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 KBS

 
노무현에 대해 말하던 유시민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우리나라 유일하게 모든 권력 중에 유일하게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언론 권력이에요. 지금도요.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여러 스캔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여배우와 관련된 건이요. 대통령의 아들이나 형이나 동생이나 이런 사람이 그런 추문에 휘말렸다고 생각해봐요. 그 당시에 그때 그렇게 넘어갔겠어요? 통화 기록 1년치가 다 없어지고 그런 일이 가능하겠어요? 지금도요."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

맞다. 한국의 유력 언론 사주들은 대대손손 그 권세를 물려준다.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지만, 그 권력은 여전히 성역에 가깝다. 그 견제받지 않은 권력과 유일하게 '맞장' 뜬 대통령, 임기 전부터 말까지 대립각을 세우며 '언론개혁'을 실천하고자 했던 권력자. 그리하여 임기 후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고, 그 이후에도 언론의 공격 대상이 됐던 전직 대통령 노무현. 최근 공개된 그의 대통령 재직 시절 메모에서도 언론개혁에 대한 눈에 띄는 내용이 발견됐다.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척."
 
지난 2일 방송된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2편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지난주에 이어 노무현이 재임 시절 언론과 벌인 '숙명적 대척'을 다뤘다. "(언론과의) 전투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패하셨어요"라던 유 이사장의 분석처럼, 결과는 이미 알려진 그대로다.

"한국의 대형 언론사를 가지고 있는 사주들은요. 법 위에 있어요. 지금도요. 노무현 대통령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저 견제 받지 않고 선출된 적도 없고 교체되지도 않을 저 항구적(恒久的)인 사적 권력이 공론의 영역에서 미치는 힘을 무기로 삼아서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고 있는 이 사태를 참을 수 없다, 그거였어요. 그래서 우선 세무조사부터 받게 하고. 그렇죠? 그 다음에 말로 싸우고. 합법적인 범위에서 벗어나는 어떤 권력 행사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언론을) 못 이긴 거죠.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노무현의 언론 개혁'을 되짚어 보는 일은 중요하다. 여전히 언론이 한국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리라. 최저임금이나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의 집요한 공격을 보라. 무턱대고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 물고 늘어졌던 참여정부 당시 논조와 판박이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언론관이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노 전 대통령은 언론개혁을 '역사적인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일까. 또 그런 대통령의 숙명에 대응해 (정파 가릴 것 없이) 언론들은 어떻게 저항하고 또 공격했을까.

언론개혁, 노무현의 숙명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 KBS


"언론의 영향력이 진짜 대단한 게 저도 오늘 이 방송하기 전까지 세무조사로 (언론을) 길들이려고 했다고 오늘날까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세무조사를 받지 않는 게 특혜였던 거 아니겠습니까?"

패널인 최욱이 되물었다. 맞다. 세무조사를 받는 것이 상식이고, 받지 않는 것 자체가 특혜지만, 언론사들은 그 특혜와 특권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사들의 특혜와 특권에서 나오는 패거리 문화, 엘리트주의, 사실과 부합하기보다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보도들과 단호히 거리를 두고자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한 유 이사장의 설명은 이랬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노 대통령은 협잡(挾雜)하지 않고 그냥 독립한 주체로서 당당한 언론. 그러나 수준 있는 보도를 하는 언론. 그런 거를 되게 바라셨죠. 그게 상식적인 거 아니에요? 그냥 대통령이 바라는 언론이라는 게 그거밖에 더 있겠어요? 노 대통령은 지극히 상식적인 언론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냥 참고 지나가는 것이 스스로 너무 비굴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사방에서 그렇게 말리는 데도... (노 대통령이) 상당히 로맨틱한 분이셨어요."
 
그 언론개혁을 향한 숙명이 대선 경선 시절부터 언론으로부터 갖가지 공격을 당해야 했던 노 대통령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든, 한국사회 개혁을 향한 대의든, 중요한 것은 실천의 문제였을 터.

