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나운서 살인사건> 포스터

영화 <아나운서 살인사건> 포스터 ⓒ 영화맞춤제작소


전직 스포츠 아나운서 출신의 지희(노이서 분)는 선영(이정원 분)과 함께 스포츠 관련 동영상을 촬영하다가 제작 의뢰를 한 고객과 말다툼을 벌인다. 그런데 고객의 차가 폭발하는 사고가 벌어지고 곧이어 지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을 연쇄살인범 안보령(김보령 분)이라고 소개한 전화 속 인물은 단독 인터뷰를 갖자고 제안한다.

일생일대의 특종이라 생각한 지희 일행은 약속한 장소로 갔다가 안보령을 뒤쫓는 기자 영진(조은 분)과 마주친다.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안보령은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길 요구한다. 안보령과 만나기로 한 곳으로 간 지희 일행은 갑작스러운 괴한의 습격을 받고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린 그들 앞에 안보령이 나타나고 수수께끼와 같은 이야기를 던지기 시작한다.

영화 <아나운서 살인사건>은 <소녀괴담>(2014), <잡아야 산다>(2015), <월하>(2017), <폴리스 스파이>(2018) 등을 연출한 오인천 감독의 8번째 작품이다. 오인천 감독은 2018년 12월 <데스트랩>(2018) 개봉을 즈음하여 오마이스타와 가진 인터뷰에서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여러 작품을 소개하면서 "여성판 <나이트 크롤러>(2015)를 표방하는, 페이크 다큐와 극영화의 형식을 뒤섞은 <밤의 마녀>는 후반 작업 마무리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바로 <아나운서 살인사건>이다.
 
 영화 <아나운서 살인사건>의 한 장면

영화 <아나운서 살인사건>의 한 장면 ⓒ 영화맞춤제작소


<아나운서 살인사건>은 특종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으려는 아나운서 출신의 유튜버가 지명수배 중인 연쇄살인범과 단독 인터뷰를 하는 하룻밤 동안의 과정을 다룬다. 영화는 오인천 감독이 오랫동안 영화화를 하고자 노력했던 시나리오 <속보!>에서 출발한다. 오인천 감독은 "미디어를 소재로 삼은 스릴러 <속보!>와 준비 중이던 여성연쇄살인마 이야기를 합한 결과가 지금의 <아나운서 살인사건>"이라고 설명한다.

<아나운서 살인사건>은 오인천 감독의 전작에서 나타난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첫째, <아나운서 살인사건>은 특종을 위해 윤리를 내버리는 기자가 나오는 <야경: 죽음의 택시>와 같은 세계관을 갖는다. <야경: 죽음의 택시>에 나왔던 탈을 쓴 살인마를 <아나운서 살인사건>에서도 만날 수 있다.

둘째, 여성이 주인공이다. 충무로의 제작 시스템이 아닌, 독립 제작 방식으로 내놓은 오인천 감독의 작품들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야경: 죽음의 택시>는 기자, <데스트랩>엔 형사가 여성이었다. <폴리스 스파이>는 북한 엘리트 요원과 2인조 살인마 등 주요 인물을 여성만으로 구성했다.

<아나운서 살인사건>에선 동영상 제작을 의뢰하는 인물과 촬영 기사 외에 등장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이번에는 한국 영화에서 흔치 않은 여성 연쇄살인마도 보인다. 연쇄살인마로 분한 김보령 배우는 연기뿐만 아니라, 분위기와 목소리가 근사하니 눈여겨보길 추천한다.
 
 영화 <아나운서 살인사건>의 한 장면

영화 <아나운서 살인사건>의 한 장면 ⓒ 영화맞춤제작소


셋째, 형식과 공간의 계승이다. 오인천 감독은 "자본과 독립된 시스템일수록 예산 제한이 강해 아이디어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말한다. 그는 저예산에 맞추어 카메라 시점(<월하>와 <야경: 죽음의 택시>의 파운드 푸티지)을 결정하고, 한정된 공간(<데스트랩>과 <폴리스 스파이>의 DMZ)에서 이야기를 펼쳤다.

<아나운서 살인사건>은 그런 특징을 잇는다. 동시에 색다른 도전도 감행한다. 영화의 절반은 주인공이 유튜버라는 설정에 맞추어 파운드 푸티지(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일종) 형식을 쓴다. 연쇄살인마가 모습을 드러내고 인물들이 하나의 공간에 모이는 후반부는 보통 극영화의 시점으로 바뀐다. 화면 색깔도 흑백으로 변화한다. 파운드 푸티지의 현대적이며 날것의 느낌, 극영화 시점과 흑백이 만드는 고전적인 느와르 정서를 결합한 독특한 실험이다.

흑백의 선택은 후반부 서사와 연관성이 깊다. 전직 아나운서 지희와 연쇄살인마 보령의 대화를 통해 영화는 진실과 거짓을 쉼 없이 넘나든다. 이들이 벌이는 러시안룰렛엔 삶과 죽음의 순간이 교차한다. 흑백은 진실과 거짓을 나타내고 삶과 죽음을 반영한다.
 
 영화 <아나운서 살인사건>의 한 장면

영화 <아나운서 살인사건>의 한 장면 ⓒ 영화맞춤제작소


영화의 마지막엔 기자 윤주(윤주 분)가 한 달 전 차량폭발사고가 났던 현장 부근으로 취재를 나가 실종된 아나운서들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안보령 진짜 있는 거 맞아요? 실체도 확실하지 않고..."란 대사를 내뱉는다. 이것은 파운드 푸티지와 극영화 시점을 연결한 영화의 구성과 연결된다.

실재 기록이 담긴 영상을 누군가 발견하는 파운드 푸티지는 진실을 담는다. 그렇기에 전반부는 진실을 전하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안보령이 나온 후반부는 관객만이 본 진실이다. 영화 속에선 어떤 진실도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았다.

극 중에서 안보령은 지희에게 이야기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믿든, 안 믿든, 그건 니 마음이야." 1인 미디어가 증가하고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오인천 감독은 지희와 안보령을 빌려서 묻는다. 영상이 갖는 진실과 거짓, 그리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의 목적을 말이다.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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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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