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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지난 1월 23일 오후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목포 원도심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지난 1월 23일 오후 전남 목포 역사문화거리 박물관 건립 희망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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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 벽두부터 온갖 방송과 신문 매체에는 손혜원 의원과 그 지인들이 목포 만호동 일대의 근현대 건물매입을 한 것을 두고 국회의원의 부동산 투기인지, 쇠퇴된 지역 활성화인지를 놓고 연신 공방이 이어졌다.

보수 성향의 논객들은 손 의원의 부동산 매입이 추후 시세차익을 노린 전형적인 투기임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어김없이 서울의 경리단길, 익선동 등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만호동 일대의 부동산 가격만 공중부양 시켜놓고 말 것이라 결론 내렸다.

이로 인해 목포 구도심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예측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고, 그에 대한 결과는 공간 활성화 > 임대료 상승 > 지가 상승 > 원주민 둥지내몰림으로 귀결된다는 설명을 한결같이 덧붙였다.

한 국회의원의 원도심 부동산 투자가 촉발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이 현상에 대한 근원적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젠트리파이어의 등장

한국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반이다. 많은 이들에게 젠트리피케이션은 노후한 건물의 소유주가 바뀌면서 대자본이나 프랜차이즈가 유입되고, 이 과정에서 기존 세입자가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과거 젊은 예술인들의 활동 거점이었던 홍대 인근이나 개성 있는 소상공인들이 활력을 더했던 경리단길 등에 대기업들이 유입되면서 임대 세입자들은 폭등하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역을 이탈하게 되는 현상이 사회 문제로 알려지면서부터다.

구도심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사회 병리로 함께 등장하는 대명사가 젠트리피케이션이 되었지만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일부 부작용일 뿐 그 현상의 본질은 아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로 토지의 고효율적 이용에 대한 압력이 높은 대도시에서 발생해 왔는데, 그 용어는 1964년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    
 
1964년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가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 [London, Aspects of Change, 1964] 표지 1964년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가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 MACGIBBON & K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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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에 탄생한 영국의 신흥 중산계급층들은 런던 중심부의 낡은 노동계급지구로 이주를 시작했다. 그들은 그와 동시에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시기의 빅토리안(Victorian) 스타일의 건축물을 복원해 자신들이 들어가 살 집을 새단장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로 음침하고 스산했으며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쇠락한 구도심의 활성화가 뒤따라왔다. 글라스(R. Glass)는 이렇게 쇠퇴 지역에 들어가 낡은 건축물을 직접 개조·수리하여 이주하면서 기존의 노동계급을 대체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명명했다. (박태원 등, 2016)   이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는 신흥 중산계급층은 젠트리파이어(Gentryfier)로 정의됐는데 이는 과거 젠트리(Gentry) 계급에서 파생된 영국의 신흥 지주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쇠퇴한 구도심을 개성과 특색이 살아있는 문화적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활기를 잃었던 주택가와 시가지를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젠틀맨이란 향신(鄕紳)이라 번역되기도 한다. 본래는 '가문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넓은 의미로는 귀족을 포함한 좋은 가문의 사람들을 지칭해서 쓰이나, 보통은 신분적으로 귀족 아래이고, 요우먼(yeoman)의 윗계층으로서 가문의 문장(紋章) 사용이 허용된 사람들을 지칭한다. 또, 본래의 지주가 그 중심을 이루었으나, 도시인이나 그 밖의 사람으로서 토지를 매입해서 지주가 된 사람도 포함하였다.

중세 말기에서 근세에 걸쳐 귀족이나 요우먼의 세력이 쇠퇴하여 간 데 반해 이 계층만은 지방의 유력자로서 순탄하게 신장(伸張)되어 절대주의시대에 이르러서는 치안판사 및 그 밖의 사회적 지위를 맡아서 활약하여 사회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협의(狹義)의 계층적인 개념은 엷어지고 젠틀맨은 교양 있고 예의 바른 남성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50년간 젠트리피케이션은 과거와 달리 주택 분야, 즉 오래된 주택의 개조에서부터 철거, 재건축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었고, 또한 젠트리파이어 역시 신흥 중산계급 출신의 개인부터 예술가, 소상공인, 지방정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갖게 되면서 그 양상이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젠트리케이션의 정의
▷ 저지대 빈민 지역이 고소득 신생 계층에 의해 대체되는 현상을 일컫는 재활성화(Revitalization)의 한 유형으로 정의할 수 있음 _ 최병현, 2015

▷ 젠트리피케이션은 중산층 가족들이 도시 내부의 낙후된 지역으로 유입함으로써 기존의 시설이나 주택 등이 개선되고 주거환경의 재개발이 이뤄지며, 이로 인해 지대가 상승하여 기존에 거주하던 도시노동자와 빈민계층이 임대료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가는 일련의 현상을 지칭 _ 진창종, 2013

▷ 저소득가구에 의해 점유된 근린이 고소득 가구의 복귀를 통해 재활성화나 재투자가 이루어지는 과정 _ 미국 주택 및 도시개발국, 1979

▷ 젠트리피케이션이 부동산 가치의 증가를 일으키며 빈민을 축출하는 2차적 효과를 가지고 있는 중산층 가구의 도시로의 이동 _ Oxford American, 1980

