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9일,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한 극장 내 상영관. 그 넓은 객석에 관객이 채 스무 명도 안 됐다.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가진 멀티플렉스라는 게 무색하다. 하긴 상영 시간표를 보니 하루에 달랑 두 번만 트는데다, 그나마 조조와 오후 4시께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시간대에 편성돼 있다. 애초 흥행과는 거리가 먼 영화다.

지난 5월 2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이야기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만원과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역사 왜곡과 폄훼가 없었다면, 굳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영화다. 무려 39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김군'은 지만원이 줄곧 '광수 1호'로 지목한 시민군의 한 사람이다. 5.18 당시 북한에서 잠입한 특수부대원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그의 모습을 담은 몇 장의 사진에 기대어, 당시 함께한 시민군들을 상대로 그의 행적을 탐문수사 하듯 찾아가는 내용이다.

성찰과 공감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저들의 '확증편향'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한 장면 ⓒ 1011 필름


지만원이 '김군'을 북한군으로 보는 유일한 근거는 '눈매가 닮았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김군'은 5.18 당시 광주시민들을 부추겨 소요사태를 일으킨 뒤 고립된 광주를 벗어나 북으로 되돌아가서 고위관료가 되었다. 바로 그가 북한 농림상을 역임했던 김창식이라는 주장이다.

조악하기 그지없는 안면 식별 프로그램 하나로 수많은 역사적 진실을 거짓으로 내모는 그의 무지가 놀랍다. 당장 교통은 물론, 통신마저 끊긴 채 완전히 고립된 당시 광주를 제 집 드나들 듯 들락거렸다는 것부터가 황당하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게 참담할 따름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저들과는 토론은커녕 대화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성찰과 공감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저들의 '확증편향'은 정신적 결함이 아니라 역사를 왜곡하는 강력한 무기인 까닭이다. 언론이 관심을 보일수록 더욱 기세등등해지는 모양새다.

분명 영화는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만, 되레 5.18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 '김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선 당시의 고통스런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야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내레이션에 담기면서 영화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시민군들이 기억하는 '김군'은 넝마주이   
 
 영화 <김군>은 지만원이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사진 속 인물들을 북한 특수부대원들인 ‘광수’로 지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 <김군>은 지만원이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사진 속 인물들을 북한 특수부대원들인 ‘광수’로 지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 영화사 풀

 
시민군들이 기억하는 '김군'은 넝마주이였다. 쓰레기를 주워 담으며 광주천 다리 밑에 여럿이 함께 모여 살던 밑바닥 인생이었다. 비상계엄이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심지어 전두환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해했던 일자무식이었을지언정, 그는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분노할 줄 알았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다.

그는 자청해서 계엄군과 대치하는 가장 위험한 곳에서 경계 근무를 섰다. 이내 교전이 벌어졌고, 도주하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즉결 처분 당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계엄군은 그를 무릎 꿇린 채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겼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잊혀졌다.

그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봤다는 한 시민군은 지금껏 살아남았다는 죄의식 속에 수십 년을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함께 총을 들었던 다른 이는 죄의식 때문에 그 후로 오랫동안 망월동 묘역에 차마 가질 못했다고 울먹였다. 지금도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는 피해자들의 증언도 이어진다.

지만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영화 <김군>을 통해 '광수 1호'가 북한 사람임이 간접적으로 확인되었다며 전혀 엉뚱한 주장을 폈다. '김군'이 '광수 1호'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스스로 북한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지 못하면, 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마는 서글픈 현실이다.

수십 년 동안 진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입에 재갈을 물려놓고선, 이제와 스스로 폭도가 아님을 증명하라는 그들의 억지에 영화 속 피해자들은 분노와 눈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 시민군은 비통함을 숨긴 채 이렇게 말했다.

"80년 광주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제발 왜곡만은 하지 말아 달라."

지만원이 끌고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밀면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서울 한복판 시위 현장의 분위기는 오늘도 뜨겁다.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거나 가짜 유공자들이 혈세를 축낸다는 저들의 악다구니에 피해자들은 더욱 움츠러들게 된다. 피해자가 외려 죄인인 양 숨어사는 세상이다.

바로 그때 5.18 당시 특전사령관으로서 광주 학살을 진두지휘한 정호용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전두환보다 한 살 어린 1932년생이니 낼모레면 그도 90살이다. 태극기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는데, 5.18은 북한이 사주한 폭동이라며 사자후를 토하는 모습이다.

영화에 나온 시민군 한 명은 정호용이 군인들 앞에서 다른 시민군을 즉결 처형하라고 명령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는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 증언이다. 증언과 정황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지금껏 정호용은 5.18 당시 아예 광주에 없었다며 발뺌하고 있다.

서로 두 손 꼭 잡으며 '반갑다' 말 건넨 시민군
 
 영화 <김군> 스틸컷

영화 <김군> 스틸컷 ⓒ 영화사 풀


영화는 끝으로 당시 시민군들의 만남을 주선한다.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하며 보낸 그들은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못하고 수십 년의 한 많은 세월을 견뎌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머릿속에서 당시의 기억을 지워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었을 테다.

그들은 서로 두 손을 꼭 쥐며 '반갑다'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반가움보다 서글픔이 짙게 서려있고, 앙다문 입술에서는 역사 왜곡과 폄훼에 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당시 시민군들의 숱한 증언이 무시되고 조롱 받는 현실에 참담해하면서도, 차마 더는 가슴 속 이야기를 꺼내놓지 못한 채 영화의 자막은 올라가고 만다.

하지만 관객이 그들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가슴 속을 들여다보기란 어렵지 않다. 비록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에 숨죽여 사는 선한 이웃들이지만, 역사 왜곡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만큼은 굳건하다. 이심전심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함께 관람한 지인들과 이구동성 이런 소감을 나누었다. 어쩌면 영화 속 피해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미처 못다 한 말이 아니었을까.

"이렇듯 시민들의 증언은 쏟아지는데, 왜 당시를 증언하는 계엄군은 단 한 명도 없을까. 그저 상관의 명령을 어쩔 수 없이 따랐다는 그 말 한 마디 내놓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광주시민들은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부디 5.18의 진실을 밝히는 데 나섰으면 좋겠다."

사족 하나. 영화 <김군>은 2018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5.18 당시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군들을 상징하는 '김군'이 가장 먼저 부산을 찾은 것이다. 당시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제 관계자들과 부산시민들에게 호평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한편, 지난달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추념식이 치러졌을 때, 광주 학살의 현장이었던 금남로에서는 '태극기부대'가 원정을 와서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그때 그들이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며 불러댄 노래는 얄궂게도 '부산 갈매기'였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은 분노를 삭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영화 김군 광수 1호 5.18 민주화운동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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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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