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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아이고 힘들다." 퇴근 후에 집에 오거나 일하다 쉴 때면, 어깨, 다리, 허리 등 몸 곳곳이 뻐근하고 쑤신다. 이를 가리켜 흔히 골병든다고 말한다.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업무상 질병, 즉 근골격계 질환이라 부른다.

우리가 생활하거나 일하기 위해선 몸을 쓸 수밖에 없다. 그때 몸을 움직이게 하는 신체 부위마다 피로가 쌓이게 된다. 그러다가 때로는 통증이 오기도 하고, 심한 경우엔 신체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손상을 입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픔을 참고 일하러 나간다. 오늘도 그렇게 골병이 든다.

근골격계 질환은 업무상 질병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매년 수천 명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정도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 과거에는 일하다 보면 몸을 쓸 수밖에 없으니 아픈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힘든 일을 하면 힘든 대로, 나이가 들면 드는 대로, 골병은 돈을 벌거나 임금을 받는 대신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대가로 취급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근골격계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3년마다 정기적으로 근골계질환 예방을 위한 유해요인 조사(이하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하는 걸까? 정부에서 하라고 법으로 강제하니까 어쩔 수 없이?

 
건강할 권리, 안전할 권리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뭘까? 일하다 아프고 골병드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닐까. 아픈 건 당신 탓이 아니라 일 때문이라는 것을 교육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할 권리, 안전할 권리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뭘까? 일하다 아프고 골병드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닐까. 아픈 건 당신 탓이 아니라 일 때문이라는 것을 교육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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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병드는 게 당연한데, 조사는 왜 하는 거죠?

필자는 지난 6월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교육원에서 2박 3일간 진행하는 "근골격계 예방을 위한 유해요인 조사" 교육을 받았다. 교육 중에 다음과 같은 고민이 들었다. 왜 이 많은 사람이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 교육을 들으러 오는 걸까? 법적으로 교육 이수를 해야 하니까? 그리고 조사를 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으니까? '해야 하니까 하는 거야'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물어보고 싶었다. "일하다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아픈 건데도, 왜 직업병이라고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법제도적으로 관리하게 된 거죠?"

하지만 공단 교육에서는 강사든 교육생이든 누구도 그걸 묻지도 답하지도 않았다. 오직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의 법적 규정은 어떻게 되는지, 조사를 위한 기법은 뭐고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한 기술적 내용만 다룰 뿐이었다. 골병드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듯이,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왜 골병이 드는지, 왜 조사하고 예방조치를 취하는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이는 교육 시간표에도 명확히 드러났다. 어쩌면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가 2003년에 처음 시행된 이후로 10여 년 넘게 지난 탓에, 정부와 공단, 회사와 노동자 모두 행정업무 중 하나로 취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교육'이라면 달라야 했던 게 아닐까.

물론 누군가 이건 '실무' 교육에 불과하다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조사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것과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는 것이 서로 긴밀히 연관된다는 점이다. 둘의 연관성이 뭔지 알기 위해선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에 진행한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 교육" 프로그램 시간표.
 지난 6월에 진행한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 교육" 프로그램 시간표.
ⓒ 산업안전보건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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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의 도입 배경과 취지 이해하기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는 원래부터 실시했던 게 아니다. 제도가 도입된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의 시기로 돌아가 보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 주도로 각종 산업 내에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한편으론 대규모 실업이 양산되었고, 다른 한편으론 회사와 공장에 남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강화되었다. 인력 부족, 장시간 노동, 단위시간당 작업량 증대 등으로 노동자들의 신체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러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1999년 '이상관 산재인정 투쟁',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어진 집단요양투쟁 등을 펼쳤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마침내 받아들여져 2003년에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로 법제화되었다. 사회적으로 보호 및 관리를 받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근골격계 환자의 수가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니고, 생명과 건강이 중요하다는 윤리적 책임감 때문만도 아니다. 노동강도의 강화라는 한국 사회경제적 변화가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 도입의 배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하나는 노동자의 건강이 사회와 일터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회구성원 모두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법에서 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차원에서 또는 노동생산성의 관리 차원에서 교육받고 조사하는 것임을 주지시켜 동기부여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골병을 다룰 때 노동강도의 문제가 갖는 중요성이다. 노동강도가 심해지면, 노동자의 신체가 일반적인 노화 속도보다 더 빨리 더 심하게 손상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해당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다. 그렇기에 사회와 일터에서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유해요인을 찾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에도 반영되어 있다.

인간공학평가를 잘하면, 조사를 제대로 한 걸까?

그렇다면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를 잘한다는 건 뭘까? 현장에서 조사보고서를 만들어가면, 안전관리책임자나 상급자들이 종종 이렇게 얘기한다. 무슨 근거로 이렇게 평가했냐? 너무 주관적인 거 아냐? 그래서 조사 담당자들은 더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숫자에 의존하게 된다. 전문성과 객관성을 갖췄다는 말을 듣기엔 수치를 명확히 제시해주는 인간공학평가도구만한 게 없다. 조사자의 입장에서도 인간공학평가를 하면 보다 체계적으로 조사한 것 같다.

인간공학평가는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에서 중요한 도구다. 노동자가 어떤 자세로 일하느냐에 따라, 작업 도구나 기계설비가 어떠한가에 따라 노동자의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공학평가를 통해 작업 자세, 작업설비의 문제를 밝혀낼 수 있고, 부담 작업 및 부적합 설비를 개선할 수 있다.

이런 장점에도 인간공학평가는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 중 미시적인 측면에 집중하기 때문에, 노동강도의 강화라는 보다 거시적인 측면을 놓치기 쉽다. 인원, 작업량, 노동시간, 작업속도, 휴식시간, 휴게공간, 긴장도,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인이 노동자의 신체에 부담을 가한다. 이러한 요인들은 작업장 내 근무환경, 기업의 이윤추구 전략, 사회경제적 상황 등 크고 작은 범위에서 영향을 미친다. 인간공학평가만으로는 이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유해요인들을 밝힐 수 없다. 그러니 노동강도 평가를 반영하기 위한 고민을 현장 조사뿐만 아니라 교육 시간에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위험성 평가를 비롯한 다른 조사를 통해 이를 보완하면 되지 않냐고 반론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제도들이 체계적으로 연동되지 못하고 일부 중첩된 대로 각자 독립된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고려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위험성 평가 등 다른 조사와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가 일관성 있게 연동되도록 제도를 체계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함께 단기적으로는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에서 노동강도 평가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나아가 조사 실무 자체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산업안전보건교육원 교육 프로그램 참가 후기를 기획연재합니다. 두번째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박기형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태그:#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 #산업안전보건교육원, #안전보건공단, #고용노동부, #노동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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