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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의 숙소를 '아침식사 포함'으로 예약한 모양이다. 그런데 무슨 아침식사가 9시부터인지. 어제는 알람브라 궁전 투어 예약 때문에 식사를 못 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오늘은 느긋하게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어젯밤에는 북두칠성이 보이던 파티오에 그라나다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여행지에서 아침 식사는 꽤나 중요하다. 이동하다 보면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이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챙겨 먹어야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
 
(제일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보면) 버터, 살구쨈, 딸기쨈, 초코파우더, 데운 우유, 구운 빵 & 토마토 간 것과 올리브 오일입니다. 이걸 골고루 빵에 올려서 먹는 것이, 전통적인 아침식사예요!
▲ 스페인식 아침식사입니다.  (제일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보면) 버터, 살구쨈, 딸기쨈, 초코파우더, 데운 우유, 구운 빵 & 토마토 간 것과 올리브 오일입니다. 이걸 골고루 빵에 올려서 먹는 것이, 전통적인 아침식사예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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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차?"
"핫초코!"


분명히 어제 체크인 카운터에 아침 메뉴를 얘기한 것 같은데, 다시 물어보신다. 음료를 묻고, 빵을 묻고, 빵에 무엇을 올려서 먹을지를 다시 그대로 대답한다. 스페인의 아침은 꽤나 단순하다. 구워진 작은 바게트 빵에 올리브오일이나 토마토 간 것을 올려서 먹고, 여기에 차나 커피를 곁들이면 끝이다.

처음 스페인에 왔을 때는 잘 구워진 빵에 토마토를 올려먹는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는데, 꽤나 '신선한' 맛이다. 예전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잠시 지낼 때, 매 끼니마다 '아무 맛도 없는' 아보카도를 먹는 게 이상했는데 금세 익숙해졌던 기억으로도 연결되었다.

아침을 먹고, 세비야로 방향을 잡는다. 스페인에서 머물 마지막 도시인데, 가기 전에 <꽃보다 할배> 덕분에 알게 된 중세의 도시 '론다'에 들르기로 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도저히 사람이 지었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새 다리 (Puente Nuevo)'가 연결된 도시라니.

언젠가 <반지의 제왕>에서 그들이 지켜냈던 요새의 이미지와 겹쳐서 리스트에 넣어 두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라나다에서 론다까지는 구불구불한 산길로 두 시간 넘게 가야 했다. 운전을 하다 보니, 스페인에는 신기하게도 돈을 내는 도로가 없었다.
 
내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공포증이 밀려드는 곳인데, 어떻게 다리를 연결했을까요? 놀라울 뿐입니다.
▲ 론다의 상징인 "새다리 (Puente Nuevo)"입니다. 내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공포증이 밀려드는 곳인데, 어떻게 다리를 연결했을까요? 놀라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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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위를 따라 전망을 볼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거기에 세워진 전망대입니다. 정말 멋진 일몰을 볼 수 있다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냥 지나왔어요.
▲ 론다의 전망대입니다.  절벽위를 따라 전망을 볼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거기에 세워진 전망대입니다. 정말 멋진 일몰을 볼 수 있다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냥 지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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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는 깊은 산중의 외딴 성이다. 절벽을 차곡차곡 메워 세워놓은 튼튼한 다리를 보고 있자니, 헤밍웨이가 왜 이곳을 좋아했는지 알 듯하다. 헤밍웨이는 이곳에 머물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고 하는데, 작품 속 주인공이 끊어야 했던 다리가 이 다리였구나 싶다. 나는 반지 원정대가 중간계를 지켜내기 위해 버텼던 다리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가 좋아했던 절벽위의 산책로에는 '헤밍웨이의 길 (Paseo de E. Hemingway)'라고 이름이 붙여졌어요.
▲ 헤밍웨이는 론다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썼다고 해요.  그가 좋아했던 절벽위의 산책로에는 "헤밍웨이의 길 (Paseo de E. Hemingway)"라고 이름이 붙여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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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지나 절벽을 따라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헤밍웨이의 길 (Paseo de E. Hemingway)'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절벽은 내려다 보기에도 아찔했고, 협곡을 따라 들이치는 바람에 몸이 휘청거릴 때는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좁은 골목마다 내리는 햇살은 거리를 더욱더 빛나게 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전망대의 노을을 기다릴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세비야까지 이동해야 한다.

