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이 쟁쟁한 DC 코믹스의 캐릭터들을 제치고 이 시대의 대표적 '액션 판타지' 인기 시리즈로 자리 매김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별화 지점을 손 꼽으라 한다면 아마도 '탄탄한 세계관'이 아닐까 싶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탄생한 '아이언맨'부터 고대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토르', 과거로부터 소환된 '캡틴 아메리카', 억압을 스스로 깨고 나온 '캡틴 마블' 등 마블의 영웅들은 각자 자신만의 스토리와 특징이 있다.

이들은 때로는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지구를 구한다. 그리고 작전을 지시하는 대장은 '캡틴 아메리카'였더라도 그 중심에는 시리즈의 시작 '아이언맨'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블 영웅들의 거대한 연합작전 '어벤저스'의 마무리는 '아이언맨'과의 작별이었다.

아이언맨이 없는 세상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다시 돌아온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역시 아이언맨의 부재로부터 출발했다. <보디가드>의 유명 OST 'I will always love you'와 함께 영화는 아이언맨을 추억한다. 그저 영화 속 캐릭터였을 뿐인데, 아마도 <어벤져스> 시리즈와 함께 했던 관객들이라면 누구나 뭉클한 감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관객들도 그런데, 영화 속에서 아이언맨을 잘 따랐던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오죽할까. 의지했던 영웅을 잃은 영화 속 시민들은 또 어떨까.

영화는 바로 그 혼돈과 혼란에 촛점을 맞춘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이후 절반만 남았던 지구인들, 타노스와의 마지막 전투가 끝나고 사라진 사람들이 돌아왔다. 남겨진 사람들이 '혼란'을 극복하려 애쓰는 이야기를 영화는 그려낸다. 파커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5년의 공백은 웃자라버린 아이들과 미처 시간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이들은 '시간 차'를 어떻게든 메꿔가고자 한다.

하지만 어려움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사랑했던 이를 잃은 사람들은 아직 그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피터 파커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없이 숙모와 함께 살았던 피터에게 아이언맨은 아버지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죽고 그의 '과업'만 남았다. "아직 너는 어리다"며 "가서 고등학생의 신분에 충실하라"던 아이언맨 앞에서 스파이더맨은 "자기도 함께 싸우게 해달라"고 우겼지만, 막상 그가 없어지자 문득 두려워졌다. 피터는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또래 친구에게 사랑 고백도 하고 일상으로 침잠하는 방식으로 그 두려움을 풀고자 한다. 

누구라도 믿는다?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반면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타노스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누가 우릴 구해줄까? 사람들의 우려를 알기라도 하듯이, '엘리멘탈'이라는 빌런(악당)이 등장한다. 새로운 악당의 등장에 사람들은 다시 간절하게 새로운 영웅을 갈망한다. 그리고 닉 퓨리의 전화를 받지 않는 스파이더맨 대신 '미스테리오'가 등장해, '엘리멘탈'에 맞선다. 당연히 사람들은 새로운 히어로에 환호한다. 

스파이더맨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언맨 대신 자꾸 자신을 찾아대는 닉 퓨리가 부담스럽게만 느껴진다. 자신을 대신해 엘리멘탈을 막아주고, 아이언맨처럼 인생 상담까지 마다 않는 푸근한 아저씨 미스테리오.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과업을 그 아저씨에게 냉큼 넘기려 한다. 책임에서 도망치고 싶은, 아직은 덜 자란 히어로의 이야기를 풀어낸 <스파이더 맨: 파 프롬 홈>의 설정은 절묘하다. 

영화 속 미스테리오는 앞서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설정을 차용한 캐릭터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히어로의 상실'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피터 파커라는 히어로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다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아이언맨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됐으니 말이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그러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설정을 한 번 더 비틀어 본다. 미스테리오를 무조건적으로 믿었던 스파이더맨은 결국 그 믿음에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아이언맨도 이 이야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아이언맨이 남긴 과업을 피하고 싶었던 피터 파커는 그제서야 문제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한다. 히어로서의 임무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자신을 짓눌렀던 아이언맨을 향한 돌진이요, 그저 어리숙한 착한 소년에 불과했던 자신의 지난 날의 극복이다. 그렇게 소년 스파이더맨은 '아버지'를,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과거의 흔적을 밟고 성장한다. 그리고 그건 이제 더는 그가 '뉴욕'의 거리를 지키는 보이스카웃에 머무를 수 없음을 뜻한다. 

과연 대장정의 막을 내린 <어벤져스> 시리즈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과연 이어갈 수 있을까. 모두가 궁금해 했던 지점을 '마블 스튜디오'는 소년 스파이더맨을 통해 풀어냈다. 아버지를 극복해야만 스스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신화들처럼, 스파이더맨 역시 아이언맨을 극복한 이후에야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난다.

그리고 영화는 결국 '좋은 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제어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친구들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던 스파이더맨은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거기에 발판이 되는 건 다시 아이언맨의 동지였던 닉 퓨리와 해피다. <어벤져스> 이후의 신화, 그 시작은 가장 인간적인 히어로 스파이더맨에서부터였다. 앞으로의 시리즈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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