이날 <저널리즘 토크쇼 J>가 되짚은 '노무현의 언론개혁'을 향한 실천상은 확실히 전무후무한, 언론사에 길이 남을 '역사'였다. 제작진이 처음으로 꼽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발언이 그랬다. 2001년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가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 조사에 대해 '언론 탄압'이라 규정했고, 같은 질문을 받은 당시 해양부 장관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취지를 밝혔다.

"언론은 더 이상 특권적 영역이 아니다. 언론과 싸울 기개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언론과의 전쟁 선포를 불사할 때가 됐다."

당시 <조선일보>는 '노무현씨의 언론전쟁'이라는 사설에서 "과거 어느 독재정권 시절에도 들어보지 못했던 놀라운 발언이다. 언론이라는 것이 당장 압살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무슨 '악마' 같은 존재라는 망상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라고 비판했고, <경향신문> 역시 '노무현 장관의 반언론적 망발'이라는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언론과의 전쟁이란 결국 권력이 언론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말이고 이는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독재권력을 만들겠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노무현 vs. 언론'이란 대립각은 이미 집권 전부터 형성됐고, 이러한 비우호적인 관계는 진보와 보수란 정파를 가리지 않았다. 집권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그런 대 언론관을 정책으로 실현시켜 나갔다. 취임 직전 당시 신생 언론이었던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것 역시 파격(이자 기성 언론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히게 만든 행동)이었다. 여기서 말한 '권언유착'이야말로 노 전 대통령의 언론개혁을 가리키는 키워드라 할 수 있었다.
 
정파 가리지 않은 기성 언론들의 반발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 KBS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완전히 끊는다는 것입니다. 의지할 생각 하지 마라. 그리고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정정당당하게 해 보자. 옛날에는 정권에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그 보도를 좀 빼 달라, 고쳐 달라. 그리고 앞으로 우호적인 기사를 써 줄 것을 기대해서 말하자면 자주 만나고 소주파티하고 향응하고 이런 방식으로, 어떻든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하자면 비논리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비적 방법으로 이렇게 이제 대응해왔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이번 청와대와 정부는 아주 원칙대로 해나갈 생각입니다."

자, 그 원칙에 따라, 정부 부처의 일간지 가판 구독을 금지했다. 2004년 상반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정부 부처가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도입했다. 이른바 기자실 제도 폐쇄다. 그해 6월 미국 <뉴욕타임스>로부터 "(한국의) 언론과 권력을 서로 결착시켰던 고리가 드디어 해체되다"란 논조의 기사를 끌어낸 파격적인 조치였다.

정보담합은 물론 촌지 문화도 사라졌다. 기자들이 당연하게 누려왔던 특권들을 내려놓게 한 조치들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환경 변화가 보도의 논조를 바꿀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을 터다. 하지만 집권 내내 노 전 대통령은 더욱 더 거센 언론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2007년 1월,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기자실의 담합을 실태조사"하란 특단의 조치까지 내렸다.

당시 유시민 장관이 이끌던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새로운 국민건강 대책에 대한 언론 보도가 문제였다. 유 장관의 표현에 따르면, "천편일률(千篇一律)로 그냥 '재원 대책 없는 장밋빛 대선 공약'"이란 논조의 보도들이 넘쳐났고, 이를 접한 노 전 대통령이 결국 '대노'(大怒)하게 된 것이다. 당시 노 대통령의 대응과 언론의 보도를 떠올린 유 이사장은 "지금 생각해도 악몽"이라고 했다.

이는 넉 달 후인 2007년 5월, 기자실 통폐합, 브리핑 룸 제도 등이 포함된 정부의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란 조치로 이어졌다. 기자실이란 언론사의 핵심적인 특권을 건드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언론들의 저항은 초유 사태였던 바. <저널리즘 토크쇼 J> 제작진이 발굴한 이러한 독한 기사들이 바로 그 증거다.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 KBS

 
"노대통령의 언론정책은 관가의 문을 잠그고 기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 모습이다. 5공 언론통제의 악몽을 떠올리는 시각도 있다. 홍보처가 정부 정책의 홍보전위대라는 거듭된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장악기구로 나선 데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 2007년 5월 23일자 <'5共의 악몽'이 떠오른다> 기사 중)