세비야에 도착하니 5시가 넘었다. 숙소까지 가는 길은 자동차가 들어가면 딱 들어맞는 좁은 골목이었다. 차가 조금이라도 컸다면 골목을 빠져나오지도 못할 뻔했다면서, 간신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무사히 주차한 것에 대견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미 문을 닫아버린 세비야 대성당은 내일 오전으로 미뤄놓고, 플라멩코 '초급자' 레슨에 참여했다. 그라나다에서 보았던 플라멩코 공연이 워낙에 강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몇 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플라멩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기에 배우고 싶기도 했다. 레슨은 6시 반에 시작이었고, 90분이 걸린다고 하니 강가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기에도 적당한 시간이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선생님은 술이 잔뜩 달려 있는 스카프와 붉은 장미를 전해 주셨다. 세계에서 모인 수강생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플라멩코를 즐겼다. 탭댄스처럼 발로 소리를 내는 박자와 손을 이용한 손뼉 치기, 손가락 동작과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춤 동작까지.

아무리 초급자 레슨이었지만, 몸치인 나에게는 절대 따라 하기 쉽지 않았다. 발 동작에 손이 합쳐지는 순간 모든 게 엉클어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은 즐거웠고, 덕분에 며칠 전 공연을 통해 보았던 그들의 움직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라나다에서 보았던 플라멩코 공연입니다. 가수들과 무희들의 몸동작이 너무나 슬프고 절실해서, 감동했었어요. 그들이 전하는 위로가 오늘도 견디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 "집시의 춤"이 대신 슬퍼해주는 것 같아요.  그라나다에서 보았던 플라멩코 공연입니다. 가수들과 무희들의 몸동작이 너무나 슬프고 절실해서, 감동했었어요. 그들이 전하는 위로가 오늘도 견디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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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의 기원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16세기부터 이슬람과 가톨릭, 유대교의 문화가 섞여서 만들어졌으며 17세기까지는 그저 '집시의 춤'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것이 '플라멩코'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세기가 되어서라고 한다. '집시의 춤'을 왜 플라멩코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를 물었으나, 아직도 정확한 기원은 알지 못한다며 선생님의 이론을 설명해 주신다.

스페인 왕실의 왕자가 한때 머물렀던 플레미시 지역(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 지대로써, 플랑드르라고도 불리네요)의 화려한 문화가 엄격한 기독교 문화에 섞여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춤이기 때문에, '플레미시'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이라 정답은 아직도 모른다고 답변을 마무리하신다.

플라멩코에 어려 있는 슬픔의 정서를 이해하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있자면, 뜻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가수의 노래가 전달하는 아픔은 절절하고 댄서들의 춤은 그저 화려한 몸동작이 아님을 알 수밖에 없게 된다.

집시의 춤에서 기원한 플라멩코가, 여전히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들의 아픔을 온몸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위로에 지친 내 마음이 반응한 것도 당연하구나 싶었다. 세비야의 첫날을 인간만이 전할 수 있는 '위로'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와 숙소 근처로 움직이는 동안, 과달키비르 강 건너로 해가 진다. 행복한 붉은빛이다. 안녕!
 
저는 노을과 일출의 하늘 색이 정말 좋습니다. 하루에 대한 위로와 새로운 날에 대한 희망을 전해주는 느낌이거든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위로를 던지는 붉은 색! 저는 노을과 일출의 하늘 색이 정말 좋습니다. 하루에 대한 위로와 새로운 날에 대한 희망을 전해주는 느낌이거든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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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베리아반도 방랑기, #그라나다, #론다, #헤밍웨이, #플라멩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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