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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어머니상이다. ‘힘을 통한 평화’를 상징한다.
 아르메니아 어머니상이다. ‘힘을 통한 평화’를 상징한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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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3일 낮 12시 28분] 

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로 넘어가는 국경 심사장. 우리 여행객들은 긴장했다. 우선 여권 속에 넣어 두었던 아제르바이잔 비자 영수증을 꺼내서 서둘러 감췄다. 그리고 몇몇 여행객들은 아제르바이잔 여행 당시 산 '바쿠(아제르바이잔 수도)' 글자가 새겨진 가방도 황급히 짐가방에 넣고, 다른 가방을 메었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자체 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외국인은 입국심사대 앞에서 오랜 시간 꼬치꼬치 캐묻는 아르메니아 심사원의 질문에 답하느라 혼쭐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뒤에 서서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외국인은 입국이 보류되어 따로 열외가 되고 우리 여행객들은 다행히 순조롭게 입국할 수 있었다.

나중에 버스에 승차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보니, 가이드가 미리 입국 심사대에서 우리 상황을 설명했고, 협조를 구해서 그나마 우리는 손쉽게 입국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르메니아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산 물건은 갖고 있어도 됩니다. 그런데, 아제르바이진 국기나 글씨 쓰여 있는 모자나 옷, 가방 같은 것 되도록 여행 중에는 눈에 띄지 않게 가방에 넣어 두세요."

유창하지는 않지만 현지 가이드 아르메닌은 또박또박 한국말로 주의를 당부한다.

"아르메니아 사람 중에서 아제르바이잔 보면 항의하는 사람 있을 수 있습니다. 필요 없이 싸우면 안 되니까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르메니아는 그래도 심하지 않습니다. 아제르바이잔 입국 때는 아르메니아 물건 다 뺏습니다. 우리는 빼앗지는 않습니다."

그 설명 중에도 은근히 아제르바이잔과 비교해서 자신들은 그나마 나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 여행객들 중에는 아제르바이잔 입국 당시 아르메니아에서 산 기념품 등을 몰수당한 경험담이 여행기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여행 루트를 보면 아제르바이잔에서 아르메니아로 여행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여행을 한 후 조지아를 가는 것이 합리적인 동선이다. 그러나 굳이 중간에 조지아를 거쳐야 하는 까닭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상호입국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국을 방문한 전력이 있는 경우 입국이 불허되기도 하는 상황이다. 마치 중동국가와 이스라엘 사이에 분쟁 때문에 서로 상대국 방문 사실이 있으면 입국이 불허되는 것과 비슷하다. 도대체 두 나라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르메니아 대학살 기념관에 전시된 사진 자료,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 인들이 터키에 의해 학살되었다. 하지만 터키는 분쟁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학살은 아니라는 입장이며 그 수도 50만 가량이고, 터키 국민 역시 다수가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아르메니아 대학살 기념관에 전시된 사진 자료,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 인들이 터키에 의해 학살되었다. 하지만 터키는 분쟁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학살은 아니라는 입장이며 그 수도 50만 가량이고, 터키 국민 역시 다수가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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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 기독교 국가이다. 로마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공인했다면, 아르메니아는 이보다 12년 앞선 301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했다.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국가로서 특히 이웃한 터키와는 형제 국가라고 할만큼 우호관계가 깊다.

여기서 첫 번째 갈등이 있다. 과거 터키는 아르메니아가 자신들과 대립하고 있던 러시아의 편을 들 것을 우려하여 150만 명(아르메니아 주장)의 아르메니아인들을 대학살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터키도, 형제국 아제르바이잔도 인정하고 있지 않다.

둘째는, 과거 소련 시절 스탈린이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을 정치적 목적으로 아제르바이잔에 넘김으로써 생긴 영토 분쟁 때문이다. 1988년 아제르바이잔 영토에 속한 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주가 분리·독립을 선언하면서 본격화됐다. 1991년 말 소련 붕괴로 양국이 독립한 이후 한층 첨예해져 전면전으로 치달았으며 1994년 휴전까지 3만 명이 숨지고 100만 명이 피난했다.
  
아제르바이잔 영토에 속한 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주가 분리·독립을 선언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아르메니아와 전쟁까지 하는 등 영토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영토에 속한 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주가 분리·독립을 선언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아르메니아와 전쟁까지 하는 등 영토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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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과거에 존재하였던 코카시안 알바니아라는 고대 국가의 진정한 계승자가 아제르바이잔인지 아르메니아인지를 둘러싼 역사논쟁 역시 양국 간의 갈등에 한몫하고 있다.

이들의 갈등을 알게 된 우리는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말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화해가 가능한가를 물었지만, 그들의 대답은 NO였다.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관점에서 보면 서로 화해하면 쉬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거기에는 영토라는 실제적인 이해관계와 그리고 역사적, 종교적 원한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에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사실은 강대국 또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갈등이 증폭되었을 때 그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은 결국 다수의 힘없는 국민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지나친 민족 감정에 휘둘려 서로를 비난하고, 없애려 들기보다는 양국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최우선해서 해결책을 찾는 민중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한일 관계의 경우 그런 시민사회 단체와 양심적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작지만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경우 그런 해결책을 기대하기란 당분간 어려워보였다.

아제르바이잔 가이드는 말했다.

"우리의 석유는 모든 나라로 갑니다. 단 한 나라만 빼고요. 우리는 모든 나라를 갈 수 있습니다. 단 한 나라만 제외하고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는 코카서스 3국 도시 중 가장 현대화 되었다.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3국 중 가장 부유한 편이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는 코카서스 3국 도시 중 가장 현대화 되었다.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3국 중 가장 부유한 편이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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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가이드는 말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제발 우리를 그냥 살게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멀리 코카서스에서 이들의 분쟁이 극적인 화해를 이룰 수 있기를, 한일 관계 역시 평화적으로 잘 해결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5일~8월 1일 코카서스 3국 여행을 하고 돌아와 여행 당시에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여행기에 담았다.


태그:#아제르바이잔, #아르메이나,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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