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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삶의 축복이고 선물이란다

[육아, 너와 내가 자라는 시간 ⑫] 임신 중 쓴 감사일기와 태교앨범을 다시 꺼내보다
19.06.20 14:30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아이가 많이 아팠던 어느 날, 집으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두세 명의 자녀를 초등학생 이상까지 키워낸 양육 선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임신 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임신 중 산모의 스트레스가 아이의 정서와 건강, 인지 발달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의 연장선에서 나온 질문이었을 겁니다.
 
질문을 받고는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며 삶의 곡절을 털어놓기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위로와 조언을 받기도 했습니다. 손님이 떠나간 후 서가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그리기 놀이를 할 만한 빈 공책을 찾다가, 임신 중에 쓰다 만 '감사일기장'과 출산 직전까지 열심히 정리한 태교앨범을 발견했습니다.

임신 중 힘든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마음 건강을 챙겨보고자 쓰기 시작한 것이 감사일기장이었습니다. 잠을 잘 잔 것이나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거리를 찾아 적었습니다. 남편에게도, 시부모님께도, 시누이, 친정부모님, 주변 이웃과 지인들에게도 일일이 감사할 일을 찾아서 적었습니다.
 
"지난 밤 잠을 푹 잘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남편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 배웅을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시어머님이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쉴 수 있는 집이 있어 감사합니다./ 남편이 밖에 나가면 자주 전화를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입덧이 덜해져서 감사합니다./ 산모교실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태교도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나약하고 못난 엄마 곁에서도 잘 자라주는 뱃속의 아기에게 감사합니다…"
 
날마다 10가지 이상 감사할 내용을 찾아서,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감사한지 상세하게 적어 내려다가 보면 두 세 장을 가득 채울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감사하기보다 마음 아프고 상처받고 지친 날이었지만, 그것을 애써 억누르며 저 자신을 반성하거나 앞으로 잘 될 거라고 위로하는 글귀를 적어넣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기도 건강하게 나고 자랄 수 있다는 생각에, 긍정적인 생각, 맑고 밝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감사일기장에 남아 있었습니다.
 
 
임신주차에 맞춰 아기의 초음파 사진과 함께 간단한 태교일기 메모와 사진 등을 써붙여 만들었던 추억의 태교앨범. ⓒ 전은옥
 
태교앨범은 출산준비를 위한 산모교실에 참여하면서, 강사가 소개한 태교 경험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따라 해 본 것입니다. 태교 전문 뮤지컬도 만들고, 미술 태교, 음악 태교 등 다양한 태교를 실제로 해본 강사는 본인도 아직 돌이 안 된 아기의 엄마였습니다. 저도 강연을 듣고 동요의 노랫말을 바꾸어 써보거나, 동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태교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태교앨범에 담겨 있습니다.
 
태교앨범에는 임신 주차에 따른 산모의 주요 특징과 감정, 생각을 메모하고 오려붙여 둔 것, 뱃속 아기의 초음파 사진과 신체 발달 기록, 엄마의 태교활동 및 그때그때 있었던 다양한 일들에 관한 간단한 메모와 사진 등이 남아 있습니다. 

#임신 5주차#
"콩알 만한 축복이(우리 아기의 태명)를 초음파로 처음 만난 날"
 
#임신 7주차#
"엄마는 입덧이 심하고, 몹시 피로하고 기운이 없어요. 그래도 우리 축복이가 건강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어요."
 
#임신 12주차#
"1차 태아 이상 여부 검사하는 날, 정밀초음파를 실시했어요. 태아 목 뒤 투명대 둘레가 3mm이상이면 이상이 있을 수 있는데, 딱 3mm라고 해요. 양수검사 또는 정밀혈액검사를 권유 받았어요. 엄마는 펑펑 울었어요. 아빠가 토닥토닥 위로해줬어요."
"엄마의 불안과 스트레스 강도가 매우 높은 상태이므로, 적절한 상담치료를 권유 받았어요. 가족의 지지와 도움이 많이 필요하니 가능하면 가족상담을 받으래요."
 
#임신15주차#
"정밀초음파로 아이를 만났어요. 몸무게도, 체격도, 심장 뛰는 속도도 모두 정상이래요. 태아 이상 여부 검사 결과도 '정상'으로 나왔어요. 감사해요."
"엄마는 살도 찌고 점차 몸이 불편해요. 그래서 임부복을 준비했어요."
"축복이를 생각하며 바느질로 인형을 만들었어요. 모유 수유 방법도 배웠어요."
 
