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국 시리즈 챔피언을 포함하여 2018년까지 3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던 KIA 타이거즈는 2019년 시즌 초반 KBO리그 최하위까지 처졌다. 16일 경기를 끝으로 김기태 전 감독이 자진사퇴했고, 올 시즌의 남은 100경기는 퓨처스 팀 감독이었던 박흥식이 대행을 맡아 지휘하고 있다.

대부분의 감독대행들은 전 감독이 팀을 맡던 시절 일어난 혼란 요소들을 수습하다가 시즌을 끝내는 일이 보통이었다. 구단 프런트가 바라는 것은 정식 감독을 영입하기 전까지 다음 시즌에 대한 대비를 하는 수준의 운영이 대부분이다.

가장 최근의 감독대행들 역시 비교적 긴 잔여 시즌을 지휘했다. 2017년 한화 이글스의 이상군 대행(101경기, 현 이글스 스카우트팀장)은 아예 김성근 전 감독이 쓰던 감독실도 쓰지 않았을 정도였다. 지난 해 NC 다이노스의 경우는 단장이었던 유영준 대행(85경기, 현 퓨처스 감독)이 팀을 수습했다.

부임하자마자 팀을 바꾼 박흥식 대행
 
경기 승리한 박흥식 감독대행 1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기아 타이거즈 경기에서 승리한 기아 박흥식 감독대행이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경기 승리한 박흥식 감독대행 19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기아 타이거즈 경기에서 승리한 기아 박흥식 감독대행이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16일 퓨처스 팀의 경기를 마친 박 대행은 17일 대전 원정부터 팀을 맡음과 동시에 코칭 스태프를 개편하는 것으로 팀 운영 컬러를 바꾸기 시작했다. 총괄코치 시스템을 없애고 수석코치(메이저리그에서는 벤치코치)를 부활시킨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타격코치와 1군의 투수코치 2명을 퓨처스와 재활군으로 보냈고, 퓨처스 코치 2명이 1군으로 왔다. 1군 코치에서도 이동이 있었는데, 불펜에서 코치로 있었던 서재응이 투수코치로 이동했다. 1군 투수코치였던 이대진 전 코치는 잔류군으로 이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퇴하고 팀을 떠났다.

박 대행이 팀을 맡으면서 코칭 스태프 개편을 직접 요구했고, 프런트에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정규 시즌이 100경기나 남았기 때문에 소극적인 운영보다는 체제를 바꾸는 것이 더 효율적인 시간이었다.

김 전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를 별도의 방에서 진행했는데, 짧은 시간 동안 라인업 공개와 최근 페이스가 좋은 선수들에 대한 칭찬만 있었다. 예민한 문제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답변을 아끼는 편이었다. 박 대행은 경기 전 인터뷰를 더그아웃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전반적인 면에서 자신의 생각을 상세하게 밝히는 편이다.

박 대행이 팀을 맡은 이후 KIA는 빠른 속도로 세대 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투수와 포수 빼고는 다 해봤던 최원준은 3루수로 고정 출전하고 있으며, 타자 박찬호 역시 꾸준한 출전 기회를 얻으며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진입했다.

팀 컬러를 바꾼 효과는 즉시 나타나고 있다. 박 대행이 맡은 경기는 아직 10경기인데, 그 10경기에서 8승 2패를 기록했으며 2년 만에 7연승 기록까지 세웠다. 28일 한화 원정 경기에서 0-2로 패했지만 한화의 선발투수 장민재가 커리어 최고의 투구를 펼치며 8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경기로, 장민재의 제구력이 크게 부각된 경기였다.

1군 정식 감독 이력 없는 박 대행, 지도 실력 발휘하나

박 대행은 아직까지 KBO리그에서 1군 감독을 역임한 적이 없다. 주로 타격코치를 많이 맡았으며, 퓨처스 감독 경력도 2011년 히어로즈와 최근 KIA에서의 경험이 전부다.

박 대행은 타격코치 시절 다수의 타자들을 지도하면서 어느 정도 지도력을 인정 받은 상태다. 첫 타격코치 경험은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11년이었는데, 그의 커리어 초반 타격 조련을 통해 정상급 타자로 성장한 선수 중 1명이 바로 이승엽(KBO리그 홍보대사)이다.

