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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이 섬나라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이유는 보통 외국으로 여행을 갈 때 '해외여행'이라고 부르는데, 외국을 '해외'라고 부르는 것은 섬나라만의 고유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섬나라가 아니지만 외국으로 가려면 바다를 건너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륙과 연결된 반도 국가라고 해도, 섬나라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한반도의 위쪽을 갈 수가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이라는 실체화된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이 북한과 적대관계에 있다. 일부 법률상으로는 아예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물리적 단절은 대륙과 이어진 반도 국가로서 모든 이점을 포기하는 현재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무역을 하려 해도, 문화적 교류를 하려고 해도 우리는 바다를 건너야 세계와 만날 수 있다. 이는 한반도가 통일국가였다면 있지 않았을 인위적인 요인에 의한 한계들이다. 그러나 이 '넘을 수 없는 선'은 물리적 한계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휴전선이라는 물리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한계들이 모든 한반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무한히 증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보법이 살아 있는 한 개인의 사상 검증 지속될 것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2018년 12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예술회관 계단에서 김정은 방남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김정은 얼굴과 인공기가 그려진 피켓을 찢었다.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2018년 12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예술회관 계단에서 김정은 방남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김정은 얼굴과 인공기가 그려진 피켓을 찢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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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은 헌법 제 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점을 근거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1948년 유엔 총회 결의문을 토대로 대한민국 정부만의 온전한 정통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유엔 총회 결의문의 실상은 남한 단독선거의 효력이 남한에만 국한된다는 의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즉 국제사회는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북한 또한 국가로서 정당하게 인정했다. 게다가 남북 당사국 간에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서로를 대등한 당사자로 인정했다. 이에 앞서 1990년 8월 시행된 남북교류협력법 제1조도 북을 '북한'이라고 규정한다. '신법우선의 원칙'에 의거하면 북한은 이미 법적으로도 반국가단체가 아니다. 따라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법안이며, 더 나아가 헌법상 평화통일 규정에도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북과 관련된 모든 행위를 검열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역사 속에서 정권에 반하는 인사들을 처벌하고 탄압하는 도구로 여전히 살아있다. 당연하지만 법은 해당 법에 접촉되는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법이 유효한 범위는 국가 전체이며 모든 국민이 법에 접촉될 여지와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자신들의 사고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자기검열을 통해 스스로 사상을 검증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지구상의 타국인들은 고려하지 않는 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한국 사회는 애초부터 사고의 폭이 한정된다.

간첩 조작하는 국가, 정상적인 모습 아냐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5년 1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으로 들어섰다.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5년 1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정으로 들어섰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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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국가정보원과 수원지방검찰청은 이석기 전 의원 등 통합진보당 관계자의 자택, 사무실 등을 내란예비음모 혐의 등으로 압수수색했다. 수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됐고 검찰은 이 전 의원을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상과 이념을 근거로 현직 국회의원이 구속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법원이 이석기 의원에 내란 모의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사실과 간첩도 아니라는 것을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으나 당시 분위기는 모두가 통합진보당 전체를 마치 간첩집단인 것처럼 여겼다. 한국판 메카시즘의 광풍이었다. 이는 분단이 지속되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공안 사건의 조작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같은 해 1월에는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이 간첩 혐의로 국정원과 검찰에 기소되었다. '서울시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처럼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된 사건이었다. 유우성은 2004년 북한을 떠나 한국에 들어온 재북화교 출신이다. 2013년 당시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이었던 그는 중국에 있던 동생 유가려씨를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나 상봉의 감격을 느낄 새도 없이 국정원은 유가려씨가 제주공항에 발을 내딛자마자 영장도 없이 체포해 6개월 동안 감금했고 유우성이 간첩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유씨는 꼼짝없이 간첩으로 내몰려 재판을 받아야 했다. 재판 현장에서 남매가 울면서 진술하는 장면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는 분명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국가의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왜 도대체 간첩 조작을 군부독재도 아닌 21세기에도 하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통해 체제가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북에 대한 적대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외부적으론 외교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내부적으론 외부의 적을 이용해 구성원을 통제한다. 여기에는 생활과 일상에 대한 물리적 통제는 물론이고 생각과 사고에 대한 통제도 포함된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우월한 체제다' '북한에 동조하는 행위는 국가를 위협하는 내부의 괴멸로 이어진다' 등의 생각을 전체 국민들에게 심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분단 이데올로기'다.

