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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자율형사립고등학교) 학부모와 학생 5000여 명이 서울에서 도심집회를 하고, 전주의 상산고가 자사고로 유지된다는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 있었던 '2019 혁신학교 정책공감 컨서트'의 특강과 겹쳐진다.

'2019 혁신학교 정책공감 컨서트'는 지난 11일 오전 11시, 창원대학교 종합교육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오전시간은 학부모를 위한 안배였다. 경남형 혁신학교인 '행복학교'를 알고 싶어하는 학부모를 위해 이해를 도우는 자리였다. 관심있는 학부모 수백 명이 아침까지 쏟아진 폭우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메웠다. 2년 전에 박종훈 경남교육감과 함께 행복학교 관련 토크쇼를 진행했던 인연으로 다시 진행을 맡았다.

'한국사회와 혁신교육'이라는 제목의 특강이 시작됐다. 경기도 교육연구원 안순억 연구원은 충격적인 사진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2015년 인도의 한 고교 입학시험 고사장에서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컨닝페이퍼를 전달하려고 담벽을 오르는 모습이었다. 
 
커닝페이퍼 전달하는 학부모들
▲ 인도 고교시험장 커닝페이퍼 전달하는 학부모들
ⓒ 김혜란(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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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었지만 또 다른 사진 한 장은 대한민국사회에는 그에 못지 않은 자랑스런(?) 입시스릴러가 있으니 주눅들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왔던 이른바 '예서책상', 1인 독서실 사진이다. 드라마에 등장한 이후 200만 원 전후의 이 책상이 불티나듯 팔렸다고 한다. 이 안에 들어가 본 예서역 배우 김혜윤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그 책상앞에 앉아봤는데 너무 갑갑했어요. 환풍기 구멍이 있었는데 숨막히는 공간이었고 연기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특강이 끝나고 최근 트로트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해 삼방고등학교 김은빈 학생의 트로트노래 공연이 있었다.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소망을 이루게 하려는 행복학교의 목표와 잘 어울리는 무대였다.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김은빈학생에게 학부모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모태 트로트 김은빈, 공연
▲ 김해삼방고등학교 김은빈학생 모태 트로트 김은빈, 공연
ⓒ 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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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고 유쾌한 10대 소녀의 트로트로 한숨 돌린 무대에서 1시간 30분동안 토크가 이어졌다.

행복학교는 미래형 학교다.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가는 배움과 협력이 있는 학교! 함께 자리한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증언했다. 시간 내내 조심스러워한 것이 있었는데, 행복학교가 정말 좋다고 말하면 '너희아이들만, 너희만 좋으면 되냐'는 오해를 할까 걱정스럽다는 것.

그런 사실과 함께 따라오는 사람들의 다른 오해 하나는, 행복학교는 이 정부의 '자사고'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안순억 연구원은 확실히 말했다. '자사고'나 혹은 '특목고'같은 학교가 학생들의 5%, 일부만을 위한 학교라면, 행복학교는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90% 이상의 학생들을 위한 학교라고.

혹자는 물을 것이다. 90%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움직이면 똑똑한 아이들과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이다. 연구원이나 교사, 학부모와 학생 모두가 대답을 공통적으로 들려줬다. 

우리아이들의 미래교육은 그런 입시지옥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그 일을 지금 모범적으로 행복학교가 실행한다는 것. 초등학교나 중학교 이후 행복학교가 아닌 학교에 가도 적응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느리지만 훨씬 더 깊이 있게 적응하고 견딘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대학입시만이 오로지 목표인 것이 우리교육의 문제이고, 행복학교는 대학입시이후에도 길게 이어질 아이들의 삶을 살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초등학교에서나 그런 자유로운 교육이 가능하지 않냐고 말하지만, 행복학교는 중학교 교실에서도 초등학교때와 다름없이 프로젝트 교육이 이뤄지고, 학생들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이 교실 어디에서나 이뤄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행복학교에서 받는 교육을 재미있어하고 심지어는 주말에도 학교를 가고 싶어한다고 학부모가 증언했다. 오, 놀라워라.

거창의 행복학교인 아림고등학교 졸업생 곽원진씨(20, 부산교대)은 말했다.

"친구를 가르치자니, 내가 모르면 가능하지가 않더라고요. 할 수 없이 공부를 해야했고, 서로 얼굴보고 가르치자니, 서먹하던 사이도 친해질 수 밖에 없더라고요."

행복학교의 생활교육방식인 '서클'에 대한 이야기는 특별했다.

