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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매일 같이 수많은 분석과 주장과 논란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다. 오랜 역사를 가진 문제이고 법적으로도 복잡한 문제인 만큼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리즈에서는 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요 쟁점들을 정리해보기로 한다.[편집자말]
2018년 10월 30일의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전례 없는 긴장국면을 맞고 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쟁점은 많고 복잡하다. 정치와 경제, 외교와 역사가 뒤얽혀 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정리하고 따지는 점검 작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일본 법원에서 진행한 소송들] 72년 손진두 소송이 효시... 90년대 들어 본격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사진은 지난 4일 참의원 선거가 고시된 가운데 후쿠시마(福島)현 후쿠시마시에서 첫 유세에 나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사진은 지난 4일 참의원 선거가 고시된 가운데 후쿠시마(福島)현 후쿠시마시에서 첫 유세에 나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교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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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99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하게 자리잡은 냉전 체제는 제국주의 국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책임을 봉인한 것이기도 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쳐 냉전 체제와 그 하위체제인 각국의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그 때까지 억눌려 있었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마침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그 선두에 선 것이 다름 아닌 한반도 출신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원폭 등의 피해자였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상징되는 그 목소리는, 일본의 재판소에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구체화 되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책임을 묻는 대일과거청산소송(일본에서는 '전후보상소송'이라고 부름)의 효시는 1972년에 제기된 '손진두 소송'이다. 하지만 소송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이다. 현재까지 전 세계의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대일과거청산소송은 총 98건이며, 그 중 한반도 출신자(재일한인, 중국적 조선족 포함)가 제기한 소송이 53건으로 절반이 넘는다.

일본에서의 소송은 대부분 원고 패소로 끝났다. 일본 국내법상 일본인과 차별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원폭 피해의 경우를 제외하면, 하급심에서 일부 승소하거나 화해가 성립된 케이스는 있지만, 최고재판소까지 가서 최종적으로 승소한 케이스는 없다. 일본의 재판소가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한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결국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이 최후의 이유였다.

[한국 법원에서 진행한 소송들] 미국을 돌아 한국 법정에 와서야 겨우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 일제 강제징용 승소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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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재판소에서 구제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대안으로 주목한 것이 미국과 한국에서의 소송이다. 미국 소송의 대표적인 사례는 2000년 9월 18일에 한국·중국·대만·필리핀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 원고와 피고 모두 미국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건이고, 게다가 청구권 협정이라는 한일 간의 조약이 주요 쟁점이 된 사건에서, 미국의 법원은 '정치적인 문제'에는 법원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워 원고 패소를 선고했다.

결국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마지막 남은 곳은 한국 법원이었다. 2000년 5월 1일에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 강제동원 피해자 6명이 부산지방법원에 제소(이하 '미쓰비시중공업 소송')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2월 28일에는 일본제철 주식회사 강제동원 피해자 5명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소했고(이하 '일본제철 소송'), 이후 현재까지 15건의 소송이 추가로 제기되었으며, 원고의 수는 총 900명 정도이다.

한국 소송에서도 초반에는 1, 2심 모두 패소 판결이 잇따랐다. 그러다가 2012년 5월 24일에 이르러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 소송과 일본제철 소송 모두에 대해 원고 승소 취지의 파기 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2013년 7월 10일과 7월 30일에 서울고등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이 각각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지만,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다시 상고했다. 통상의 예에 따라 그 해 말까지는 확정 판결이 선고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거래'라는 희대의 사건으로 선고가 지연되어 2018년 10월 30일에 이르러서야 일본제철 소송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확정 판결이 선고되었고, 뒤이어 11월 29일에 미쓰비시중공업 소송에 대해 대법원 확정판결이 선고되었다.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의 내용] 다수의견, 별개의견, 반대의견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일본제철 소송에 대해 2018년 10월 30일에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8.10.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판결에서 다룬 상고 이유는 다섯 가지였지만, 그 중 전원합의체의 의견이 갈린 것은 원고들의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인가라는 점이었다.

