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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수색 업체인 오션인피니티는 지난 2월 17일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VDR)를 수거한 후 고압의 물로  세척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은 이 과정에서 블랙박스가 손상됐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심해수색 업체인 오션인피니티는 지난 2월 17일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VDR)를 수거한 후 고압의 물로 세척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은 이 과정에서 블랙박스가 손상됐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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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7일 스텔라데이지호 VDR(항해기록저장장치, 이하 블랙박스)이 회수됐다. 그로부터 만 5개월 여가 흐른 지난달 26일,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데이터 추출 결과가 전달됐다.

'회수한 두 개의 칩 중 하나는 데이터 추출 불능, 나머지 하나는 7% 데이터만 복원'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공동대표는 긴 한숨을 쉬며 <오마이뉴스>에 "블랙박스 수거 당시 영상을 보니 심해에서 끌어올린 블랙박스를 자동차 세차하듯 세척했다"면서 "심해수색 경험이 전무 했던 오션인피니티가 부주의하게 블랙박스를 처리하면서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곧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원인을 밝힐 결정적 증거인 선원들의 최후 음성을 복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가족대책위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발표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 데이터 추출을 맡은 영국의 전문업체는 지금까지 심해에서 회수한 블랙박스를 성공적으로 복구한 사례가 10건도 넘었다. 그런데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 데이터칩처럼 금(crack)이 가있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는 국제 세미나에서 언급해야 할 만큼 희귀한 경우라고 한다. 데이터 칩이 훼손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사실이 없다."
 
심해수색 업체인 오션인피니티사가 지난 2월 17일 원격제어 무인잠수정(ROV)을 이용해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VDR)를 회수하는 모습.
 심해수색 업체인 오션인피니티사가 지난 2월 17일 원격제어 무인잠수정(ROV)을 이용해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VDR)를 회수하는 모습.
ⓒ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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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성명을 발표한 수 시간 뒤인 당일 오후 10시, 해수부와 외교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 등 정부 3개 기관은 공동으로 가족들의 성명에 대한 해명자료를 발표했다.

해명자료에서 정부는 "스텔라데이지호 외에 선박용 VDR을 심해에서 수거해 데이터 복구에 성공한 사례는 (가족들이 주장한 10건과 달리) 미국 국적 컨테이너선 엘파로호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데이터칩이 균열된 것은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부속물 제거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의 주장이 '맞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복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가족 간에 진실공방전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30일 오후 <오마이뉴스>가 외교부 앞에서 진행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원인 규명과 유해수습을 위한 2차 심해수색 촉구 16차 기도회' 현장에서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공동대표를 직접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 후 외교부와 해수부 관계자와도 직접 통화해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복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정부 입장도 추가로 확인했다.

다음은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공동대표와의 대화를 정리한 내용이다.

"블랙박스 복원 성공 사례, 가족들이 구글링 했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허영주 공동대표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허영주 공동대표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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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박스 복원에 실패했다.
"블랙박스 수거 당시 영상을 보니, 심해수색 업체인 오션인피니티사가 블랙박스를 끌어올린 뒤 자동차 세차하듯 세척을 했다. 당시 함께 승선했던 우리 가족이 '무슨 상황이냐'라고 묻자 '깨끗하게 세척해 보관한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지점부터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침몰한 엘파고(EL FARO)와 에어프랑스(Air France 447) 블랙박스 회수했을 당시 영상을 확인하니, 거기서는 조심스럽게 회수해서 바로 디아이워터(DI water/극초순수액)에 넣었다. 오션인피니티가 처리한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인터뷰 후 허 대표는 <오마이뉴스>에 추가로 입장문을 보내왔다. 입장문에는 29일 오후 10시 정부가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의 입장에 대한 반박 자료로 내놓은 "스텔라데이지호 외에 선박용 VDR을 심해에서 수거한 사례는 미국 국적 컨테이너선 엘파로호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라는 발표에 대한 재반박 자료가 첨부돼 있었다.
  
"어떻게 심해 블랙박스 복원 성공사례를 피해자 가족이 구글링을 통해 찾게 만드냐.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에어프랑스나 엘파고를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언제 사고가 났고, 언제 블랙박스가 회수했으며, 블랙박스 데이터 복원 성공 여부까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심해수색 성공 사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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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에 대한 실망이 더 커진 것 같다.
"피해자 가족이 되기 전에는 당연히 국가가 안전하게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난민이 아닌데 난민이 된 느낌이다. 어떻게 국가가 이런 식으로 피해자 가족들에게 얕은 속임수와 수작을 걸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스텔라데이지호 피해자 가족들이 난민이냐? 외교부 공무원들에게 내가 낸 세금이 1원이라도 간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난다."

- 블랙박스 속 칩은 원래 두 개였나?
"블랙박스를 열어보니 칩이 두 개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금이 갔다. 거기서는 단 하나의 내용도 복구되지 않았다. 또 하나의 칩은 7% 복구됐는데, 항해 정보 중 일부만 나왔다. 이 지점에서 내가 궁금한 건 (편의상) A칩과 B칩이 똑같은 데이터를 갖고 있었는지 아니면 두 개의 칩이 달랐는지다. 그래서 정부에 이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모른다'였다. 나는 왜 정부가 모른다는 답만 내놓는지 모르겠다. 제조사에 확인을 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허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은 외교부 청사 앞에서 2차 심해수색을 촉구하는 기도회를 올렸다. 이 기도회는 지난 6월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진행되고 있다. 지난 화요일이 16차 기도회였다.
 
외교부 앞에서 기도 드리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가족들
 외교부 앞에서 기도 드리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가족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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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칩 균열은 다양한 요인에서 발생"
  
29일 발표한 정부(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외교부)의 공동 해명자료를 보면 '데이터칩의 균열은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라고 돼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블랙박스 훼손 원인을 밝혀야 한다'라는 가족들의 요구에 "현재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서 블랙박스 훼손 경위와 관련해 원인을 검토중"이라면서 "현재 상황에서 답변드릴 수 있는 내용은 거기까지다"라고만 밝혔다.

또 외교부는 블랙박스 본체 발견과 유해 수습의 핵심이 되는 2차 심해수색에 대해 "충분히 의지를 갖고 있다"라면서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가족들의 바람이 A인데 어떻게 B를 생각하겠냐. 다만 비용이 가장 큰 문제다. 그 부분을 여러 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말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한 심해수색을 위해 미국 업체 오션인피니티에 심해수색 용역을 맡겼다.

오션인피니티는 지난 2월 14일부터 9일간 남대서양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추정 위치를 수색한 결과 블랙박스 캡슐과 사람의 뼈로 추정되는 유해 일부를 발견했다. 그러나 '유해 수습이 과업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오션인피니티는 유해를 심해에 그대로 두고 왔다.

외교부는 지난달 23일 1차 심해수색 평가에 관한 여야5당 합동공청회에서 "유해수습은 비용이 많이 들어 당초 배정된 예비비 53억 원 내에서 계약이 불가능했다"라며 "예산의 한계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유해 수습이 불가능했다"라고 밝혔다.

태그:#외교부, #스텔라데이지호, #해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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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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