국정원을 비롯한 공안세력은 이를 위해 끊임없이 조작 사건을 만들며 위기를 조성하고 분단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아무리 자유롭고 싶어도 우리는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벗어나려 노력하는 행동은 전체 국가의 적이 되는, 대한민국에서 이탈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건 자유민으로 살아갈 기회의 박탈이다. 한반도가 반쪽이듯, 반쪽짜리 자유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의 메커니즘 안에 분단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그 안에서 국가보안법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권력의 메커니즘 안에 분단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그 안에서 국가보안법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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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정의를 집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의를 개인이 집행할 수 없다는 것이 '국가'라는 전 인류적 실험의 결과다. 정의가 무엇이든 간에 개인의 의사로 판단하지 않고 국가라는 사회공동체를 통해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 이것이 국가가 해야 할 책무다. 그리고 이 책무는 현실에서 국가의 공권력으로 발현된다. 그래서 법이 있고, 공무원이 있고, 시민의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이다. 과도하게 도출해보면 공권력이 향하는 방향성이 바로 그 사회가 지향하는 정의이다. 

국가 공권력의 방향은 어디서 어떻게 결정될까? 공무원의 수장인 대통령이 정할 테니 국민들이 투표로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대한민국 국가의 기본이념인 헌법이 정해주는 것일까? 그러나 세상은 그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해당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권력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에는 제한적 조건과 한계가 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가장 유력한 제한적 조건 중 하나는 바로 분단이다. 이를 김동춘 교수는 저서 <전쟁정치>에서 '정치화된 정의' '굴절화된 정의'라고 표현한 바 있다. 쉽게 말해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정치적 맥락과 연관되며 그 이해관계에 따라 굴절되었다는 것이다. 더 적나라하게는 분단상황에서 북을 적대하고 내부를 결속시키는 것이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국익으로 규정되며, 이 국익에 의해 다른 권리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 또한 정의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분단이 남한 자체의 내부동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북한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북한도 남한 없인 존재 근거가 없다. 서로의 존재 이유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분단은 극복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장기간 유지시키며 국가시스템을 만들어가다 보니 '병영국가' '안보 국가'라는 국가 정체성을 뿌리로 가지게 된 것이다. 분단체제는 스스로 자기 재생산이 가능하다. 때로는 강압적으로, 때로는 유연하게 그 겉모습만 변할 뿐이지, 전쟁과 안보를 들먹이는 근본원리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러한 분단체제는 국제정세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분단은 남과 북 그 누구의 의도도 아니었다. 이는 해방 이후 미소갈등과 자본주의-사회주의 진영 간 대립의 산물이며, 현재는 미국 중심 세계 패권 질서의 하위체제로 기능하고 있다. 즉, 분단은 한반도에 뚝 떨어져 있는 상황이 아니라 미국을 위시한 세계 각국의 수많은 이해관계가 유지 시키고 있다. 

국가 공권력의 방향을 정하는 조건,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이데올로기, 미국 중심 세계질서의 산물, 이 세 가지만 봐도 우리는 분단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한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한 사회의 주요한 메커니즘이라는 것은 구성원이라면 누구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한국 사회의 권력은 다층적으로 분포해있다. 그러나 이들 중 가장 강력한 권력 중 하나가 국가권력임은 부인하기 어려우며, 이 국가권력의 한 축이 분단체제에 기대고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권력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 하나의 방식이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권력이 내부의 적을 만들면서 한국 사회를 억압적 시스템으로 운영하는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마땅한 악법이다.

[기획 / 문재인 시대에 국가보안법을 논하다]
① 국가보안법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는다 ☞ http://omn.kr/1jn4t
② 평양냉면 칭찬? 마음만 먹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 http://omn.kr/1jn5e
③ 문재인정부 1호 '간첩' 사건... "이런 식이면 정상회담 왜 하나?" ☞ http://omn.kr/1jn4v
④ 판사도 감탄한 명연설, 재판정을 뒤집어 놓은 사진작가 ☞ http://omn.kr/1js8m
⑤ "박근혜 댓글조작 묻으려 간첩 조작... 가장 끔찍했던 건" ☞ http://omn.kr/1js8s
⑥ 방명록에 남긴 한마디, 10년간 42회 재판 받은 대학교수 ☞ http://omn.kr/1js9h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청년지식공동체 청년담론'에서 함께 기획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태그:#국가보안법, #청년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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