▷ 중·상류 계층에 의하여 쇠퇴한 도시의 부동산, 특히 노동자 계층의 근린을 복구하는 것 _ American Heritage, 1982

▷ 미국과 영국 등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 도심에 위치한 노동자계급 주거지에 중간계층이 자발적으로 들어가 자기주택을 스스로 개량하여 기존의 환경을 일신하는 동시에 그 여파로 인해 관련 지역의 원주거자가 이주(Displacement)되기에 이르는 과정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 _ Glen Harrison, 1983

▷ 물리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동시적 현상이며, 과거 노동자 계층의 근린이나 다인종이었던 곳으로 중산층이나 고소득 집단이 침입하는 것. 많은 점유자의 주거나 대체나 이주를 의미함. 매우 노후한 주거 재고를 물리적으로 혁신하거나 재수복하는 것 _ Hamnett, 1984

[자료 : 박재은, 「문화주도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분석을 통한 도시재생정책 연구:홍대앞 문화예술생태계를 중심으로」, 2015]
 
 
창조계급의 등장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해서 최근 주목할 만한 것은 1990년대 이후, 경제적·문화적 글로벌리제이션의 결과 전 세계 주요도시들이 신성장동력에 기반을 둔 도시경쟁력을 확보하고 새로운 도시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역점을 두기 시작한 흐름이다. 그 과정에서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의 '도시의 경쟁력이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창조계급을 양산하고 유치하는 것으로써 확보된다(2008)'는 주장이 전세계를 관통했다.

플로리다(R. Florida)는 도시에 있어 창조계급의 역할에 주목하여, 기술, 인재, 관용의 3T모델을 제시하였다. 도시구조는 지식경제에서 창조경제로 이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창조경제를 이끄는 계층을 '창조계급'이라고 언급하였다. 창조계급은 그들의 작업을 창조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분위기의 도시에서 일하기를 원하며 이를 충족시키는 도시는 창조적 중심지가 된다. 이렇게 창조계급의 선택과 유입으로 인해 도시의 경제는 성장하기 때문에 도시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창조적 인력들의 유입을 촉진시켜야한다는 것이 이론의 핵심이다.
 
창조 산업의 분류
1. 문화자산 
 1) 문화적 장소 : 고대유적, 도서관, 전시회 등

2. 예술
 1) 시각예술 : 그림, 조각, 사진 등
 2) 행위예술 : 라이브음악, 연극, 오페라, 댄스, 서커스 등

3. 미디어
 1) 출판 및 인쇄 : 책, 신문, 잡지 등
 2) 오디오 비주얼 : 영화, TV, 라디오방송 등

4. 실용적 창조
 1) 디자인 : 인테리어, 그래픽, 패션, 보석, 장난감 등
 2) 뉴미디어 : 소프트웨어, 비디오게임, 디지털콘텐츠 등
 3) 창조서비스 : 건축, 광고, R&D, 문화, 레크리에이션 등

5. ICT 창조 기반
 1) 통신서비스 : IT 유통 플랫폼 서비스, 통신 등
 2) 디바이스 : 유무선 디바이스(핸드폰, TV, PC) 등

[ 자료 : 국토연구원, 2014 ]
   

도시경쟁력 강화를 위한 창조도시 전략은 한국 사회에서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안착하여 이후 창조계급에 대한 재발견과 육성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급속히 이뤄졌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컬처노믹스가 등장하여 문화와 경제가 결합하여 저성장 국면을 돌파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지난 박근혜 정부(2013~2017)는 창조경제의 실현을 국정 드라이브의 엔진으로 삼으면서 창조도시 건설이 지자체의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후, 정권이 교체되고 입에 올리는 것이 금기가 된 듯한 용어가 창조경제가 된 상황에서 관련된 주요 정책들이 상당 부분 폐기되었다. 그러나 저성장 국면에서 별다른 대안이 나타나지 않고, 또한 이미 민간의 영역에서 창조계급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 등에 힘입어 창조도시로의 도시 진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기존에 대자본과 잘 편재된 중앙 조직 중심의 산업 체계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지역 분권과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지닌 신흥계급층으로의 권력이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변환과 함께 젠트리피케이션은 인적 자원, 즉 창조계급의 확산과 함께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창조계급의 특성은 기존에 젠트리파이어들이 가지고 있었던 특성들 즉,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라이프 스타일에 관대한 이들의 면모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최근의 젠트리파이어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동산 비용을 지불할 수 있으면서 자신들의 창조적인 활동과 사업 확장에 유리한 곳이라면 선도적으로 진입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도시 외곽 개발에 따르는 원도심 공동화 현상이라는 도시의 구조 변화 속에서 주로 구도심을 중심으로 외연을 확장해간다. 이와 더불어 쇠퇴된 원도심의 활성화가 수반되는 것은 물론이다.

(2부에서 계속)

태그:#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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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이자, 지구인으로서 잘 사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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