임신 중 태교 차원에서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며 만든 양말인형 모음. ⓒ 전은옥
 
#임신16~19주차#
"A백화점에서 개최된 태교 특강에 참석했어요. 선물도 많이 받았어요. 출산과 분만과정, 아이 교육에 대해서도 배웠어요."
 
#임신 20~23주#
"우리 아가는 남자아이라고 하네요. 축복이의 눈, 코, 입, 손가락, 발가락, 뇌, 귀, 내장기관이 모두 건강한지 확인했어요. 우리 축복이는 건강해요!!"
"A아트홀에서 개최된 태교음악회에 참석했어요. 신나는 색소폰 연주를 들었답니다. 태교를 위한 클래식 감상, 국악 감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우리 축복이도 엄마처럼 문학, 미술,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아이가 될까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아이면 충분해요!"
"우리 축복이가 운동을 하네요. 첫 태동을 느낀 날."
 
#임신 24~27주#
"축복이가 하품을 했어요. 축복이가 태반에 얼굴을 바싹 대고 있어서 옆얼굴만 간신히 보았어요. 축복아, 잘 생긴 얼굴 보여줘~!"
"엄마는 번역가. 열심히 일을 했어요. 축복이에게 일하는 멋진 엄마를 보여주고 싶어요."
"손발 부종, 종아리 경련, 배앓이와 요통, 골반통, 근육통 등 몸이 많이 불편해 잠을 편히 못 자요."
"배냇저고리를 준비했어요. 이제 아기용품도 하나하나 준비하고, 임산부 체조, 산모교육, 심리상담 미술치료에도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이제 본격적인 출산준비를 하는 거에요. 엄마는 이제 출산준비에만 전념을 하고 싶어요."
 
#임신 28~31주#
"시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장 근처 길에서 넘어져 무릎이 깨졌어요. 산부인과에 가서 우리 축복이는 크게 놀라지 않았는지, 건강한지 확인한 뒤에야 안심했어요. 아가는 엄마의 양수가 품어주기 때문에 이 정도로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요."
"숨쉬기가 벅차고, 속도 울렁거리고, 등, 허리, 골반이 많이 아파요. 쉽게 피곤해서 오래 앉아 있거나 서있기도 힘드네요."
 
#임신 32~35주차#
"축복이와 만날 날 D-Day 52. 축복이 몸무게 1.9kg."
"엄마가 아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엄마가 더 튼튼하고 건강해져야겠죠? 아기를 잘 돌볼 수 있을지 엄마는 겁이 나고 불안해요. 우리 아기가 아플 때, 울 때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두렵고 걱정이 됩니다."
"출산준비로 가제수건을 삶아 널었어요. 아기 마사지 교육도 받고, 바느질 인형을 만들며 축복이를 기다려요. 육아만화를 읽으며 육아준비도 하고요."
"숨쉬기가 벅차고 종일 피곤하고 가끔 배도 아파요. 손가락이 많이 부어 있어요. 임신 9개월차, 엄마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네요."
"날씨가 오랜만에 맑게 개어 이불 빨래를 널고, 젖병을 열탕 소독했어요. 욕실, 주방, 거실도 청소했어요. 쓰레기 정리까지...엄마가 오늘은 무리했네요."
"내 아들 축복아, 엄마는 너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단다. 부디 순탄하게, 행복하게 만나자."
 
#임신 36주~40주차#
"우리 아기가 입을 벌려 양수를 마시는 모습을 초음파로 보았어요."
"출산이 가까워졌어요. 아기가 이제는 엄마의 골반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계속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고 위에 머물고 있대요. 엄마는 여전히 숨이 가쁘고, 배도 당기고, 몸이 저려요."
"엄마도 축복이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나자. 어서 세상 밖으로 나와 아빠, 엄마랑 만나자."
 
#임신 39주차+2일(출산예정일 D-Day5)
"사랑하는 우리 아가를 빨리 만나고 싶은데, 아기는 전혀 나올 준비가 안 되어 있대요. 빨리 만나자! 순산하자!"
"엄마는 폭풍 운동 중. 산길 걷기, 계단 오르기, 짐볼 운동, 실내에서 걸어 돌아다니기. 집안일 많이 하고 장보러 자주 나가고 걷기운동을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축복아, 엄마에게 와 줘서 고마워. 너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단다. 엄마 뱃속에서 편히 지내다 건강하게 만나자."
 
이 마지막 기록으로부터 일주일 뒤 뱃 속 아기는 엄마에게 축복과 같이, 선물처럼 찾아와 주었습니다. 누군가의 딸로서 사랑을 받기만 했던 저는 그렇게 사랑을 주어야 할 엄마가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꺼내본 일기장과 태교앨범을 통해 엄마는 이 축복과 선물을 소중하게 가꾸고 돌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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