그 점에 대해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는 다섯 개의 의견(다수의견, 별개의견1, 별개의견2, 반대의견, 보충의견)으로 나뉘었다. 다만 그 중 별개의견1은 소송법상의 쟁점만을 다룬 것이고, 보충의견은 다수의견을 보완한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의견 대립은 다수의견, 별개의견2, 반대의견 사이에서 전개되었다. 그 요지는 아래와 같다.
○ 다수의견 :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므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

○ 별개의견2 : "청구권협정의 해석상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원고들 개인의 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다. " (외교적 보호권이란, 외국에서 자국민이 위법·부당한 취급을 받았으나 현지 기관을 통한 적절한 권리구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최종적으로 그의 국적국이 외교절차나 국제적 사법절차를 통하여 외국 정부를 상대로 자국민에 대한 적당한 보호 또는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 기자 주)

○ 반대의견 :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법원 판결의 의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씨가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며 취재진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승소 판결에 기뻐하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씨가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며 취재진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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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견에 따르면, 강제동원 문제는 애당초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곧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적이 없고, 따라서 청구권협정에 의해 한국 정부가 받은 무상 3억불에 해당하는 일본의 생산물 및 용역(이하 '무상 3억불')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인 피해자 개인은 법원에 피해의 구제를 청구할 수 있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그 피해의 구제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별개의견2에 따르면, 강제동원 문제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다. 이것은 곧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었고, 따라서 무상 3억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별개의견2는 청구권협정에 의해서 소멸된 것은 한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며,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피해자 개인은 법원에 피해의 구제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반대의견에 따르면,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고, 게다가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도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는 권리로 축소되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 개인도 법원에 피해의 구제를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다만 반대의견은 실체적 권리는 소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법원을 통하지 않는 방법, 즉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배상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된다.
 
ⓒ 김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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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의 '법정의견'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관해 지금까지 제기된 의견들을 망라해 담고 있다. 다수의견은 2012년 파기환송 판결의 주위적 판단의 논지를, 별개의견2는 그 가정적 판단의 논지를, 반대의견은 일본 최고재판소의 2007년 4월 27일 니시마쯔(西松)건설 중국인 강제노동 판결의 논지를 각각 채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중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것은 다수의견이라는 점이다. 법원의 합의심판은 "헌법 및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과반수로 결정한다"(법원조직법 제66조 1항).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전원합의체 구성원 13명 중 보충의견을 낸 2명을 포함하여 과반수인 총 7명이 다수의견에 찬성했다. 따라서 다수의견이 2018년 대법원 판결 중 유일하게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법정의견'이다.

대법원 판결에는 "합의에 관여한 모든 대법관의 의견을 표시"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법원조직법 제15조) 별개의견과 반대의견도 기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다수의견 뿐인 것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의 다수의견=법정의견은 이후 일련의 강제동원 사건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8.11.29. 선고 2013다67587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판결 및 대법원 2018.11.29. 선고 2013다67587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판결)에서 거듭 채택되었고, 그래서 확립된 판례가 되었다. 따라서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을 전제로 이야기를 할 때나 논리를 전개할 때에는 그 다수의견=법정의견을 전제로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확인한다.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의 취지는 아래와 같다.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즉,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적이 없고, 청구권협정에 의해 한국 정부가 받은 무상 3억불과 관련이 없다. 강제동원 문제에 관해서는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남아 있다. 따라서 지금 한국인 피해자 개인은 법원에 피해의 구제를 청구할 수 있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그 피해의 구제를 요구할 수 있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국면 점검' 글 싣는 순서

1.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은 무엇인가?
2.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무엇이 해결되었나?
3.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4. 아베 정부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5.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6.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
7.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 제목은 바뀔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창록 기자는 경북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태그:#한일청구권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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