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전장> 포스터

영화 <주전장> 포스터 ⓒ (주)시네마달

  
'감독의 안전이 염려된다'는 우려를 자아내는 위안부 영화 <주전장>. 이 영화는 25일 개봉된다. 일본계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 감독의 다큐 작품인 이 영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일본과 미국 내 의견을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 사과 및 배상과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의견과 위안부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하는 의견이 비교적 공정하게 제시된다.
 
영화 속 인터뷰에 등장했던 일본 극우 인사 일부는 "속아서 출연한 것"이라며 감독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감독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카메라 앞에서 너무 '솔직'하게 말했던 모양이다. 그 정도로 이 영화에는 일본 극우의 속내가 잘 담겼다. 영화를 보다 보면 '속아서 출연했다'는 그들의 불만이 잘 이해될 것이다.
 
영화 속의 일본 우익들은 '위안부는 매춘부'라느니, '대가를 충분히 받았다'느니, '이들의 숫자가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로 피해자들을 모독한다. 대중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포르노 같은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망언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맹렬한 선전전 펼치는 일본 우익들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 소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 소재. ⓒ 김종성

  
정설로 굳어진 역사적 사실에 수정을 가한다는 의미에서 '역사수정주의자'로 불리는 일본 우익들은 위안부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하고자 맹렬한 선전전을 전개한다. 이들이 '주전장', 즉 '주된 전장'으로 생각하는 곳은 미국이다.
 
이들은 미국을 상대로 맹렬한 활약을 펼친다. 세계 최강이자 한미일 삼각동맹 리더인 미국에서 일본에 불리한 여론이 확산되거나 소녀상 설치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의 태도가 이 문제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영화에서는 그 같은 선전전에 노출된 미국인들의 태도를 공정하게 보여준다. 유튜버인 '토리 머라노'나 캘리포니아 변호사인 '켄트 길버트'처럼 일본 극우에 노골적으로 동조하는 미국인들도 보여주고, 프랭크 퀸테로 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 시장처럼 "위안부 문제는 인권 유린"이라며 피해자들을 옹호하는 미국인들도 등장시킨다. 이들 양쪽이 소녀상 설치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며 미국 내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준다. 
 
 <주전장>에 많이 등장하는 두 미국인. 중앙은 켄트 길버트. 오른쪽 끝은 토리 머라노.

<주전장>에 많이 등장하는 두 미국인. 중앙은 켄트 길버트. 오른쪽 끝은 토리 머라노. ⓒ 노맨 프로덕션

  
영화에서는 소녀상 설치를 둘러싼 지방의회 내의 논란을 중심으로 미국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분위기를 잘 보여줄 만한 사건이 12년 전에 있었다. 2007년 7월 30일 미국 하원이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이 문제를 교과서에 수록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일이다. 이 같은 미국의 태도에 자극 받아 일본 우익들이 "앞으로는 미국이 주전장"이라며, 미국인들을 고용해 선전전에 나서게 된 것이다.

미국을 향한 역사수정주의자들의 활동에 대해 <주전장>은 내레이션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화가 25분쯤 상영됐을 때 나오는 대목이다.
 
"수정주의자들은 여러 방법을 동원해 영어권을 대상으로 이를 실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역사적 사실 보급 협회'를 만들고 미국 주요 도시에서 강연회를 개최하거나 백인 미국인을 고용하여 그들의 주장을 전파시키고 있다. 토리 머라노, 켄트 길버트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런 미국인들은 수정주의자들에게 희망의 상징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과 일본의 위대함을 미국이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본인들이 돈을 써서 로비를 해야 할 정도로, 지금의 미국은 이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연방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마찬가지다. 글렌데일시 같은 곳에 소녀상이 세워진 것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왔다갔다 하는 미국

미국이 이 문제에 개입하는 동기가 있다. 단순히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 동기는 미국의 국익과 관련돼 있다. <주전장>은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날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들려준다. 영화가 1시간 38분 경과했을 때 나오는 장면이다.
 
