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부의 미온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저항하는 의미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시위를 촉발한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14일(현지시각)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는 항해를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다음달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이번 여정은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길이 18m 크기의 작은 요트에서 2주간 이뤄진다. 비행기나 유람선 대신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여행 방식을 고민하던 툰베리는 바람으로 동력을 얻고 태양광 발전으로 전력을 갖춘 이 요트를 타기로 결심했다.

뉴욕 기후 정상회담 이후 툰베리는 12월 산티아고 기후변화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지난해 8월부터 매주 금요일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인 1인 시위는 지난 8월 2일 50번째 시위를 마지막으로 잠시 중단하고, 세계를 돌며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 셈이다.

요트를 이용한 대서양 횡단이라는 위험과 불편함을 무릅쓰고 툰베리가 국제 기후회의장에 가려는 까닭은 뭘까. 그는 기후가 빠르게 붕괴하는 상황에서 정치가 과학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고 호소한다. 항해에 앞서 툰베리는 "현재 당면한 기후와 생태적 위기에 대한 각국 지도자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청소년 수백만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조만간 뉴욕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릴 기후 회의에서 이런 요구에 정부가 어떻게 응답할지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4일 영국 플리머스를 출항한 첫날 그레타 툰베리가 자신을 태운 말리지아2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그레타 툰베리 페이스북)
▲ 친환경 요트로 대서양 횡단 시작한 그레타 툰베리 뉴욕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4일 영국 플리머스를 출항한 첫날 그레타 툰베리가 자신을 태운 말리지아2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그레타 툰베리 페이스북)
ⓒ Greta Thunberg

관련사진보기

 
기후변화 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를 1.5도 이하로 안정화시키려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늦어도 2020년부터는 가파른 감소세를 나타내야 한다고 경고했다. 툰베리는 "우리가 바꿀 기회가 아직 우리 손 안에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 기회의 문은 빠르게 닫히고 있다"며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변화를 강조했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아직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고, 각국이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더라도, 3도 이상의 지구온난화가 일어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툰베리 일행이 탄 요트의 돛에는 다음달 유엔 기후 정상회의의 테마인 "우리가 이겨야 할 경주(A race we must win)" 그리고 지난 7월 프랑스 의회에서 한 연설 제목이기도 한 "과학으로 단결하자(Unite behind the science)"는 슬로건이 눈에 띈다.

인류와 생태계 생존의 안전망 역할을 하던 기후가 급격한 온실가스 배출 증가로 인해 생물 대멸종이란 비상 사태로 내몰리고 있다고 과학계는 경고해왔다. 폭염, 태풍, 홍수, 가뭄과 같이 이미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는 극단 기후는 지구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도 상승한 결과다. 

문제는 최근 5년(2014~2018년)간 지구 평균온도가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된 것처럼 지구온난화는 점차 가속화된다는 데 있다. 과학계는 지구온도가 2도까지 상승하면 산호초가 99% 멸종하고 심각한 폭염에 노출되는 인구 수는 1.5도까지의 지구온도 상승에 비해 2.6배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 위기가 생존이 걸린 존재론적 문제로 대두된 상황에서 '멸종저항' 운동이 강렬히 벌어지는 영국 등 4개국과 올 여름 43도 수준의 폭염에 시달린 프랑스 파리를 비롯한 700여 개 넘는 지자체에서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기후변화가 문자 그대로 비상사태라면, 대책도 기존의 일상 대응이 아닌 국가적 차원의 비상 대응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변화와 행동을 늦추다간, 고통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를 과감히 감축하고 일자리와 산업의 대대적 구조 변화에 착수해야 한다. 이런 전환의 기획과 실행은 정부에 의한 대규모 공적 투자 방식이 아니면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는 기후 위기에 너무 조용하다. 한국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7위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국가다. 에너지와 곡물 자급률이 각각 6%와 23%에 불과한, 에너지와 식량 안보 취약국이기도 하다.

한국의 보수적 교육환경 속에서도 청소년들의 기후 등교거부 시위가 3월과 5월 열렸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더 많은 우리의 미래를 가지고 도박을 하지 말아달라"며 메시지를 사회에 제기했지만, 국내 책임있는 정치인 중 누구도 이러한 청소년의 목소리에 진정성 있게 응답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 했다.

강고하게 고착된 이해구조가 이러한 '기후 침묵'을 강요하는 것일까. 미세먼지가 '재난'이라면서 2조 원의 추경을 편성했지만, 화석연료 보조금과 세금 할인을 위해 3조 원 이상의 예산을 계속 쏟고 있다. 우리 세금은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데 쓰이고 기후 침묵의 정치가 우리를 더욱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내년까지 각국이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협정의 이행계획을 제출할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달 23일 기후 정상회담을 주재하는 안토니오 게테레스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은 기후 안정화를 위해 각국 지도자들에게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2050년까지는 순 제로(o)로 감축하는 계획의 수립을 호소해왔다.

한국의 경우, 석탄발전과 내연기관차의 증가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계속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t을 넘겨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이명박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2020년 목표(5억4천만t) 달성이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는 의미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 성장주의에 포섭된 나머지 2030년, 2050년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청소년들이 금요일 기후 파업을 시작한 데 이어 어른들도 동참하겠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다음달 기후 정상회의를 맞아 20일부터 27일까지 사상 최대 규모의 글로벌 기후 파업이 열린다.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달라고 정부와 지도자들에게 얌전히 요구하는 방식으론 진정한 변화를 만들 수 없는 법이다.

한국에서도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다음달 21일, 청소년 주도의 기후 파업이 27일 예고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달 기후 정상회의에 참석할까. 만약 문 대통령이 툰베리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태그:#툰베리, #기후변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