"1980년대 언론 통폐합과 보도지침보다 더 악랄한, 더 가혹한 언론 통제다. '노무현 정권 언론말살 저지 투쟁본부'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며 정권 퇴진 규탄대회를 열어야 한다.'" ( <동아일보> 2007년 5월 24일자 <"5共때보다 더 악랄한 언론 통제">)


<경향>과 <동아>가 통일된 목소리를 냈다. 여타 언론들은 어땠겠는가. 참여정부의 언론 정책이 전두환 정권 시절인 제5공화국 때보다 더 악랄하고, 가혹했다니, 작금의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제1야당의 '좌파독재'란 '워딩'과 닮아 있지 않은가. 패널인 정준희 중앙대 교수는 당시 언론들의 심리를 이렇게 독해했다.

"'왜 이 자는 무릎을 꿇지 않을까?'라는 심리가 사실은 저는 이 뒤에서 읽혀요. 그러니까 자기들도 말하기에는 사실은 민망했을 텐데 '5공보다 악랄한 언론통제' 최근 독재 발언하고 되게 유사하죠? 5공의 어떤 언론 통제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사실은 이런 얘기는 당연히 할 수 없는 그런 문제라고 보고요(중략). 여기에서는 소위 말하는 정파적 견해 차이나 좌우의 어떤 견해 차이 이런 것들은 없이 일치된 그런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유시민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 KBS


잘 알려지다 시피, 퇴임 이후 서거 직전까지 노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언론에 시달려야 했다. 퇴임 직후부터 서거까지 노 전 대통령이 봉하 마을에서 꿈꿨던 미래를 조명한 영화 <시민 노무현> 역시 그 기간 쏟아진 언론의 공격을 잘 포착해 냈다.

아마도 그러한 언론의 공격 역시 노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에 일조했으리란 평가가 없지 않다. "한때 우리나라가 절망적이라 생각했다"던 유시민 이사장.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던 그는 울컥하는 감정에 급기야 눈물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제가 내린 결론은 그런 거예요. 인간 세상은 합리적이지 않더라고요. 그냥 지나고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는 게 세상이에요. 너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고 그러고 해석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 너무 격분해서도 안 될 것 같고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들이 다 아무 이치도 없이 그냥 모든 일들이 그냥 다 일어나니까 그걸 다 인정해야 한다,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우리 삶은 그 양극단의 사이에 중간 어디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저도 한때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그만해야겠다."

 
누군가를 원망했던 마음을 털어 놓으려다 눈물을 비친 유 이사장. 그 누군가는 아마도 MB와 정치검찰일 수도, 언론일 수도, 극단에서 전직 대통령 노무현을 공격했던 그 모두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원망했던 마음과 달리 희망섞인 전망을 내놓은 유 이사장은 눈물을 비추기에 앞서 이런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언론 환경과 관련해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변화 지점일 것이다.

"저는 한때는,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거는 헤어날 방법이 없다. 현직 대통령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대안 미디어들이 생기면서 이제는 극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좀 가지고 있는데요. 저도 유튜브를 하잖아요(중략).

그래서 덜 무서워요. 그래서 예전에는 언론인들이 바뀌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지금은 그런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냥 그대들은 그대들대로 사시오. 나는 나대로 살아갈 테니. 이제는 좀 견딜 만한 세상이 되었다. 그 정도의 태도로 살고 있죠."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2019년 6월 2일 방송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노무현과 언론개혁 ②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편 중 한 장면. ⓒ KBS

 
언론인들이 바뀌기를 바라지도 않고, 희망도 갖지 않는다는 유 이사장. 그는 반대로 대안 미디어들을 통해 언론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품는다고 말한다. 노 전 대통령처럼 바뀔 리 없는 언론과의 전투를 벌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렇게 노무현의 언론개혁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우리는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등 기성 언론과는 또 다른 플랫폼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의 시대'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노무현의 전쟁은, 언론개혁이란 숙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이날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분명 현재진행형이었다.
노무현 유시민 저널리즘토크쇼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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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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