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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가지라도 재능이 없는 아이는 없다고들 한다. 그 말에 따르면 나는 참으로 암담한 어린이였다. 미술 선생님은 늘 내 혼신의 역작에 '참 잘했어요'가 아닌 '열심히 했구나'라는 피드백을 주셨고, 음악은 악보를 잘 못 읽어 실패했다. 수나 우는 없고 미·양·가 일색이던 내 성적표가 그 증거다.

그래도 전직 육상선수였던 엄마는 좌절하지 않았다. '날 닮았으면 체육은 잘하겠지.' 그런데 웬걸, 나는 100미터 달리기를 시키면 헐떡헐떡 뛰다가 80미터쯤부터 걸어서 들어오는 아이였다. 순발력과 지구력이 공평하게 부족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게으름이 어려서부터 발현된 참으로 일관적인 삶이라고 볼 수 있는데, 움직이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니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책 보기가 유일한 취미였다.

처음에는 글자가 읽히는 게 재미있어서 보다가 어느새 책 자체에 빠졌다. 마치 책 요정이라도 만난 것처럼. 매일 나태하게 누워있기만 하던 딸이 옆에 책이라도 놓으니 엄마는 안심하셨던 것 같다. 엄마는 다 저녁때 지친 얼굴로 퇴근해서 방문을 열고는 내가 엎드려 책을 읽고 있으면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주고 다른 할 일을 했다. 하지만 내가 야한 소설을 읽고 있는 걸 아셨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
 
잘하는 것 하나 없던 아이에게 책이란
 잘하는 것 하나 없던 아이에게 책이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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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삐삐', '큰 도둑 호첸플로츠'에서 시작된 탐독은 만화를 거쳐 성인소설까지 날개를 달고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 특히 잔잔하게 성애가 표현된 이외수 소설가 류의 책을 읽을 때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은, 고차원적인 묘사였지만 미지의 세계를 방문한 탐험가의 기분으로 빠르게 독파했다. 물론 주변에 어른이 없을 때에 한해서.

그렇게 종류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읽다 보니 성경과 전화번호부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집에는 읽을 책이 없었다. 애시당초 책이 많은 집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수중에 푼돈이 생기면 만화방에 가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보는 것으로 죄다 탕진하며 살고 있었다. 책을 살 돈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발걸음 하기 시작했다. 학교 도서실이 아닌 '공공 도서관'이라는 천국을 발견하고는 유레카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에,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다 책이라니! 

그때부터는 읽고 싶은 책만 읽을 수 있었다. 그러자 조금씩 '취향'이 자라났다. 책들은 언제나 도서관에서 날 기다렸다. 서가에 가지런히 놓인 수만 가지의 세상을 내가 선택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한 권의 책을 선택하면 하나의 세계가 펼쳐졌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난 뒤의 세상은 읽기 전과 절대로 같지 않았다. 
 
학원 가고 떡볶이도 먹고 슬라임도 만들어야 하는 한국 초등학생이 세계에서 제일 바쁘다는 게 학계의 정설
 학원 가고 떡볶이도 먹고 슬라임도 만들어야 하는 한국 초등학생이 세계에서 제일 바쁘다는 게 학계의 정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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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것 외에도 책과 가까워진 데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초등학생 시절 1-2년에 한 번씩 전학을 해야 했는데, 그렇다 보니 진득하게 마음 붙일 친구가 없었다. 내게 가장 오래 사귄, 변함없는 존재는 책이었다. 물론 전학 가던 날, 친구들과 훌쩍이며 편지 주고받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긴 했다. 하지만 사라진 존재를 추억하기에 초등학생은 살 날이 너무 많다. 컵떡볶이도 사 먹어야 하고, '에쵸티' 오빠들 무대도 녹화해야 한다. 하여간 너무 바쁜 것이다. 