"일본과 한국은 (우리 미국의) 신뢰하는 동맹국이며 교역국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두 국가가 친밀해지는 것이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미국한테도 유익합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국의 기본 입장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일 양국을 묶어놓는 게 미국한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양국을 움직여 동아시아 전략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 입장에 근거해 2007년의 하원 결의도 나오고 2015년의 개입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미국마저 문제 해결에 등을 돌리면 한일관계가 파탄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염려다. 그래서 2007년 하원 결의가 나왔던 것이다. 이 결의안이 나오는 데에 일본계 미국인인 마이크 혼다 의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이크 혼다.

마이크 혼다.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하지만, 일본을 너무 몰아세워서 과도하게 기를 꺾어놓으면 일본이 미국의 동아시아 대리인 역할을 하기 힘들어질 뿐 아니라 미일관계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게 미국의 또 다른 염려다. 이를 방지하려면, 한국의 주장도 어느 정도 꺾어놓아야 한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2015년 한·일 합의에 미국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외교가의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주전장>이 보여주는 미국의 기본 입장은, 한편으로는 일본을 압박하고 한편으로는 한국을 견제해서 미국에 유리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입장은 위안부 문제에 상당히 중요한 작용을 미치고 있다.
 
우선, 일본이 위안부 강제동원을 노골적으로 부정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아베 신조의 발언과 행보에 대한 미국의 견제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2007년에 아베 신조 총리가 1993년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발언을 뒤엎었던 것이다.
 
아베 신조는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말하자면 헌병이 집으로 쳐들어가서 끌고가는 그러한 강제성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감언이설과 회유·협박 등을 통해 강제동원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헌병대를 동원한 인신구속 등을 통해 강제동원한 사실이 없다는 식으로 발언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국익을 위해 개입했다. <주전장>이 46분 상영됐을 때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주일미국대사 토머스 시퍼는 이런 일본의 시도에 주의를 주었다.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고노담화를 수정하는 것은 미국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개입은 아베 신조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을 때도 나타났다. 이때도 미국 대사가 비판적 입장을 발표했다. 야스쿠니 참배가 위안부 문제 등을 포함한 역사 문제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렇지만 미국의 개입이 꼭 바람직한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듯하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이를 적당히 봉합해 버리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매우 명료한 미국의 입장
 
 <주전장> 스틸컷. 노맨 프로덕션

<주전장> 스틸컷. 노맨 프로덕션 ⓒ 노맨 프로덕션

  
이런 미국의 입장이 외견상 다소 모호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매우 명료하다. <주전장>에서도 어느 정도 강조됐지만, 조양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의 논문 '동아시아 역사논쟁과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논의'는 미국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정리한다.
 
"미 행정부는 물론 미 의회 역시 위안부 문제를 미일동맹보다 우선하지는 않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은 무엇보다도 '결의안의 목적이 미일동맹의 훼손이 아닌 과거사 해결을 통한 지역 안정에의 공헌에 있다'는 혼다 의원의 발언에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 한일민족문제학회가 2007년 발행한 <한일민족문제연구> 제12권.
 
미국의 입장이 이와 같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미국을 과도하게 믿을 수는 없다. 소녀상 설치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일동맹의 근간을 흔들면서까지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사과를 하도록 촉구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구체적 압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미국의 입장이 콘크리트처럼 견고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하원 결의나 소녀상 설치 동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정부나 의회의 지지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시민사회도 이 문제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사회가 이 문제에 공감한 것은, 이것이 동아시아 지역 문제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인권문제가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민족문제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 인권문제로 한층 더 거듭나게 된다면, 이 문제를 미일동맹의 하위에 두는 미국 행정부 및 의회의 태도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전망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궁극적 주체는 한민족이다. 어디까지나 우리 힘으로 해결할 문제다. 하지만 민족적 색채를 한층 엷게 하고 인권 색채를 한층 짙게 한다면, 미국인들까지 확실한 동조자가 돼 문제 해결이 빨라질 뿐 아니라, '주전장' 미국을 우군으로 만들려는 일본 우익의 전략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주전장 위안부 역사수정주의 소녀상 일본 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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