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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내로라는 '골초' 세 아이와 담배에 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영우는 1학년, 준서는 2학년, 양수는 3학년이다. 아이들은 모두 굳이 실명을 밝힌다 해도 문제될 것 없다고 했지만 분명 자랑할 일은 아니다 싶어 가명으로 처리했다.

학년은 달라도 셋은 모두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영우와 준서는 중학교 선후배 사이고, 양수는 고등학교 들어와서 준서와 친해지게 됐다고 했다. 2년 터울인 영우와 양수는 준서가 다리를 놓아 알게 된 사이다. 말하자면 '담배로 맺어진' 우정이다.

그들을 따로 불러 만난 건 청소년 흡연율에 관한 기사 때문이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줄곧 하락하던 청소년의 흡연율이 최근 들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기사화되었다. 아이들이 느끼기에도 그런지, 또 그렇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그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세 명의 고등학생 골초
 
그들을 따로 불러 만난 건 청소년 흡연율에 관한 기사 때문이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줄곧 하락하던 청소년의 흡연율이 최근 들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기사화되었다.
 그들을 따로 불러 만난 건 청소년 흡연율에 관한 기사 때문이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줄곧 하락하던 청소년의 흡연율이 최근 들어 다시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기사화되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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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밝혀둘 게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라면 몰라도 고등학교에선 담배 피는 아이들에 대한 처벌이 과거에 비해 훨씬 약해졌다. 흡연 학생의 수가 늘어나서라기보다는 과거엔 생각지도 못했던 일탈행위가 차고도 넘쳐 교사들이 아이들의 흡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것이다.

왕따 문제와 자해, 절도와 폭력, 교권 침해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선도위원회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리는 마당에 흡연 정도는 상대적으로 문제될 것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흡연에 비교적 관대한 분위기 탓인지 아이들도 흡연자임을 굳이 감추려들지도 않는다. '골초'들과 만남이 쉽게 이루어진 배경이다.

그들은 언제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까. 양수는 고등학교 들어와서 처음 피웠다고 했고, 나머지 둘은 각각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라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자기들은 비교적 늦게 시작한 경우라고 말했다. 이른 경우엔 초등학교 3~4학년 때 배운 아이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등학생 정도면 대략 한 반에 서너 명 정도는 '체인 스모커(Chain Smoker)'라면서, 비율로 따져 10%가 조금 넘을 거라고 단언했다. 간혹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웬만해선 일주일도 못 버티고 다시 담배를 찾게 된다는 친구들의 경험담도 들려주었다. '골초'라는 뜻일 테지만 EDM 그룹 이름이기도 한 '체인 스모커'라는 말을 아이들은 눙치듯 썼다.

그들은 어떻게 자칭 '체인 스모커'가 됐을까. 세 명 모두 호기심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진'까지는 아니더라도 담배 정도는 피울 줄 알아야 또래들 사이에서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뭣도 모르는 중딩 시절'의 추억이라며 다들 겸연쩍어했다.

셋 중 가장 빨리 시작했다는 영우는 담배가 '잘 나가는'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기 위한 '신분증'이었다고 말했다. 친구가 담배를 찾을 때 언제든 호주머니에서 라이터와 함께 꺼내줄 수 있어야 '진정한 친구'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체인 스모커'는 담배로 우정이 싹트고 관계가 이어지다보니 생긴 결과물인 셈이다.

1학년인 영우를 제외하고, 둘은 올해 들어 금연에 도전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담배가 공부는 물론, 학교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큰 맘 먹고 담배와 라이터를 휴지통에 버렸단다.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물도 많이 마시고 주전부리를 입에 달고 지냈지만 여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액상담배, 골초들의 대체재가 될 순 없겠지만

그 즈음 준서가 주변으로부터 소개받은 게 액상 전자담배였다고 한다. 처음 기계를 구입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금연에 도움을 줄 거라는 조언을 이곳저곳에서 들었단다. 더욱이 새로 출시된 신형 스마트폰을 부러워하듯 액상 전자담배를 구입해 피우는 친구들의 모습이 조금 부럽기도 했단다.

그런데 미성년자인 준서는 액상 전자담배를 어떻게 구입했을까. 시중 가게에서 사는 것도 그리 어려운 건 아니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실제 부모님 주민번호를 활용해 40% 이상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었다며 으스대듯 말했다.
 
