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성해고자 김용희씨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앞 CCTV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씨는 36일째 단식농성중이다.
▲ CCTV탑 고공농성중인 삼성해고자 김용희씨 삼성해고자 김용희씨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앞 CCTV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씨는 36일째 단식농성중이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대한민국 부의 중심가 강남역 네거리 허공에다 목을 매단 사람이 있다. CCTV를 설치해 놓은 관제 철탑 위에서 25일로 53일째 곡기를 끊고 있는 김용희씨. 그는 비를 막기 위해 비닐을 겹겹이 붙여 천장을 만들어 놓고 숨구멍만 터놓은 채 철탑 위 좁은 공간에서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다.

그가 말하는 사연은 이렇다.

김용희씨는 창원에 있는 삼성테크윈 해고자다. 그의 해고 사유는 삼성에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헌법에 보장돼 있는 노동조합 설립 의지를 꺾지 않고 불복했으며, 그 대가로 24년 동안 삼성으로부터, 그리고 국가 공권력으로부터도 지독한 탄압을 받았다.

회유, 납치, 테러, 구속을 통해 핍박 받는 와중에 아버지는 아들을 설득할 수 없어 유서 한 장 남겨놓고 사라졌는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고, 어머니는 2차 구속 후 뇌경색으로 쓰러져 궁색한 생활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간첩으로 몰리기도 했고, 남편의 부당함을 알리려고 소식지를 나눠주던 아내는 경찰관에 끌려가 몹쓸 짓을 당할 뻔하고 지금까지 고통을 겪고 있으며, 아들은 불안정한 집안의 일들을 견디다 못해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그야말로 가족이 처참한 지경으로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정년을 앞두고 단 하루라도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철탑으로 올라간 김용희씨. 하지만 며칠 전 정년은 지나가 버렸고, 그는 아예 물과 소금마저 끊어버린 채 목숨을 내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무더운 날씨에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공간에서 그는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가 겪어온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그를 지탱하고 있을 것이다. 180m 키에 80kg의 건장했던 그의 몸은 지금 50kg도 안 되게 줄어들었고, 갈비뼈가 살갗을 뚫고 나올 것처럼 툭툭 불거져 있다.

두 달이 다 돼 가도록 목숨 내건 사람의 절규 외면

우리는 지난 시절 세월호 침몰이라는 있을 수 없는 대참사를 목격했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장면을 보던 국민들의 뇌리에 여전히 그날은 트라우마로 기억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또 그렇게 죽어가는 김용희씨를 목격하고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강남역 네거리 위에서, 햇볕에 바짝 타들어 가는 나뭇잎처럼 바스러질 듯이 말라가고 있다.

세월호를 보면서, 제천 참사와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생명존중의 의미를 되새겼었다. 그런데 지금 김용희씨의 사태를 보면서 국가도 삼성도 침묵하고 있다.

이 사건은 노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권 유린의 문제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책임지고 사람을 살려야 할 사람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인권에 대한 인식이 없는 나라란 말인가? 연인으로부터 배신당한 한 사람이 강물에 투신한다고만 해도 야단법석을 떨면서, 두 달이 다 돼 가도록 목숨을 내건 한 노동자의 절규를 이렇게 외면하다니!
 
삼성해고자 김용희씨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앞 CCTV철탑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씨는 36일째 단식농성중이다.
▲ CCTV탑 고공농성중인 삼성해고자 김용희씨 삼성해고자 김용희씨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앞 CCTV철탑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씨는 36일째 단식농성중이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나는 개인적으로 김용희씨에게 내려오라고 하고 싶다. 두 달 가까이 이 상황을 보면서 당신이 의지할 곳은 노동자라는 동료의식이 넘치는 노동자들의 힘뿐이고 양식 있는 민주시민들뿐인데, 그 힘이 너무 미약해 당신을 구출해줄 수 없으니 내려오라고 하고 싶다. 국가에 청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이미 정부는 침묵으로 보여줬고, 삼성은 악랄하게 당신의 목소리를 비웃으며 관심조차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 자본과 지난 시절 국가의 공권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으며 만신창이의 삶을 살아온 김용희씨.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눈물을 흘려가며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내려오라. 내려와서 당신 같은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노동자의 힘을 만들고 양식 있는 시민들의 민주의식이 더 커지도록 애써보자고 말하고 싶다.

비가 온다. 김용희씨의 비닐 천장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얼마나 클까. 참으로 서글프다. 아니 서글픔을 넘어서서 이렇게 침묵으로 한 인간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이 사회가 나는 무섭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인휘는 소설가로 2016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태그:#해고, #농성
댓글1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