이후 히어로즈 코치로 옮겼을 때(2011 퓨처스, 2012 1군) 발굴한 선수들이 박병호, 서건창 등이다. 박병호는 그의 지도 아래 이승엽 시대의 뒤를 이어 KBO리그 홈런왕이 되었고, 비록 2년 만에 돌아왔지만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를 경험하고 오기도 했다. 그의 지도를 받았던 서건창은 박 대행이 롯데 자이언츠로 떠난 이후 2014년에 200안타를 넘기며 타격왕이 됐다.

이후 박 대행은 2015년부터 KIA의 타격코치를 맡았다. 물론 부임 초기 KIA의 타선은 리그 최하위권까지 처지며 당장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다만 2016년과 2017년 팀의 순위 상승에 기여할 정도의 타격 성적을 올려놓으며 한국 시리즈 챔피언 등극에 공헌했다.

2018년 퓨처스 감독으로 이동한 뒤에는 KIA 퓨처스 팀의 컬러를 바꿨다. 퓨처스 팀의 주전 선수들을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하여 장기적인 세대 교체에 대비한 것이다. 신인 드래프트 때는 퓨처스에 부족했던 구속 좋은 투수와 오른손 타자 자원도 보강했다.

세대 교체를 위한 새로운 실험, 자리 이동한 김선빈과 안치홍
 
 26일 오후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3회 말 1사 2루 상황에서 KIA 안치홍이 1타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2019.3.26

26일 오후 광주-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경기 3회 말 1사 2루 상황에서 KIA 안치홍이 1타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2019.3.26 ⓒ 연합뉴스

 
일단 박 대행은 베테랑들에게 전반기까지 충분히 기회를 주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상위권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 따라가보고, 7월이나 8월 이후 성적을 봐서 다음 시즌을 바로 준비할 수도 있음을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행은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28일 경기에서 주전 유격수였던 김선빈을 2루수로 옮겨 출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주전 2루수였던 안치홍은 1루수로 경기에 나섰다. 안치홍이 가끔 1루를 본 적은 있지만 김선빈이 2루를 본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었다.

물론 김선빈과 안치홍의 수비 포지션 연쇄이동은 두 선수에게 모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선수는 올 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다. KIA에 잔류할 수도 있고 다른 팀으로 옮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여러 포지션의 수비가 가능하면 향후 선수 진로에 더 많은 길이 열릴 수도 있다.

김선빈과 안치홍이 수비 포지션을 옮긴 결정적 이유는 타자 박찬호의 역할 고정이다. 수비 포지션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최원준은 3루수 이범호가 은퇴를 준비하면서 주전 3루수 자리를 넘겨 받게 됐다.

박찬호가 긴 시간 동안 성장이 더뎠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포지션 문제였다. 원래 유격수 자원으로 성장했지만 그 동안 김선빈과 안치홍이 키스톤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진입이 어려웠다. 박 대행은 박찬호가 유격수를 맡는 것이 장기적으로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포지션 이동을 단행했다.

일단 포지션을 바꾼 첫 날 28일 경기에서는 수비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 또한 박찬호와 최원준이 기본적으로 스피드가 빠른 선수들이라 수비 범위가 더 넓어졌다. 향후 류승현과 신범수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돕는 측면도 있고, 군 전역 예정 선수들까지 합류하게 되면 KIA는 젊은 세대로의 급격한 교체가 진행된다.

KIA는 이범호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김주찬 역시 2+1년 계약 중 옵션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올해로 계약이 끝난다. 최형우 역시 2020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는데 포스트 최형우에 대한 대비까지 해야 한다. 이번 포지션 이동은 김선빈과 안치홍을 FA 시장에서 붙잡지 못할 경우에 대한 대비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정식 감독 임명 여부를 생각하긴 이르다. 실제로 감독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임명되기도 쉽지 않으며, 이에 대한 마지막 사례는 이만수 전 감독(현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 겸 라오 J 브라더스 구단주)으로, 그는 2011년 SK 와이번스 감독대행을 맡아 감독대행 최초로 한국 시리즈 준우승을 거둬 정식 감독에 임명됐다.

다만 박 대행은 다른 감독대행들과 달리 소극적인 운영이 아니라 자신이 그리고 있던 밑그림에 본격적으로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29일 경기에서는 김주찬과 안치홍, 김선빈이 1루수와 2루수 유격수로 출전했고, 박찬호가 3루수로 출전했다. 여러 가지 실험을 시도하는 KIA가 향후 포지션을 어떻게 고정시키게 될지 지켜보자.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리그 KIA타이거즈 박흥식감독대행 수비포지션변경실험 KIA타선세대교체문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