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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전남 영광의 법성포다. 조기를 말려 굴비로 만드는 곳은 전 세계에서 오직 대한민국뿐이고 최고의 굴비를 만들어 내는 곳! 역시 영광군(靈光郡)이 유일하다.

법성포에는 대대손손(代代孫孫) 전통 보리굴비 만들기를 가업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110년 동안 삼대가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지금껏 보리굴비를 만들고 있는 정용진(44) 오늘의 바다 대표가 그 중 한 사람이다.

법성포 진굴비길에 위치한 굴비 덕장을 작년 가을부터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오가며 조기가 보리굴비로 재탄생 되는 과정을 담았다. 귀한 보리굴비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1년이라는 장고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인내의 시간동안 법성포 '오늘의 바다'를 운영하고 있는 정씨의 작업복에는 구수한 고향 같은 굴비 향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2대 (좌)정성인翁, 3대 (우)정용진 씨가 보리굴비 작업을 마치고 잠시 집 앞 바닷가에서 쉬고 있다.
▲ 두 부자(父子) 2대 (좌)정성인翁, 3대 (우)정용진 씨가 보리굴비 작업을 마치고 잠시 집 앞 바닷가에서 쉬고 있다.
ⓒ 진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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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이어 받은 젊은 장인(匠人)의 고민

제1대 정봉수(1907~1970), 제2대 정성인(1970~2002), 제3대 정용진(2002~)씨로 이어지는 110년의 시간. 정용진(44)씨는 처음부터 가업을 이어가겠다는 말을 선뜻 하지 못했다고 한다.

"저희 집안은 평생 동안 굴비만 만들어 왔지만 저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지요. 도시 생활자로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도전해봤지만 실패의 연속이었지요. 그러는 가운데 마음 한구석에는 늘 굴비가 자리하고 있었죠. 그리고 다시 내 고향 법성포 칠산 앞바다로 돌아왔지요. 내 인생 목숨 걸고 하고 싶은 일은 오직 '굴비'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요."

정씨는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굴비 가업에 뛰어들면서 명절 때 먹는 특별한 생선이라는 편견을 과감히 없애고 평상시에도 영양만점의 굴비를 가정의 식탁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직접 보리굴비를 쌀뜨물에 담가 하루정도 숙성시킨 다음 찜솥에 쪄 진공 포장 후, 각 가정에 전자레인지나 오븐렌지로 2분정도 데워 바로 먹을 수 있다는 편리성에서 불편한 굴비 손질을 꺼리는 주부들의 고민을 한 번에 해결했다는 점이 인정되어 2016년 6월 '부세굴비의 제조방법'에 대해 특허출원을 획득하면서 '젊은 장인(匠人) 정용진' 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좌)부세 굴비의 제조방법 특허출원을 받은 특허증과 (우)전통방식으로 굴비를 엮고 있는 노부부(정용진 씨 부모)
▲ 특허증과 보리굴비 엮는 작업 (좌)부세 굴비의 제조방법 특허출원을 받은 특허증과 (우)전통방식으로 굴비를 엮고 있는 노부부(정용진 씨 부모)
ⓒ 진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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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굴비는 특별하다

작년 겨울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오늘의 바다'를 찾은 시기는 지난 8월초다. 1년의 기다림 속에서 태어나는 보리굴비의 과정을 한 번 더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보리굴비가 탄생하기까지는 1년 동안 조기수매, 선별·염장·엮음, 자연해풍 건조, 누름 작업, 보리와 굴비 숙성, 전통방식 엮기, 함 상자 포장에 이르기까지 계절별 총 7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1년의 기다림’ 속에서 견뎌낸 귀한 보리굴비만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다.
▲ 보리굴비 7단계 제조과정 도표 ‘1년의 기다림’ 속에서 견뎌낸 귀한 보리굴비만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다.
ⓒ 진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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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조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시기는 10월~12월 사이로 정씨는 이 시기에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새벽 수협공판장에서 질 좋은 조기를 매입해 냉동 보관에 들어간다. 12월이 되면 귀 소금으로 염장을 하고 조기 엮음 작업이 시작된다. '귀 소금'은 숙성된 천일염의 일종으로 조기 어체와 아가미에 자연스럽게 간이 배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사용한다.

이듬해 2월까지 하늬바람을 쏘이며 자연해풍 건조작업이 이뤄지며, 3월이 되면 1주일 간격으로 2회 조기 누름작업을 거치게 된다. 보리굴비의 하이라이트인 숙성과정은 친환경 보리를 항아리 속에 넣고 3월~7월까지 4개월 동안 계속된다. 숙성이 끝난 보리굴비를 친환경 끈으로 엮는 작업이 8월 한 달 동안 이뤄진다.

그리고 추석을 앞두고 8월 말부터 세상 밖으로 보리굴비가 출하된다. 이 모든 과정이 '1년의 기다림'속에서 인내와 정성 가득한 보리굴비가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영광(靈光)의 보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정용진 씨가 항아리 속에 친환경 통보리와 굴비를 넣고 숙성 작업을 하고 있다.
▲ 보리굴비 숙성 단계 정용진 씨가 항아리 속에 친환경 통보리와 굴비를 넣고 숙성 작업을 하고 있다.
ⓒ 진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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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정용진씨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정판으로 명품 보리굴비를 광주지역 일부 백화점과 입점계약을 맺고 8월말 납품을 맞추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늘 꾸준히 해왔던 보리굴비의 제조과정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상품을 상품답게 포장하는 부분에서 문외하다 보니 신경을 두 배로 써야했다고 한다.

그 중 "보리굴비의 브랜드 명을 어떻게 갈 것인가?"라는 점에서 숨이 턱! 막혔다고 한다. 단순한 컴퓨터 글씨와 굴비는 맞지 않다는 것을 정씨 자신도 알고 있었던 터라 고민의 속도는 초조함으로 다가 왔고, 다행히 자문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지인으로부터 서울에서 활동하다 진도로 귀향한 유명 캘리그래피 작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글씨를 의뢰했고 극적으로 마음에 드는 브랜드 명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일단 소비자들은 내용물을 열어보기 전에 반드시 포장되어 있는 디자인을 보게 되죠. 1차적으로 잘 정돈된 겉모습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1년의 기다림 속에 내놓은 보리굴비는 영원히 사장된다고 봐야겠죠. 그래서 조금은 무리가 되더라도 패키지 디자인이 되었던, 브랜드 글씨가 되었던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쓰기로 했죠."
 
S백화점으로 납품되는 법성포 (주)오늘의 바다 ‘보리굴비’는 캘리그래피 석산 진성영 작가의 서체로 쓰여 졌다.
 S백화점으로 납품되는 법성포 (주)오늘의 바다 ‘보리굴비’는 캘리그래피 석산 진성영 작가의 서체로 쓰여 졌다.
ⓒ 진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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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오늘도 칠산 앞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깊어가는 그의 야무진 포부만큼이나 스토리가 있는 보리굴비를 만들겠다는 그의 담대함은 110년의 가업뿐 만아니라 굴비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기 있는 굴비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보리굴비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삼각 김밥이나 도시락처럼 굴비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태그:#오늘의바다, #법성포보리굴비, #젊은장인정용진 , #110년전통보리굴비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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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 조도(鳥島)출생 前초당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졸업 現노무현 재단 문화예술특별위원 現칼럼니스트 現브런치 작가 現대한민국 캘리그래피 명장 現캘리그래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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