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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8월 31일 열렸다.

하지만 노회찬은 패배의 쓴잔을 들어야 했다. 당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 선거 결과 1차 투표에서 권영길 후보 49.37%, 심상정 후보 26.08%, 노회찬 후보 24.53%를 득표했다고 발표했다.
  
9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최종결선에 진출하게 된 권영길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손을 들어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권-심 결선 맞대결 9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최종결선에 진출하게 된 권영길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손을 들어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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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헌에 따라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가 없어 결선투표를 실시하고, 노회찬은 경선 패배 후 심상정 후보를 지지했으나 최종적으로 권영길 후보가 민노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노회찬은 이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권영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밤잠을 설치며 노력했으나 결과는 이번에도 참담한 패배였다.
 
민주주의 발전 요건은 보다 나은 지도자를 선출할 국민의 지적능력과 건전한 중산층이 있어야 한다(존 두이)하고,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노이만)고 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19일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문래동 당사에 마련된 선거개표상황실을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2007.12.19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19일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문래동 당사에 마련된 선거개표상황실을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2007.12.19
ⓒ 연합뉴스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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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된 것은 그 자신은 물론 나라의 횡액이었다. 건전한 가치관이 배제된 한국적 천민자본주의가 이명박과 같은 물신주의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득표율이 48.7%로 5년 전 노무현 후보의 득표율 48.9%보다는 적었지만, 여당 후보 정동영과 민노당 권영길 후보의 합계표가 이명박 후보의 표보다 훨씬 적다는 점은 그만큼 심각성을 보여주었다.

권영길 후보는 71만 2,121표를 얻었다. 선거 결과와 관련 분석가들은 경기침체와 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들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명박이 경제만은 살릴 것 아니겠느냐는 기대치가 투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해 전문가의 분석이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은 이미지와 연관이 깊습니다. 노무현의 언행이나 행동거지, 승부사 기질, 설익어 보이는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입니다. 대개는 노무현의 언행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실정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특히 성장제일주의 사고나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이 노무현의 언행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습니다.
 
'노무현의 실정'은 조선ㆍ중앙ㆍ동아 같은 언론 매체에 의해 크게 포장되고 확대되었습니다. 한미FTA 협정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아니고 5년간을 시종여일하게 공격했고, 노무현은 노무현답게 이들 언론에 즉자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주석 1)

 
선거 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심상정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진보진영의 분열이냐 봉합이냐가 정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즈음에 당내에서 중대한 문제가 일어났다. 이른바 '일심회사건'이다. 서울지검 공안 1부가 '일심회'라는 단체를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로, 소위 일심회사건을 발표했다. 노회찬의 말이다.

"그때 일심회사건 관련자들 문제가 핵심이었다. 조직의 주요 당직자가 조직원들의 인적 사항을 포함한 주요 기밀을 조직 외부(북한)로 유출시켰는데 이를 내부에서 징계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주석 2)
 
심각한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늘상 '좌경프레임'에 시달려온 처지에, 민주노동당 간부들의 주요 기밀 누출사건은 먹잇감을 찾던 수구세력에는 이보다 더 좋은 호재가 다시 없었다. 민노당을 향해 연일 좌경ㆍ용공이라 퍼붓고 이명박 정권의 족벌언론은 '빨갱이 색칠'에 나섰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비상대책위 대표가 3일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에서 열린 임시 당대회에서 최기영·이정훈 당원 제명을 골자로 한 일심회 관련 비대위 혁신안이 부결되자 굳은 표정으로 대회장을 떠나고 있다.

2008-02-03 23:18:26
 민주노동당 심상정 비상대책위 대표가 3일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에서 열린 임시 당대회에서 최기영·이정훈 당원 제명을 골자로 한 일심회 관련 비대위 혁신안이 부결되자 굳은 표정으로 대회장을 떠나고 있다. 2008-02-03 23:18:26
ⓒ 연합뉴스 진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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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대법원은 일심회 사건의 이적단체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민노당 간부 2명에게는 유죄를 선고했다. 당내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 이념갈등이 나타났다.

당 내부에서는 제가 경험이 꽤 있는 편이에요. 가장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편인데, 당시에 일련의 사람들은 지금 분당하더라도 선거 치르고 해야 된다. 선거 전에 분당하면 훨씬 손해기 때문에,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 탈당하는 게 더 이익이다. 민노당은 망할 거니까. 이렇게 서로 다른 관측들이 있었어요. 저는 분당 자체를 반대했다는 이유도 있고, 시간을 번다는 의미에서도 일단 총선 후에 다시 생각하자는 거였어요.
 
제가 아는 정치현실로 보면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그렇게 서로 싸워도 선거를 앞두고선 다 모인다. 선거에서 이겨야 되니까. 선거 6개월 전도 아니고, 한 달 앞두고 분당하면 우리가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정당하게 나왔더라도 우리 존재를 알아줄 사람이 누가 있느냐. 잘 모르는 사람을 누가 찍느냐. 선거공학적으로 지금 하면 안 된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주석 3)

 
당내에 분당론이 제기되고 있을 때 기밀누설 사건이 터지면서 노회찬과 심상정 등이 당을 떠났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민주노동당은 창당 5년여 만에 분당하게 되었다.
  
민노당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은 지난 11일 긴급 의원총회가 끝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빠른 시일 내 당 분열과 분란을 수습하겠다"고 말했다.
 민노당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은 지난 11일 긴급 의원총회가 끝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빠른 시일 내 당 분열과 분란을 수습하겠다"고 말했다.
ⓒ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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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8일 민주노동당 임시 당대회에서 당내 다수파인 민족해방(NL)파 대의원들의 반대로 심상정 위원장의 혁신안이 부결되었다.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원에 대한 제명안이 부결되면서 종북 논쟁도 거세졌다. 이때의 종북주의 논란은 당내 패권주의 문제와 맞물려 민주노동당 분당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심상정 위원장은 자신의 혁신안이 부결되자 조승수, 노회찬 등과 함께 민주노동당 내의 민족해방(NL) 파를 겨냥해 '종북'이라고 비판하면서 같은 해 2월 17일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 이후 이들은 진보신당의 전신인 새 진보정당운동에 합류했고, 민주노동당은 천영세 대표대행 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바뀌었다. (주석 4)

이 때에 '종북'이라는 용어가 나타나고, 이후 이 말은 수구세력이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쓰이는 독화살이 되었다.


주석
1> 서중석, 『대한민국선거이야기』, 261쪽, 역사비평사, 2008.
2> 『대한민국진보, 어디로 가는가?』, 143쪽.
3> 『진보의 재탄생』, 150쪽.
4> 『NAVER 지식백과』,「민주노동당」.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진보의_아이콘_노회찬_평전, #노회찬, #노회찬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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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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