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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희전문학교시절 두 분의 모습, 중국 용정에서 태어난 윤동주와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정병욱은 연희전문학교 선후배로 만나 절친한 글벗이 되었다. 두 분의 아름답고 끈끈한 우정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빛을 불어넣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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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힐 듯한 폭염에 발이 묶여버린 날. 컴퓨터에 저장해둔 영화 <동주>를 보았다. 영화는 수의를 입은 창백한 얼굴의 동주 앞에서 일제 고등형사가 윽박지르는 장면으로 시작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손바닥만 한 옥창 밖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촘촘하다. 윤동주를 연기한 배우 강하늘이 담백한 목소리로 '별 헤는 밤'을 읊조린다. 흑백의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 '동주'는 담담하고 잔잔하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한편의 서정시를 읽는 것 같았다.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점점 피폐해지는 동주. 결국 동주는 광복 6개월을 앞두고 차디찬 감옥에서 고통스럽게 스러져간다. 영화가 끝난 후 눈물이 톡 떨어졌다. 3년 전 개봉하는 날 달려가서 보았던 때의 아픈 마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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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욱생가의 모습. 1925년에 지어진 목조주택으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하는 점포형 주택이다. 2007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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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비를 뿌리고 간 다음 날, 광양 망덕포구를 찾았다. 강변 큰 길가에는 동주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2년 후배이며 글을 통해 절친한 벗이 된 정병욱의 생가가 있다. 윤동주는 자필로 쓴 원고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을 붙여 출간하려 하였으나 일제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중 한 부를 아끼는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다. 그 후 동주는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옥사하였고 정병욱은 전쟁에 끌려나가며 어머니께 원고를 숨겨달라고 부탁하였다. 노모는 마루를 뜯고 그 아래에 동주의 원고를 숨겨놓았다.
해방되자 노모는 몰래 숨겨놓았던 원고를 꺼내놓았고 연희전문 문과 동기생이었던 강처중이 힘을 보태면서 동주의 유고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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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욱선생의 노모가 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육필원고를 숨겨 놓았던 곳. 마루 색깔이 다른 쪽이 뜯어 내었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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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는 1925년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로 요즘은 보기 힘든 점포주택이다. 윤동주와 정병욱의 우정을 기려 2007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병욱의 노모가 뜯었던 마루는 다시 막아놓았다. 전시된 동주의 육필원고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동주가 일본 유학 시절에 쓴 '쉽게 씌어진 시'가 떠오른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조국의 독립도 보지 못하고 옥중에서 요절했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동주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꽉 막혀온다.
길을 건너 강가로 나갔다.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섬진강은 말없이 흐른다.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손을 맞잡고 활짝 웃으며 걸어오는 게 보인다. 문득 그들의 모습 위로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동주가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이여진, 그녀는 동주와 함께 문예활동을 하던 이화여전 학생이었다. 새까만 밤하늘에는 별들이 물방울처럼 흐르고 동주와 여진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는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마음이 더 표현되지 않았지만 동주를 포함하여 그 시대를 살아가던 청춘들도 설레는 사랑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젊은 연인은 생가를 그냥 지나쳐간다. 저들은 지금 자신의 자유롭고 예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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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덕포구 무접섬일대에 조성해놓은 윤동주 시비공원.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31편 중 별헤는 밤을 제외한 30편의 시를 시비로 제작하여 설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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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질곡의 역사 속에서 고작 28년을 살다간 청년 시인의 슬픔과 고통이 더욱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