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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입국청소년을 위한 한국어교재를 만든 안양외고 허재면 교사와 학생들
 중도입국청소년을 위한 한국어교재를 만든 안양외고 허재면 교사와 학생들
ⓒ 송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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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입국 청소년'들은 한국어 공부가 거의 안 된 상태에서 입국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기초적인 한국어조차 구사하지 못해 초기 한국 생활에서 좌절감을 맛보기 쉽다. 이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고등학생들이 집필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는 중도 입국 청소년에게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안양외국어고등학교(교장 이윤수) 허재면 국어 교사와 10명의 학생들은 최근 <청소년을 위한 한국어 나들이>(Korean Language Picnic for Youth) 교재를 발표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해 영어권 청소년들이 사용하기 쉽게 만든 이 교재는 중도 입국 청소년들의 한국어 공부를 위해 같은 또래 내국인 청소년들이 나섰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 결과는 놀랍다. 다른 한국어 교재들은 담고 있지 않은 또래 청소년들의 문화와 언어가 담긴 것이다. 지난 8월 20일 안양외고에서 허 교사와 9명의 학생들을 만났다.

"같은 학생의 시선에서 만들었다는데 큰 의미"
 
중도입국청소년을 위한 한국어교재를 만든 안양외고 학생들
 중도입국청소년을 위한 한국어교재를 만든 안양외고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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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이 교재를 만들게 됐나?
허재면(교사)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중도 입국 청소년들에게 한국어는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들이 언어라는 장벽을 허물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 10명과 방과후학교에서 이 교재 만들기를 시작해 약 2년이 걸렸다. 개인적으로 서울 이태원 등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됐다."

문보경(고3) "세계적으로 BTS 등 한류붐이 일면서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국문화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어교재 만들기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으로 다가왔다. 중도 입국 청소년들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당장 한국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어 공부가 더 절실할 것이다. 선생님의 제안에 흔쾌히 참여했다."

- 이 한국어 교재의 특징이 있다면?
이지선(고3) "같은 학생들의 시선에서 만들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교재에서 사용하는 단어와 회화 등이 주로 학교에서 사용하는 단어들로 꾸며졌다.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부분도 학생들의 학교 문화를 중심으로 했다. 나선형 학습을 유도해 앞에서 나온 단어가 뒤에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또한 교재의 캐릭터 등을 학생들이 직접 그리고 만든 것도 큰 특징이라 하겠다."

정말 '한국어 나들이' 교재는 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학교문화를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이 교재 '한국의 공부문화'에서는 야자(야간자율학습)와 학원, 스터디카페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학생들은 야자를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지 않고 10시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고 스터디 카페는 '사람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 학생들뿐 아니라 직장인들도 이곳에서 영어를 공부하곤 한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특별한 장소들'에는 코인노래방, PC방, 애견카페, 찜질방을 소개해 주로 청소년들이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소를 소개했다. 중도 입국 청소년들이 한국문화를 엿볼 수 있는 교재다.

- 고3 학생들이 많은데 시간과 노력을 어떻게 투자했는지 궁금하다.
이재영(고3) "고3이기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시험 기간에는 당연히 공부만 했다. 대체로 인터넷에 자료를 올려놓고 파트별로 나눠서 각자 작업한 것을 따로 올리고 합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후 같이 모여서 검토했다. 번역작업과 검토, 수정 등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고 학교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을 활용했다. 집에서도 했다."

- 내국인이 보는 한국어와 외국인이 보는 한국어는 어떻게 다른가?
박찬영(고3) "우리가 외국어를 공부할 때 주로 문법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세밀하게 바라보게 된다. 한국어는 자음과 모음 등 구체적으로 많은 문법적 요소가 있다. 외국인은 문법요소를 하나하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려는 노력을 하지만 내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또래 아이들이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무척 뿌듯" 
 
안양외고 학생들이 만든 한국어교재의 한 페이지. 직접 그림을 그리고 설명을 붙였다.
 안양외고 학생들이 만든 한국어교재의 한 페이지. 직접 그림을 그리고 설명을 붙였다.
ⓒ 송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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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재를 만들면서 힘들었던 점은?
김가연(고3) "문법적으로 다른 점을 고려해 가며 만드는 것이 힘들었다. 문화적으로 다른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존댓말과 반말 등은 외국어 언어권에 없는 개념이다. 이를 설명하는 것이 힘들었다."

영어 버전으로 먼저 발표된 <청소년을 위한 한국어 나들이> 교재는 현재 중국어 버전 번역이 완료됐고 필리핀어와 일본어는 번역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일은 역시 각 언어권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에 왔거나 혹은 해당 학과에 재학 중인 안양외고 학생들이 진행하고 있다.

중국어 번역은 중국 출신 엄마를 둔 다문화가정 학생이 진행했고 필리핀어 번역은 필리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천예린(고2) 학생과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국에 온 세시아(고3) 학생이 맡았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이중언어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 천예린 학생과 세시아 학생은 필리핀어로 교재를 번역 중인데 필리핀과 어떤 관계가 있나?
세시아(고3)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국에 와서 다른 내국인 학생들과 똑같이 안양외고에 진학했다. 필리핀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집에서 부모님과 필리핀어를 사용한다. 모국의 언어를 잊지 말자는 것이 부모님의 생각이다. 솔직히 나는 필리핀어를 일상적으로 사용만 했지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그래서 번역하면서 걱정도 많이 했는데 오히려 이 작업을 하며 필리핀어에 대한 지식이 더 넓어졌다." 

천예린(고2) "아빠 직업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필리핀에서 살았다. 필리핀에서 태어났고 중학교 때 한국에 왔다. 지금도 필리핀 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낸다. 필리핀에서 온 또래 아이들이 이 교재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무척 뿌듯하다." 

- 이 교재를 만들며 어떤 보람을 느끼나?
안수현(고3) "어린 시절에 몽골에서 살았다. 주중에는 국제학교에 다니고 토요일에는 엄마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토요한국학교에 참석했다. 두 학교를 다녀 보니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로 가진 것을 나누는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됐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한국어 교재를 만든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이 교재가 전국적으로 사용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서영(고3) "다른 친구가 하던 것을 대신 참여하게 되어서 처음에는 이 일의 의미에 대해 잘 몰랐다. 일본어 전공인데 일본어로 문법과 내용을 고치면서 어감 등을 '대충하면 안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충하면 결국 무슨 내용인지 모르게 된다. 나중에는 번역 일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교재를 만들고 내가 최선을 다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 앞으로의 계획은?
허재면(교사) "아직 교재를 아름답게 손보는 일이 남았지만 학교 홈페이지에 이 교재를 올려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수도권에는 중도 입국 청소년을 위한 기관이 몇 곳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교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필리핀어 등 각 언어를 할 수 있는 안양외고의 학생들이 이 기관에 가서 교재를 소개하고 또 실제로 중도 입국 청소년들이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어떻겠나. 아주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힘들게 만든 교재가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중도입국청소년, #한국어, #안양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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