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그라운드의 기적을 뛰어넘은 두 팀이 만나는 최고의 결승전이 수많은 축구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2018-2019 유럽 축구 시즌을 마감하는 마지막 게임이기도 하지만 한국 축구 팬들에게는 손흥민이 뛰는 빅 매치이기에 더 그렇다. 이 게임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손흥민 입장에서는 더 특별할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축구의 희망 '손흥민'이 활약하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 FC가 2일(한국 시각) 오전 4시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리는 2018-2019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강팀 리버풀 FC를 상대로 사상 첫 우승을 노린다.

맨유 '박지성'의 아쉬웠던 결승전 셋

우리가 자랑하는 축구 선수들 중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험이 있는 선수는 현재까지 박지성이 유일하다. 맨유의 멈추지 않는 심장으로서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동료들을 위해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친 박지성은 2008년 5월 22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첼시FC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아쉽게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마침 그 게임이 맨유가 이 대회에서 우승한 가장 최근 기록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박지성은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1년 뒤 로마에서 열린 결승전에 스타팅 멤버로 뛰는 잊지 못할 경험을 누렸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오넬 메시가 이끌고 있는 FC 바르셀로나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0-2로 패하고 말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웨인 루니라는 걸출한 선수가 박지성과 함께 맨유의 공격을 이끌었지만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끌고 있는 FC 바르셀로나의 완성도 높은 축구를 허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 게임에서 박지성은 66분까지 뛰고 베르바토프가 들어오면서 벤치로 돌아와야 했다.

박지성은 2011년 5월 29일 한 번 더 그 빛나는 결승전 무대를 밟았다. 리그를 뛰어넘은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FC 바르셀로나와 또 만난 게임이었으니 이번에는 정말로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승전 점수 차이는 2년 전과 같아서 '바르셀로나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끝났다. 웨인 루니가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동점골을 넣었다는 것만으로도 뒤집기 희망이 보였지만 리오넬 메시, 다비드 비야의 현란한 발기술과 완벽에 가까운 팀 플레이 앞에 맨유는 속수무책이었다. 

맨유의 박지성은 팀의 전설 라이언 긱스(11.16km)에 이어 맨유에서 두 번째로 11.06km나 뛰어다니며 풀 타임 활약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인가는 박지성에게 찾아온 세 게임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손흥민의 시대
 
 2019년 5월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와 토트넘의 경기.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

2019년 5월 9일 오전 4시(한국시간), 네덜란드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아약스와 토트넘의 경기.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 ⓒ AP/연합뉴스

 
한국 축구의 전설이 된 박지성에 이어 토트넘 홋스퍼 FC의 손흥민에게도 기회가 왔다. 박지성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처음으로 뛴 나이가 28살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만 26살의 손흥민이 경험하는 이 결승전은 더 특별하다고 하겠다. 손흥민의 진짜 실력을 맘껏 자랑할 수 있는 무대가 마드리드에 열린 셈이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겸손한 조력자였다면 손흥민은 당당히 토트넘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에 다녀오는 피곤한 일정 속에서도 소속 팀 토트넘 홋스퍼에서의 공격 기여도는 특별했다. 

특히, 이 대회인 챔피언스리그에서 손흥민은 누구보다 토트넘의 영웅이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를 무너뜨리는 오른발 점프 발리 킥 득점 순간은 세계 톱 레벨 포워드로서의 향기가 퍼져나갔고, 프리미어리그 맞수 맨체스터 시티를 무너뜨린 골들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 없는 발군의 퍼포먼스였다. 

지난 4월 10일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8강 1차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손흥민의 결승골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손흥민은 웬만한 선수들이라면 포기했을 공을 끝까지 따라가 엔드 라인 바로 위에서 살려냈고 왼발 슛을 시원하게 차 넣은 것이다. VAR(비디오 판독 심판) 시스템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기에 손흥민의 왼발 결승골은 더 짜릿했다. 

4월 18일 어웨이 게임으로 열린 8강 2차전에서도 손흥민은 믿기 힘든 역습 퍼포먼스와 슛 정확도를 자랑하며 2골을 몰아넣었다. 그의 오른발 감아차기 추가골에 맨시티가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임이었다.

