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은 아나운서가 17일 오후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

손정은 아나운서가 17일 오후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 ⓒ 화면캡처

 
요즘 11명의 신입(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대하는 MBC 사측의 대응을 보며 안타까움을 표하는 시민들이 많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MBC노조의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했던 일을 떠올리며, 씁쓸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MBC 사측이 박근혜 정권 당시 채용된 신입 아나운서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이들을 하루종일 빈 방에 방치하고 사내 전산망 접근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측은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에 불응한 채 법정 소송까지 끌고 가고 있다. 지난 16일, 아나운서들이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후 첫 진정서를 낸 건 이 때문이다.

일단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부터 바로 잡도록 하자. 2016~2017년 입사한 11명의 아나운서들은 파업 대체인력으로 채용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당시 MBC 아나운서국장이었던 신동호는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기존 아나운서들을 한직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임원들은 응당 선발해야 할 신입 아나운서들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 계약직으로 뽑았다. 가뭄에 콩 나듯 올라오는 아나운서 채용 공고에 응시했을 뿐인 젊은 신입사원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방송장악 시나리오를 위한 부당노동행위 도구로 쓰였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말에 따르면, 채용 당시 면접관들은 "장기적으로 MBC에 어떻게 기여하고 싶나"라고 물었고, 채용 후에는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2년 후 정규직화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면서 "너희는 정규직이다", "너희는 공채 기수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이들에겐 '갱신기대권'이 있다. 즉, 기간을 정해 근로계약을 체결했더라도 기간 만료와 함께 계약갱신을 기대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있는 경우, 기간 만료로 근로관계가 종료된다고 해석해선 안 된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들에 대한 퇴사 조치가 '부당해고'라고 해석한 이유도 이와 같다.

적폐를 답습하지 않아야 진정한 '정상화'다

가장 큰 문제는 괴물을 닮아가는 MBC 자신이다. 지난 17일 손정은 아나운서는 "얘들아"로 시작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손씨는 후배들이 "안쓰럽고 기특하기도 했다"면서도, 신동호 전 국장을 소환하며 "그가 나에게 주었던 고통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울분과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썼다.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에 대한 울분을 잊을 수 없기에 '나도 너희들을 인정할 수 없다'라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한 대목이다.

물론 손씨는 지난 정권하에서 이뤄진 방송 탄압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신입 아나운서들 역시 피해자인 건 매한가지다. 이들은 어렵사리 MBC에 입사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덜미에 잡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경력 많은 정규직 위치에 선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신이 당한 탄압과 고통을 근거로, 그에 대한 앙갚음을 위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선 안 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시민들이 MBC노조에 연대하고 최승호 사장의 저항을 응원했던 이유는 지난 정권하에서 그들이 벌인 싸움이 정당했을 뿐만 아니라, '공정방송'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MBC 사측과 아나운서국 일부는 이런 시민들의 기대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자신들이 이야기했던 가치를 자처해서 파괴하는 이들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뉴스는 시청자의 신뢰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다. 아무리 입에 발린 이야기, 진실에 근거한 방송을 제작하더라도,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그들의 말과 표정을 신뢰하긴 어려울 것이다. MBC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는 시청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바란다. 최승호 사장 체제의 MBC에는 신입 아나운서들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야 할 마땅한 법률적·사회적 책임이 있다.

노동법 적용에는 차별이 없으며, 그건 공채 출신이든 아니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에게 같다. '갱신기대권' 안에는 이 땅의 비정규직들의 피눈물이 배어있다. 또, 지난 7월 16일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진정한 취지는 그 누구도 직장내에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공정방송과 '정상화'의 기치를 들었던 이들이 신입 아나운서들로 하여금 하루종일 업무도 부여하지 않고 빈 사무실에 앉아있도록 할 거란 사실을 누가 알았겠는가. 스스로 이런 적폐를 답습하지 않아야 진정한 '정상화'다. MBC가 적폐와 싸우다 그 괴물과 닮는 길을 선택하지 않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홍명교 기자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회원입니다.
MBC 손정은 직장내괴롭힘방지법 최승호 공정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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