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르메니아 공화국 광장, 2018년 4월 이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마침내 '아르메니아 판 벨벳 혁명'을 달성했다.
 아르메니아 공화국 광장, 2018년 4월 이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마침내 "아르메니아 판 벨벳 혁명"을 달성했다.
ⓒ 이선배

관련사진보기

  
그녀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도 그날의 감격이 채 사그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모였어요. 그냥 내 발로 모여서 노래하고, 놀았어요. 특별히 싸우지 않았어요. 그냥 일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을 엄청 불편하게 했어요. 그게 다였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겼어요."

어눌한 한국 말투이지만 그녀는 또박또박 작년 아르메니아 국민들이 거둔 정치적 승리를 한국 여행객들에게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촛불 혁명 있었어요. 우리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내 발로 혁명' 했어요. 피 흘리지 않고 촛불 혁명 이룬 한국 국민들 위대해요. 우리 아르메니아 사람들도 그렇게 했어요. 아르메니아 국민들도 멋져요."

아르메니아 가이드 아르메닌이 설명하려 애썼던 것은 아르메니아 판 '벨벳 혁명'이다.
   
아르메니아 1호 한국어 전공자로 현재 여행 가이드로 아르메니아를 한국에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아르메닌
 아르메니아 1호 한국어 전공자로 현재 여행 가이드로 아르메니아를 한국에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아르메닌
ⓒ 이선배

관련사진보기

    
'벨벳 혁명'의 시초는 1989년 11월 하벨(Václav Havel)이 공산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시민혁명을 이룩한 데서 유래하였다. 벨벳은 형용사로는 '조용한', '평화로운'을 뜻한다. 결국 이때부터 벨벳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룩한 모든 혁명을 비유하는 보통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2003년 자유 광장에 모여 장미혁명을 일으킨 조지아 시민들
 2003년 자유 광장에 모여 장미혁명을 일으킨 조지아 시민들
ⓒ Wikimedia Commons

관련사진보기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코카서스 3국의 일원인 조지아에서도 2003년 1월 3주 동안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그 결과 지난 11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 E.A.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을 몰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M.사카슈빌리를 새로운 지도자로 세운 '조지야의 벨벳혁명'을 성공 시켰다. 특히 '장미의 나라' 조지아에서 일어난 혁명이기에 '장미 혁명'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조지아의 장미 혁명' 이면에는 송유관을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가 벌인 패권 다툼이라는 평가도 있다. 친러 성향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미국의 억만장자 소로스 등이 장미 혁명을 배후 지원해서 친미정권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실제 장미 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지만 부정, 부패는 여전해서 국민들이 혁명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다수를 이룬다.

대한민국 역시 '촛불 혁명'을 통해 더 과감한 개혁을 열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의회 권력의 조직적 반대와 대통령 하나만 바뀌었을 뿐 관료 사회가 꿈쩍하지 않음으로 개혁이 미적거리고 좌초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촛불 혁명을 주도했던 일부는 문재인 정부에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2017년 촛불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으로, 2020년 총선에서 수구세력을 심판함으로 촛불 혁명을 실질적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벨벳 혁명'은 그런 대한민국의 진보 세력들에게 더 의미 있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 아르메니아는 대통령 중임제 국가였다.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은 2008년부터 10년간 대통령을 이미 중임한 상태였다. 3선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자 그는 2015년 내각제 개헌을 단행 대통령 퇴임 후 바로 총리가 되어 실질적인 독재자를 꿈꿨다.

신흥재벌 등 소수의 권력독점에 따른 부패와 빈곤에 그동안 신물이 나있던 아르메니아 국민들은 2018년 4월 21일 세르지 사르키샨 퇴진 시위로 폭발했다. 국민들은 광장에 몰려나와 "한 걸음을 움직이자, 세르쥐를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한 달 여의 투쟁 끝에 5월 8일 마침내 승리하여 새 총리로 니콜 파쉬냔(44세)을 선출했다. 하지만 이것은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왜냐하면 여전히 과거 여당이었던 공화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여 강력한 개혁 정책 추진은 난관에 봉착했다.

그래서 파쉬냔 신임 총리는 12월 조기 총선이라는 강수를 택했고, 그 결과 그 전 집권여당이었던 아르메니아공화당이 0석으로 몰락하여 원외정당으로 추락했다. 반면 벨벳 혁명을 이끌었던 '나의 걸음' 선거연대가 70.4%를 득표해서, 개헌선(2/3)을 넘기며 압승했다.

이 선거를 통해 반쪽짜리 혁명을 마침내 온전한 혁명으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아르메니아 국민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 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선거 결과였다.

현지 가이드 아르메닌의 흥분도 결국은 자신들의 힘으로 뽑은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 그대로 이다. 아마도 촛불혁명을 통해 문재인 정부를 세운 지지자들 중에는 답답한 개혁에 실망감을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반대로 계속되는 개혁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거나, 오히려 진보 세력이 무능하다며 보수로의 회귀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르메니아가 그랬던 것처럼 2020년 4월 총선에서 이전 집권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을 강력히 심판함으로 촛불 혁명 정부에 힘을 실어주어 진정한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은 내년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또한 아르메니아의 새로운 정권은 과연 아르메니아 국민들의 바람대로 개혁을 이뤄 평화와 번영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바람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단지 친서방 정책으로 기조만 바뀌었을 뿐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안중에도 없는 무늬만 혁명에 그칠지 눈을 부릅뜨고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지켜보고,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5일~8월 1일 코카서스 3국 여행을 하고 돌아와 여행 당시에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여행기에 담았다.


태그:#아르메니아, #벨벳혁명, #촛불혁명, #조지아, #장미혁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계시민 모두가 빈곤과 전쟁의 공포는 없고 기본소득과 평화는 보장되는 세상을 꿈꾸는 대전시민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