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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 할래."
"응?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책상에 있는 책을 봐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책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을 본 아들의 말이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은 싱글 맘인 엄마 '다나카 마치코'와 초등학교 6학년생 딸 '하나미' 모녀의 이야기이다.

'날씬해서 부러운 몸매가 아니라 가난해서 비쩍 마른 몸'
'잘 씻어도 얼굴이 어딘가 지저분해 보이고'
'반바지와 러닝셔츠를 입고 대자로 뻗어 낮잠을 자는 모습은 꼭 밭에서 방금 파낸 흙 묻은 우엉 같다.'


하나미가 엄마를 표현한 말들이다. 그녀의 표현처럼 하나미의 엄마는 공사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며 하루하루의 생계를 책임지는 힘겨운 가장이다. 열두 살 소녀의 시선으로 힘든 삶이 발랄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저절로 이 모녀를 응원하게 된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 놀(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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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한 번도 아빠의 얼굴을, 사진조차 본 적이 없는 하나미는 엄마의 동굴처럼 어두워지는 눈빛에 그 궁금증을 속으로만 삭힌다. 방학이나 황금연휴가 되면 친구들은 가족과 함께 바다로 산으로 놀이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에게 재혼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자신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한 하나미는 맞선남을 찾아가 "제가 사라질 테니까요. 어디로든 가버릴 테니까요. 그러면 안 될까요?"라고 엄마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한다.

어려운 환경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뉴스에 나온 부모에게 학대당해 죽은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적어두고 애도해 주는 엄마. 무척 사려 깊고 넓은 포용력을 가진 엄마라고 생각했다. 강을 내려다보며 '이제 끝내자'라고 나쁜 생각을 하던 딸의 친구(미카미)를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식사 후, 다리에서 뭐 하고 있었냐는 질문을 던지며 미카미에게 위로와 응원의 말을 들려준다.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어린 시절부터 굶주림에 익숙한 하나미의 엄마는 모든 결론이 먹는 걸로 내려지지만 이 위로만큼은 '또 먹는 이야기야?'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누구에게라도 힘을 줄 수 있고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는 위로이다.

책을 다 읽은 지 2주일 가까이 되었지만 감동에서 아직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쌍둥이 아들들은 책을 읽어 보라는 나의 권유를 며칠 남지 않은 '독서골든벨(학교주최)'을 핑계로 거부하고 있다.

"이 책 열네 살짜리 아이가 썼어."
"정말? 열네 살인데 책을 썼다고?"
 

열두 살 쌍둥이 아들들은 호기심이 동했다. 나는 책의 저자 '스즈키 루리카'와 아들들을 비교하려는 게 아니었다. 정작 비슷한 나이인 아들들은 묘한 경쟁심이 생기는 듯 했다. 내가 읽어 주기로 했다. 열두 살의 아이들은 다 자랐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아직 책 읽어주는 걸 좋아한다.  

한 챕터를 읽어주고 나서(하루에 한 챕터씩만 읽어주기로 했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금으로 좋아하는 잡지를 사려고 글을 쓰기 시작한 14세 소녀. 초등학교 4, 5, 6학년에 걸쳐 일본 대표 출판사 쇼가쿠칸에서 주최하는 12세 문학상 대상을 3년 연속 수상. 반나절 만에 쓴 열한 장의 자필원고가 두꺼운 책이 되기까지의 과정. 알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듣던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마이산(작은 아들)이 "엄마, 새 꿈이 생겼어. 작가가 될 거야"라고 했다. 마이산은 꿈이 자주 바뀐다. 박물관에 다녀오면 지질학자, 코딩 수업을 받으면 프로그래머, 배드민턴을 배우면 배드민턴 선수, 유리 공예 체험을 하면 유리 공예가. 이번엔 작가란다. 어쨌든 책에 관련된 꿈이니 만큼 내 마음은 기쁘다. 옆에 있던 강물(큰 아들)이도 덩달아 "나도 쓸 거야"라고 외친다.

퇴근해서 돌아온 나에게 아들들은 각자 원고를 한 편씩 내민다. 지적해 주고 싶은 맞춤법이 한 가득이었지만 나는 꾹 참고 내용에 충실한 감상평을 해주었다. 내 감상평(칭찬)을 듣는 아들들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들들이 쓴 원고.
 아들들이 쓴 원고.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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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꼬마 킹은 만화책을 원 없이 보다가 모방작 한편을 써서 그의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기왕이면 네 얘기를 써봐라. 너라면 훨씬 더 잘 쓸 수 있을 거다. 네 얘기를 만들어 봐"라고 하였다. 진짜 창작물을 가져온 킹에게 어머니는 '25센트의 원고료'를 주었다.

나도 아들들에게 원고료를 주기로 했다. 이 말을 들은 아들들은 벌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듯 들떠서 원고료를 어떻게 쓸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말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당근은 필요하다. 원고료를 받을 생각에 아들들의 글은 길어지고 내용이 풍부해졌다. 심지어 이런 말이 툭 튀어 나온다.

"글을 쓰고 있으면 내가 주인공처럼 글 속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 같아."
"영감이 막 샘솟고 있어."
"영감이 떠오르도록 책을 읽어야겠어."


게임과 만화를 좋아하는 마이산의 글에는 판타지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게임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 글을 보며 반성중이다. '게임 속 세상이 마이산의 머릿속에선 창작물로 재탄생 되고 있구나!' 물론 아이가 들으면 게임하는 걸 정당화 할까 봐 마음속으로만 생각한다.

어떻게든 내용이 긴 책을 읽게 만들려고 했던 내 노력이 무색해진다. 열네 살의 작가와 원고료가 정답이었다. 강물 작가와 마이산 작가의 초고들이 두툼한 문집이 될 때까지 이 꿈과 열기가 쉬이 식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실을 예정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스즈키 루리카 (지은이), 이소담 (옮긴이), 놀(다산북스)(2019)


태그:#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스티븐 킹, #작가, #원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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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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