감독님의 의중을 파악하고, 캐릭터 연구를 잘해야 한다. 이과생이었다가 재수할 땐 문과였고, 이후 삼수까지 했다. 그땐 인생의 막다른 길에 놓였다고 생각했고,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걸 하자는 결심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탐구를 많이 해야 하는 일이더라. 여전히 어렵지만 꾸준히 하려 한다.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연기를 하고 싶다." (이경화)


"연극도 했고, 생계를 위해 지금은 요리도 하고 있다. 오디션은 뭐 100번은 떨어진 것 같다(웃음). 제가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영화 미술을 하려다가 현장에서 배우들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조금씩 저도 연기를 공부하게 됐고, 직접 하다 보니 내 길임을 느끼게 됐다. 솔직히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데 그런 과정이 좋더라. 영화 현장을 더 이해하고자 상업영화 스태프로 일하기도 했다. <아저씨> <범죄의 여왕> 등을 경험했다." (우상기)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은 영화제 기간 중 상영을 거친 뒤 오는 24일 수상작이 결정된다. 다행히 연제광 감독은 <령희> 이후 한 제작사와 계약해 상업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됐다. 감독을 비롯해 세 배우에게도 이번 칸영화제 경험은 일종의 좋은 자극제가 됐다. "잘 버티겠다" 이 말에 네 사람이 함께 웃어 보였다.
령희 칸영화제 연제광 단편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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