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버스턴> 영화 포스터

▲ <갤버스턴> 영화 포스터 ⓒ 유로픽쳐스


뒷골목의 암살자로 사는 로이(벤 포스터 분)는 병원에서 폐암 선고를 받는다. 실의에 빠진 채로 임무를 수행하던 로이는 두목 스탠(보 브리지스 분)의 함정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다. 간신히 죽음을 모면한 로이는 그곳에서 자신의 눈빛을 닮은 소녀 록키(엘르 패닝 분)를 만난다.

록키는 몸을 파는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나 제대로 살아보기 위해 여동생 티파니(애니스턴 프라이스/틴슬리 프라이스 분)와 함께 로이를 따라 갤버스턴으로 향한다. 처음엔 록키와 티파니를 멀리하던 로이는 점차 마음을 열고 그들을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로이는 록키와 티파니가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하고자 스탠에게 위험천만한 거래를 제안한다.
 
<갤버스턴> 영화의 한 장면

▲ <갤버스턴> 영화의 한 장면 ⓒ 유로픽쳐스


40대 암살자와 10대 성매매 여성이 운명처럼 만나 낙원 갤버스턴을 꿈꾸는 영화 <갤버스턴>은 작가 닉 피졸라토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닉 피졸라토는 미국 방송 HBO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의 각본과 제작, 영화 <매그니피센트 7>(2016)의 시나리오로 유명하다. 2010년 발표한 소설 <갤버스턴>은 닉 피졸라토의 장편 소설 데뷔작으로 출간과 동시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갤버스턴>의 메가폰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극영화 <마린>(2012), <숨 막히는>(2014), <에로틱 컴필레이션>(2015), <다이빙: 그녀에 빠지다>(2018)와 다큐멘터리 <내일>(2015)을 연출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멜라니 로랑이 잡았다. 닉 피졸라토는 <갤버스턴>의 각본과 각색을 맡았다.

멜리나 로랑은 할리우드에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비기너스>(2010),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2013)에 출연한 바 있다. 그녀는 할리우드 첫 연출작인 <갤버스턴>을 찍으며 언어 문제와 프랑스와 다른 제작 시스템으로 부담감이 무척 컸노라고 고백했다.

프랑스에선 <갤버스턴> 같은 스타일의 대본을 쓰지 않기에 새로움을 느꼈고, 미국의 제작자가 미국의 남성 이야기, 그것도 범죄 드라마를 유럽의 여성 감독에게 맡긴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도전했다고 이야기한다.

죽음 앞둔 40대 남성과 10대 성매매 여성의 우정
 
<갤버스턴> 영화의 한 장면

▲ <갤버스턴> 영화의 한 장면 ⓒ 유로픽쳐스


<갤버스턴>은 장르에선 범죄 드라마에 속하나 사건이 중심을 이루진 않는다. 영화는 로이와 록키가 타인으로 만나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는 관계의 변화와 그들의 감정 표현에 주목한다. 지옥 속에서 사는 암살자 로이와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성매매 여성 록키는 갤버스턴의 아름다운 풍광과 대조를 이룬다.

영화는 로이와 록키의 관계를 연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로이는 죽음으로 향하는 자신과 달리 아직 어린 록키와 티파니에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지원할 테니 새 인생을 살라고 권유한다.

로이와 록키는 가족 같은 끈끈한 유대감으로 맺어진다. 멜리니 로랑 감독은 <갤버스턴>의 대본을 읽으면서 로이와 록키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으로 묘사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한다.
 
<갤버스턴> 영화의 한 장면

▲ <갤버스턴> 영화의 한 장면 ⓒ 유로픽쳐스


<갤버스턴>에는 로이와 록키를 위한 특별한 장면들이 많다. 로이, 록키, 티파니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갤버스턴의 해변 장면엔 가족으로써 느끼는 행복이 화면에 넘친다. 록키가 차에 걸터앉아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그녀를 지켜보는 로이의 눈빛에선 새 인생을 위한 기회를 주고 싶다는 심경이 비친다.

로이와 록키가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그 장면에서 록키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다. 로이를 처음 만난 때처럼 말이다. 두 장면은 모두 '빨간색'을 보여주나 의미는 다르다. 둘이 처음 만난 장면에서 빨간색은 죽음이란 절망의 뜻을 가진다. 두 사람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 빨간색은 희망을 의미한다. 로이, 록키의 유대감이 깊어지며 색의 의미가 변한 것이다.

폭력으로 얼룩진 죽음의 장면은 처절함이 가득하다. 특히, 후반부의 총격 시퀀스는 긴 호흡의 테이크로 구성되어서 마치 빠져나가기 힘든 운명의 굴레처럼 느껴진다. 카메라는 로이를 뒤따르며 그의 눈처럼 상황을 지켜본다. 또한,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로이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갤버스턴> 영화의 한 장면

▲ <갤버스턴> 영화의 한 장면 ⓒ 유로픽쳐스


멜라니 로랑 감독은 기존의 할리우드 범죄 드라마와 다른 화면의 색감, 영화의 속도, 풍경과 인물을 포착하는 촬영, 폭력 시퀀스 연출을 보여준다. 닉 피졸라토는 40대 암살자와 10대 성매매 여성 간 특별한 방식의 사랑과 예상치 못한 후반부의 전개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한다.

뛰어난 연기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과소평가 받는 벤 포스터와 세계적인 거장들과 작업하며 흥미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엘르 패닝은 <갤버스턴>에 환상적인 필름 누아르풍 연기를 입혔다. 둘의 연기를 지켜보는 건 <갤버스턴>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갤버스턴>은 미국의 제작자가 미국의 범죄 드라마를 유럽의 여성 감독에게 맡긴 이유를 충분히 입증한다. 그리고 멜리니 로랑이 조만간 할리우드에서 걸작을 내놓을 거라는 기대감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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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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