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포스터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포스터 ⓒ 찬란


에드 러샤와 메이슨 윌리엄스가 쓴 책 <로열 주행 테스트(Royal Road Test)>(1971)는 흑백의 사진과 간략한 텍스트를 통해 타자기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차를 타고 가던 두 남자는 엑셀과 브레이크가 위치해야 될 발 아래에 타자기가 위치하자 불편함을 느끼고 창밖으로 던져버린다. 산산이 부서진 타자기의 모습은 마치 살인현장을 보는 듯 끔찍하다. '그것은 파괴될 운명을 제 안에 품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비명에 가지 않으려 이내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는 책 속의 문구는 기술의 발달에 따른 타자기의 마지막을 시적으로 표현해낸다.
 
기술의 발달은 수많은 발명품을 낳았고 세상에 등장한 발명품은 기존의 발명품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사라지게 된 발명품이 타자기이다. 한때 세상의 모든 글을 만들어냈던 타자기는 문명의 발달로 인해 그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는 도입부에 책 <로열 주행 테스트>를 인용하면서 이런 타자기의 마지막을 사고 또는 살인에 비유한다. 타자기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라진 거 같지만 동시에 컴퓨터라는 존재에게 살인을 당해버렸다는 의미이다.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스틸컷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스틸컷 ⓒ 찬란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라는 타자기 수리점에서 가져온 것이다. 미국에 몇 개 남지 않은 타자기 가게인 이곳은 수십 년 전부터 오래된 타자기를 온라인 벼룩시장 등을 통해 구해온 뒤 수리해 판매하는 곳이다.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의 감성을 추구하는 이곳을 중심으로 작품은 타자기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잊고 살아온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이야기한다.
 
타자기 수집가이자 타자기를 통해 간단한 편지와 메모를 한다는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 톰 행크스는 타자기는 컴퓨터와 다르게 자신의 생각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팝블루스의 거장 존 메이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밥 딜런의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그가 타자기로 가사를 썼다는 걸 알게 된다. 컴퓨터의 경우 가사를 적은 뒤 수정할 때 백스페이스를 눌러 간단하게 수정할 수 있다.
 
다만 이 수정의 과정을 거치면 자신이 이 가사를 썼을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썼는지 그 사고의 과정 전체를 알 수 없다. 존 메이어는 컴퓨터로 가사를 쓸 때 오타가 나면 빨간 줄이 그어져 손쉽게 수정할 수 있지만 그 순간 사고가 막혀 원래 표현하고자 했던 가사를 잊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오타도 생각의 과정이며 타자기를 통해 타이핑한 가사 전체는 비록 쓰이는 건 몇 줄 안 되지만 그의 음악적 사고 전체를 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스틸컷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스틸컷 ⓒ 찬란

 
이런 타자기에 대한 애정은 타자기 예술가인 제레미 메이어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타자기 부품들을 이용해 조각상을 만드는 그는 타자기의 내부가 마치 인간과 같다고 말한다. 어떤 부품은 인간의 외형을 닮았고 어떤 부품은 뼈를 비롯한 내부를 닮았다 말하는 그는 인간처럼 생명력을 지닌 타자기의 힘에 주목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타자기는 인간의 생각과 사고 과정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도구이며 컴퓨터처럼 잘못된 걸 수정하고 고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오타라는 아픔도 비문이라는 상처도 안고 가는 존재다.
 
누구나 간단한 글을 작성해 1초 만에 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손가락을 통해 버튼을 누르면 잉크가 퍼져 글자가 새겨지는 타자기의 구조가 지닌 매력은 아날로그적 감성이 지닌 힘을 보여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에는 수많은 발명품이 경쟁하듯 등장하였고 이들은 인간의 삶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써 가지는 본질을 변하게 만들었다.
 
손으로 그리는 그림의 자리는 사진이 대신하게 되었고 영화와 TV의 등장은 책이 지닌 영역을 빼앗았다. 특히 가전제품의 발달은 핵가족화와 가족 내에서 구성원에 대한 소홀함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가상현실, 인공지능(AI) 등 미래의 기술들은 또 다시 인간의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작품은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 타자기를 통해 인간이 지닌 본질적인 속성을 지키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스틸컷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스틸컷 ⓒ 찬란

 
하지만 인간된 본질을 지키자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를 지향하고 디지털 시대의 발전을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의 장점을 통해 아날로그적 감성을 향유할 수 있는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는 인터넷을 통해 전국 각지의 타자기를 모으는 건 물론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조달한다. 또 타자기를 사랑하는 모임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결성해 모임을 갖고 타자기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교환하는 자리를 가진다.
 
영화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이야기하지만 무조건적인 레트로를 지향하지 않는다. 타자기도 어느 순간의 발명품이듯 기술의 발달과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이다. 다만 그런 흐름 속에서 인간이 지닌 본질을 잊어버리지 말고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발명에 녹여내는 주체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 다큐멘터리는 강조한다. 25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 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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