"늘 일렬로 놓인 책상은 항상 친구 뒷꼭지만 바라보고 교탁에 계신 선생님만 보게 하잖아요. 옆자리 친구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거나 수업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서클'시간에는 둥글게 원탁처럼 둘러 앉아서 친구 얼굴을 보며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동시에 친구 손을 잡고 눈 마주치며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이번 혁신학교 정책 공감 컨서트를 준비한 경상남도교육청 심우향 장학사는 토크쇼이후 이런 귀뜸을 해 주었다. 학교현장에서 오래 근무한 만큼 촉이 남달랐다.

"요즘 교실의 화두중 하나가 공간사용이에요. 얼마나 평등하게 교실의 공간사용을 할 수 있을지가 연구과제입니다."
 

그랬다. 흔히 '서클'형태의 수업을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를 하면서 서양에서 수입한 교육방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김홍도의 그림 <서당>에는 훈장님과 아이들이 둥글게 앉아서 글을 읽는다. 우리의 방식이기도 하다.

모든 책상이 교사를 향한 입시위주 배열형태는 일제 강점기때부터였다. 높이가 있는 교탁과 책상과 의자안배는 지극히 권력형 구도다. 교사을 향한 집중식 책상배열은 교실에서 교사의 허락을 받지 않은 어떤 이야기나 대화도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간사용에서도 입시위주의 교육이 얼마나 권력지향적인 교육인지 확인할 수 있다. 
 
둥글게 앉은 서당 아이들
▲ 김홍도 서당 둥글게 앉은 서당 아이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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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물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높은 서열의 대학에 진학하는 일외에 미래를 위한 어떤 교육이 가능하냐고. 그저 입시점수 높은 대학만이 답으로 여기는 사회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사람을 줄 세워 서열로 평가하고, 그 기준에 맞게 삶을 살아가도록 압박하고 왜곡한다.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상위 5%의 아이들은 여전히 성적으로 줄 세운 유명 대학을 다닐 수 있고 그 성적의 결과로 취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5%만 사는 세상이라면 문제 없다.  하지만 세상은 나머지 95%가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들의 꿈을 무시하거나 능력을 사장시켜서도 안된다. 또한 국영수만으로 상위 5%인 아이들이 대학입시이후 행복한 삶을 산다는 보장이 없다. 현행 입시위주 교육으로는 제대로 된 대학교육조차 불가능하다. 

어렸을 때 아이들은 질문을 끝없이 해댄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나이 들수록, 상위학교에 진학할수록, 질문이 사라진다. 시키는 것만 잘 하면 되니까.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난다. 일본인과 프랑스인 부모를 둔 12살 아이가 일본에서 프랑스로 이민을 갔다. 이미 프랑스어는 익혀놨고 일본에서 꽤 공부 잘하던 아이였다. 가자마자 역사시험을 보았다. 문제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쓰시오." 아이는 역사도 재미있어 해서 어렵지 않게 답지를 작성했다.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가 연합군을 상대로 싸운 세계규모의 큰 전쟁으로,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전쟁이다. "

그럴 듯 하지만 점수는 0점이었다. 부모는 학교로 달려갔다. 왜 0점이냐고. 교사가 말했다.

"아이 상태가 심각합니다. 답에는 자기 생각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에피소드에서 자유로운가. 세상이 바뀌는데 늘 같은 방식으로 이뤄지는 우리의 교육, 그 판을 바꾸려는 시도가 혁신교육이고, 그 모델로 경남형 혁신학교인 행복학교가 있다.

행복학교는 5%만이 행복하려는 교육이 아니다. 5%가 중심도 아니다. 되도록 많은 아이들의 다양한 역량이 평가받고 길러지도록 하는 교육모델이다. 사유하고 질문하며 표현하는 교육이 오늘도 진행중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스타일이 아니라, 통일신라 '금동미륵보살 반가유사유상'형태로 말이다.

이날 2시간 남짓, '2019 혁신학교 정책공감 컨서트' 를 진행하면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로버트 뉴턴 팩이 쓴 소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중 한 대목이다.
 
내가 성적표를 매티 이모에게 보여 주었을 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이모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수'라는 글자를 읽을 줄 몰랐다. 수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 없었다. 이모가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양'밖에 없었는데 국어에 '양'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니, 국어가 '양'이잖아!"

매티 이모는 '양'을 받은 아이는 생전 처음 봤다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른들은 어쩌면 아이들의 능력 중 다양한 역량을 가진 건 보지 않으려 하고, 우리가 아는 단 하나의 글자 '양'-입시교육-으로만 읽어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미래사회는 더 큰 변화를 가져올 테지만 아이들이 가진 역량을 그저 '양'으로만 판단하는 어른들의 방식으로 가르치면서 어떻게 아이들이 변화에 적응하며 밝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랄까.

그 누구도 흘러간 물에 발을 담글 수는 없다. 한번 흘러간 물을 가두어 아이들의 미래를 혁신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 경남형 혁신학교 '행복학교'에 대한 궁금증은 경남도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그:#경남형 혁신학교, #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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