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됐다. 그 '탄핵'의 봇물을 터트린 주인공은 K스포츠 체육 재단의 노승일 전 부장이었다.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노승일씨는 '최순실 국정 농단'의 전말을 밝히는 데 앞장 선 일종의 '공익 제보자'였다. 

우리 사회 '갑질'의 대명사가 된 '땅콩 회항', 그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대한항공 사무장 박창진도 있다. 2014년 12월 많은 승객을 실은 대한항공 086 편은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갑작스럽게 회항했다. VIP였던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지시였고 이륙 도중 박창진 사무장은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다. 기내 마카다미아 서비스 메뉴얼에 대한 조현아 전 부사장의 오해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사건 초기 사측의 압박과 회유로 거짓 진술을 강요 받았지만, 박창진 사무장은 방송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폭로했고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든 '땅콩 갑질 사건'의 분수령이 되었다. 
 
5월 31일 방송된 KBS 1TV 시사 교양 프로그램 <거리의 만찬>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져 가는 당시 사건의 주인공들을 초대했다. 이들은 왜 공익 제보자가 되었으며, 그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본인들이 아니고서는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2001년 줄리아 로버츠에게 골든 글로브 여우 주연상을 안겨준 <에린 브로코비치 (2000)>는 중금속을 배출하는 대기업을 상대로 한 한 여성이 끈질긴 소송 끝에 승리를 쟁취하는 내용을 담았다. 영화 속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던 여성은 결국 지역 사람들을 지지를 얻어내 대기업을 굴복시켰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에린 브로코비치' 공익 제보자들의 현실은 어떨까? 그 주인공인 노승일 씨와 박창진 씨는 지금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은 왜 '공익 제보자'가 되었나?
 
배드민턴 선수 특기자로 대학에 간 노승일씨는 이후 증권맨으로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최순실을 만나 함께 일을 했지만 첫 번째 해고를 당하고, 이후 다시 최순실의 부름을 받아 독일로 가게 된다. 삼성과 최순실의 딸 정유라 사이의 커넥션의 목격자가 된 그는 '승마 사건'이 벌어지자 다시 또 일방적인 해고를 당했다고 한다.

독일에 혼자 남겨진 노승일은 곰팡이 핀 마늘쫑과 간장에 소면을 말아 먹으며, 밭에 남겨진 감자를 주워 먹으며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단다. 그렇게 혼자 견딘 그는 자신이 목격했던 자료를 메모리카드에 넣어 신발 밑창에 숨긴 채 귀국했다. 매일 밤 말 관리사가 없는 시간을 틈타 자료를 스캔하고 그 자료를 다시 태우는 과정에서 불길 때문에 주민의 신고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전혀 신변의 보장이 되지 않는 환경을 견디느라 늘 주변에 칼을 두고서야 잠을 청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노승일씨는 자료를 모으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그가 지켜보고 목격했던 모든 것을 그 자료와 함께 만천하에 '폭로'했다. 

그는 자신의 공익 제보에 대해 "복수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비록 일방적인 해고를 두 번이나 당했지만 '신의'를 강조했던 최순실 개인에게는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사람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이 가장 무섭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 공익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박창진 사무장은 자신의 공익 제보는 '생존'의 문제였다고 했다. 2005년 입사 3년 차에 사무장으로 급속 승진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2010년 팀장이 되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VIP가 탄 비행기의 운항을 담당했다. 그 중에서도 KIP 즉, 대한항공의 오너 일가를 지속적으로 모셔왔다. 심지어 조양호 전 회장의 아내 이명희씨의 꽃놀이를 위한 비행까지 동승했다고. 그런 VIP의 탑승이 예정돼 있을 때는 한 달 전부터 마치 배우들의 연기연습처럼 메뉴얼을 습득해왔다고 한다. 당연히 그날의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제공한 건 '알레르기' 환자에 대응한 새로운 메뉴얼에 따른 정당한 응대였다.

그러나 조현아 전 부사장은 욕설 섞인 고성을 지르며 "내리라"고 지시했다. 홀로 겨울의 미국 공항에 박창진 사무장이 남겨진 이유다. 그리고 귀국 후 질책과 회유가 이어졌다. 참고인으로 박창진 사무장이 검찰에 출두했지만 조사실 안에는 대한항공 관계자가 있었고, 박 사무장을 가해자로 사건을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그는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가 인권 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민간 업체가 관여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고 열 수 있는 문이 없어구나, 나는 죽을 수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하며 TV 인터뷰를 하게 됐다"고 한다. 

제보 이후, 여전히 어깨에 얹혀진 내부 고발자의 무게 
 
힘겹게 공익 제보를 택한 두 사람의 삶은, 그 이후 더욱 힘들어졌다. 노승일씨는 서울을 떠났다. 검찰 조사만 6개월이 넘게 걸렸고 서초동에서 계속 이어진 조사는 끝이 없었다. 공익 제보자인 동시에 '내부 고발자'가 된 그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또 그럴 것"이라는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낙인은 그가 새로운 삶을 꿈 꿀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광주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자 내려간 곳에서 폐가를 만났고 없는 돈에 대출까지 받아 새로이 건물을 지어 무엇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그만 불이 나고 말았다. 그의 어려운 상황이 전해지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을 해주기도 했다고. 하지만 노승일씨는 그 돈으로 자신의 집 대신 불이 난 옆집 할머니를 도와드렸다. 지금은 광주에서 자신이 그간 하던 일과 무관하게 삼겹살 집을 운영 중이다. 

박창진 사무장은 사무장 대신 지부장이란 직함을 얻었다. 하지만 사무장을 잃은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신상 털기'부터 시작해 그를 향한 악의적인 가짜 뉴스와 루머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대한항공 사내 게시판은 역으로 "박창진이 갑질을 했다"는 등 줄줄이 악성 댓글로 도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아마도 <거리의 만찬> 출연 이후에도 그럴 거라고 그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수차례의 휴가와 병가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복직 후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에 큰 양성 종양을 수술했고 그 후유증으로 측만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 그보다 더 마음이 아픈 건 같이 일한 팀원들이 자신의 감시자로 돌변하여 등을 돌린 현실이었다. 다행히 직원 연대 노동 조합이 결성되어 지부장으로 자신의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노승일씨는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당연히 또 '공익 제보자'가 될 거라며, 대신 '코트'는 바꿔 입고 나가겠다고 넉살 좋은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고단한 현실을 이야기 하는 그의 눈엔 눈물이 고인다. 하지만 노승일 씨도, 박창진 씨도 언론에 인터뷰를 할 때는 자신과 같은 '공익 제보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밝게 웃고 힘 있게 이야기 하려 한다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인다.
  
<거리의 만찬>은 이제는 가물가물해져 가는 두 공익 제보자를 초대해 그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그 사건을 환기한다. 그리고 두 공익 제보자의 여전히 무거운 현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짚어본다. 

2015년 2월 12일 조현아는 항공 안전을 위반한 혐의로 1년 징역 형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항로 변경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집행 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법원 상고심 역시 같은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17년 '항로 변경죄'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반면 박창진 사무장과 마카다미아를 제공했던 승무원은 미국 뉴욕 주 법원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각하되었다.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우리 사회에 '갑질'에 대한 문제 의식을 심어준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그 '사회적 책무'의 대가를 여전히 무겁게 짊어지고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