손흥민과 토트넘 동료들은 돌풍의 팀 AFC 아약스(네덜란드)를 상대로 기적의 준결승 2차전을 만들어내며 구단 역사상 첫 결승전 진출 쾌거를 이뤘다. 상대 팀 리버풀 FC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FC 바르셀로나를 4-0으로 눌러버리는 기적의 준결승 2차전(5월 8일) 실력을 자랑했다. '안필드의 기적'이라는 새로운 축구 수식어를 만들어낸 날이었다. 

마침 서로를 잘 아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났고 이번 시즌 맞붙은 두 차례의 프리미어리그 결과 리그 2위에 오른 리버풀 FC가 모두 2-1 승리를 거뒀기에 많은 전문가들은 리버풀의 근소한 우위를 예상하고 있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 리버풀과의 두 게임에 모두 교체 선수로 뛸 수밖에 없었다. 한국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돌아온 시기와 공교롭게도 겹쳤기 때문이었다. 지난 해 9월 15일에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리버풀을 만났을 때, 손흥민은 73분에 미드필더 해리 윙크스 대신 들어갔다. 

후반전 추가 시간에 에릭 라멜라의 추격 골이 터져 1-2로 토트넘이 따라붙었고 종료 직전인 후반전 추가 시간 5분경에 손흥민은 마지막 동점골 기회를 잡아 오른발 슛을 시도했다. 거기서 사디오 마네의 몸으로 밀기가 거칠었기에 손흥민은 오른발 슛을 날리지도 못하고 억울함을 호소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 4월 1일 안필드에서 다시 만난 게임에서도 손흥민은 69분에 수비수 다빈손 산체스 대신 들어가 0-1로 뒤지고 있던 토트넘의 반전 분위기 메이커로 뛰었다. 손흥민이 들어가자마자 루카스 모우라의 오른발 동점골이 터졌고 정말로 반전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85분에 만들어진 역습 기회에서 손흥민은 무사 시소코로부터 빠른 전진 패스를 기다렸지만 시소코의 무리한 슛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87분에도 손흥민의 전진 패스가 왼쪽 측면에서 대니 로즈에게 좋은 득점 기회를 만들어주었지만 로즈의 킥 실수가 안타깝게 이어졌다. 결국 토트넘은 90분에 모하메드 살라의 헤더 슛을 막는 과정에서 수비수 토비 알더베이럴트의 자책골로 패하고 말았다. 

이번 시즌 두 팀의 경기 양상만으로도 손흥민에게는 이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더욱 이겨야 하는 게임이 된 셈이다. 좀처럼 막아내기 힘든 스피드를 자랑하며 토트넘의 역습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리버풀의 미드필더 조단 헨더슨와 파비뉴, 그리고 최고의 센터백 실력자로 떠오른 페어질 판 다이크가 손흥민의 역습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느냐가 이번 결승전 가장 중요한 갈림길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대 팀인 리버풀 FC에도 손흥민만큼이나 이 결승전을 기다리는 선수가 있다. 이집트의 축구 영웅 모하메드 살라가 그 주인공이다. 손흥민보다 28일 먼저 태어난 모하메드 살라는 지난 시즌 이 대회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승전 시작 후 25분만에 뜻밖의 부상을 당해 눈물을 흘리며 그라운드를 벗어나야 했다. 

26살 동갑내기 두 선수가 자신들의 축구 인생에서 함께 경험하기 힘든 결승전에 만나게 된 운명의 시간이다. 그동안 이들이 경험한 수많은 게임에서 눈물도 흘려봤기에 이 결승전에서 가장 빛나는 별로 마드리드의 밤하늘에 남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초록 그라운드 가장 꼭대기에 빛나는 별은 단 하나다. 손흥민 혹은 모하메드 살라가 그 별로 기억되기에 좋은 봄밤이 곧 열린다.

◇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앞둔 유럽축구연맹의 예상 라인 업
- 2019년 6월 2일 일요일 오전 4시,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 - 마드리드

토트넘 홋스퍼 FC(4-2-3-1 감독 :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FW : 해리 케인
AMF : 손흥민, 델리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
DMF : 해리 윙크스, 무사 시소코
DF : 대니 로즈, 얀 베르통언, 토비 알더베이럴트, 키어런 트리피어
GK : 위고 요리스

리버풀 FC(4-3-3 감독 : 위르겐 클롭)
FW : 사디오 마네, 호베르투 피르미누, 모하메드 살라
MF : 조르지뉴 베이날둠, 조단 헨더슨, 파비뉴
DF : 앤디 로버트슨, 페어질 판 다이크, 요엘 마티프, 알렉산더-아놀드
GK : 알리송 베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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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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