해외 청소년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고 있는 신종 액상형 전자담배 쥴(JUUL)이 5월 24일 한국에 출시됐다.
▲ 신종 액상형 전자담배 "쥴" 해외 청소년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고 있는 신종 액상형 전자담배 쥴(JUUL)이 5월 24일 한국에 출시됐다.
ⓒ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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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이트마다 성인 인증 과정이 허술한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 자녀의 흡연에 대해 관대한 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자녀의 흡연 사실을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것이다. 담배를 못 피우게 하면 스트레스 받을까봐 자녀에게 직접 담배를 사준다는 부모도 드물지 않다.

영우와 양수도 액상 전자담배를 한 번 피워본 적이 있다고 했다. 역시 담배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호기심 때문에 부러 선배와 친구들 것을 빌려 피워봤다는데, 대번에 고개를 가로젓게 되더란다. 일반 담배 맛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한 번 경험하는 거라면 몰라도 두 번은 피우지 않을 것 같다고 혹평했다.

이는 준서가 액상 전자담배를 금연을 위한 보조 기구로 추천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세 명 모두 일반 담배와는 맛이 달라 '대체재'가 될 수는 없을 거라고 잘라 말했다. 되레 액상 전자담배를 피울수록 일반 담배의 맛이 그리워져 준서는 결국 금연에 실패했다고 핑계 삼기도 했다.

하지만 셋 다 액상 전자담배가 청소년의 흡연율을 높일 우려는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의 흡연자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진 못하지만 담배를 막 피우기 시작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차피 흡연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란다.

가격이 조금 더 내려가고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시험 삼아 입에 무는 아이들이 생길 거라는 예상이다. 일반 담배의 맛을 모르는 경우라면 자신들과 같은 거부감은 애초 없으리라는 것이다. 더욱이 재도 날리지 않고 불쾌한 냄새도 없어 학생부 선생님들에게 적발될 우려가 적다는 이점도 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어쩌면 '액상 전자담배에 다양한 향을 주입한 시도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 아니냐'며 의심하기도 했다. 이미 액상 전자담배가 출시되기 전부터 일반 담배에 다양한 과일 향을 첨가한 제품이 우후죽순 생겨난 터다. 이름 하여 '캡슐 담배'다.

실제 담배를 피우다 씹어봤다면서 기존의 박하 향에 더해 망고, 오렌지, 포도, 바나나, 딸기에다 콜라 향까지 맛볼 수 있는 제품들이 시판중이라 한다. 필터 속 캡슐을 씹어야 맛이 느껴지는 담배라는데, 처음엔 담배를 씹는다고 했을 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담배에 향을 주입했다고 해서 '가향 담배'라고도 불린다.

담배의 변신이 노린 것, 고등학생들의 일침

세 명의 '체인 스모커'는 '캡슐 담배'와 액상 전자담배 등 담배의 연이은 '변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하락하는 흡연율을 만회하기 위한 국내외 담배 회사들의 처절한 몸부림 아니냐고 반문했다. 특히 양수는 담배 회사들이 청소년들을 상대로 호주머니를 털 심산이라며 눈을 흘기기도 했다.

요컨대 아이들은 맛에서든 가격에서든 일반 담배에 견줄 바 못 된다며 액상 전자담배와 '캡슐 담배'가 대세가 되진 못할 거라 단언했다. 다만 담배조차 '신상'이라면 일단 사고 보는 이들이 있을 거라며 반짝 인기는 끌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준서는 담배를 끊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은 말짱 거짓말이었다며, 환불 받거나 되팔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도 했다.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양수는 청소년들조차 담배 회사의 마케팅 대상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나아가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보다 판매하는 사람이 더 나쁘고, 판매하는 사람보다 백해무익한 새 담배를 개발하는 기업이 더 나쁘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매번 대학입시로 인한 스트레스 탓에 청소년 흡연율이 높아졌다는 분석을 내놓는 건, 담배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청소년들의 흡연율을 진정 낮추고자 한다면, 담배를 보약으로 만들 게 아니라면, 만들어 팔지 말아야죠. 그래놓고선 허구한 날 담배 피는 학생들을 싸잡아 문제아라며 낙인찍기 일쑤잖아요."

태그:#액상 전자담배, #캡슐 담배, #청소년 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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