다년간의 전학 생활을 통해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쓸쓸한 일이었다. 예전 학교 친구들의 편지가 뜸해질 무렵이면 나는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는 현대 한국 소설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은은하게 야한 대목을 찾아내서 읽고는 했다. 아니면 외국 소설 서가로 넘어가 심사숙고해 책을 고른 뒤 이국적인 음식을 묘사한 부분을 읽는 것도 좋아했다. (먹을 것 아니면 야한 것이라니... 나는 정말 어릴 적 그대로 자랐다)

예를 들면 외국 소설 서가에 꽂혀있던 책 중에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소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호라 박사가 지쳐있던 모모를 작은 테이블로 안내하는데 그곳에는 황금빛 버터와 액체의 황금처럼 보이는 꿀, 그리고 노릇하게 구운 바삭바삭한 빵이 놓여있다. 모모가 빵을 버터와 꿀에 곁들여 먹고, 또 따끈한 초콜릿을 따라 마시는 모습을 읽으면 포근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심심할 때도, 우울할 때도 지근거리에 책이 있었다. 자꾸 읽다 보니 쓰고 싶어졌다. 그 욕구는 일기나 친구에게 주는 편지, 그것도 아니면 낙서로 풀었다. 그러다 비로소 '제대로' 풀 기회가 찾아왔다. 학교 근처 공원에 '백일장 및 미술대회'가 열린 것이다. 미술도구를 준비하기조차 귀찮은 마음과 뭐라도 끄적여보고 싶다는 열망이 합쳐져 나는 백일장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해, 개근상조차 받은 적 없는 딸이 백일장으로 상을 타오자 내 어머니는 깊이 안도했다. '얘가 잘하는 게 그래도 있긴 있구나!'

물론 세상 모든 일에는 변수가 존재하는 법. 그나마 책을 읽다 미약한 글쓰기 재능을 발견한 아이는 글로 밥 벌어먹고 살기를 소원하다가 갑을병정 중 '정'의 포지션을 자임했다. 방송 집필 프리랜서로 바람 불면 흩날려 없어질 민들레 홀씨 같은 급여를 받다가 그마저도 지금은 홀홀 날아간 상태다. 
 
이탈리아 밀라노 에어비앤비 숙소. 서가에 반해 숙박을 결정했다. 책은 원서라서 마음의 눈으로 읽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에어비앤비 숙소. 서가에 반해 숙박을 결정했다. 책은 원서라서 마음의 눈으로 읽었다.
ⓒ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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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책조차 읽지 않았다면 엄마는 그 어떤 상장도 받아볼 수 없었을 것이며, 아마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아이였을 것이다. 곰손에, 느림보에, 눈에 띄는 게 도무지 없는 아이도 읽는 건 할 수 있다. 독서는 공평하다. 재능 대신 재미만 존재하는 자애로운 세계다. 책 읽다 운 좋게 알게 되는 넓고 얕은 상식은 덤이다. 

독서로 얻을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취향'이다. 음식 묘사를 마르고 닳도록 읽는 사람이라면 식도락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한비야의 세계여행 시리즈를 읽으며 배낭을 꾸리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다면 여행을 즐기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전부 내 얘기다. 이렇게 책은 스스로를 깊이 알아가는 데 몹시 유용하다. 

누가 보면 책 아주 사랑하는 사람처럼 써놨지만 사실 요즘은 어릴 적처럼 스펀지같이 책이 읽히지 않는다. 세상은 너무 빨라졌고 다채로운 유흥이 지천에 가득하다. 휴대전화가 늘 손에 있고 술 마실 일은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잡는다. 그렇게 내 세계에서 책은 점점 후순위로 밀려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도 써보았다. 나처럼 둔재일수록 책 옆에 있어야 한다. 그리스 신화도 좋고 깔깔 유머집도 좋다. 책은 자가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책은 둔재로 살아도 괜찮다는 평정심을 주기도 한다. 열흘에 열 페이지만 읽었다고 해도 손해 보지 않는 장사다. 마침 내 휴대전화 문자함에 도서관 도서 반납 기한 알림 메시지가 와있어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내일은 새 마음 새뜻으로 남은 페이지를 마저 읽고 꼭 반납해야겠다. 아, 그전에 하던 게임 끝판만 깨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relaxed)에도 실립니다.


태그:#독서, #책, #둔재,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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