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달부터 어린이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는 아트센터에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찾아오고 있다. 그리고 매회 그들이 빠져나간 자리엔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남겨진다. 군데군데 놓인 쓰레기통들을 점검하며 비울 때마다 나는 마음을 졸이며 손놀림과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구 뒤섞인 쓰레기 속에서 재활용품을 하나라도 더 골라내기 위해서다.
 
산더미같이 쌓여 더러운 오물과 마구 뒤섞인 쓰레기 속에서 재활용품을 모조리 골라내기는 불가능하다,
 산더미같이 쌓여 더러운 오물과 마구 뒤섞인 쓰레기 속에서 재활용품을 모조리 골라내기는 불가능하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원래 일이 분담되어 있기로는, 여자 미화원은 쓰레기를 봉투 째 수거해서 그대로 적재소에 놓기만 하면 되고, 그 후에 봉투 안을 헤집어 재활용품을 골라내고 분류하는 건 남자 미화원의 일이다. 하지만 산더미같이 쌓여 더러운 오물과 마구 뒤섞인 쓰레기 속에서 재활용품을 모조리 골라내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적재소에는 각종 용기 안에 남은 음료나 음식 찌꺼기를 씻어낼 수도 시설도 마땅치 않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내 눈에 보이는 재활용 쓰레기는 최대한 그 때 그 때 따로 골라낸 다음 눈치껏 탕비실에서 씻어서 종류대로 챙겨둔다. 일회용 컵과 캐리어, 페트병과 캔을 비우고 누르고 접어서 차곡차곡 모으면 전체 쓰레기 양의 반은 족히 줄어든다. 그렇게 정리된 쓰레기를 적재소 분류함에 넣을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건 공중도덕이나 양심 따위가 아니다.

쓰레기 정리할 때마다 생각하는 것

바로 '상상력'이다. 이렇게 엄청난 쓰레기가 함부로 버려지는 건 사람들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상상력'은 '창의성'과 함께 현대인의 미덕, 혹은 경쟁력으로 단연 손꼽힌다. 그런데 이 개념들은 불완전하게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대학이나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에 상상력과 창의성이 빠지지 않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상상력과 창의성을 길러줘야 한다고 믿는다. 두뇌와 감성 발달에 좋다는 놀잇감, 교재, 학습지 등을 사주고 전시회나 공연장을 데려가고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휴일마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아이가 엉뚱하고 기발한 모습을 보이면 창의적이라며 흐뭇해 한다. 흔히 남들과 다른 독특한 나만의 생각이나 방식을 갖는 능력, 혹은 기존에 없던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을 상상력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그런 상상력은 왜 중요할까? 무엇을 위해 필요한 걸까? 대부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이 도대체 뭐냐고 묻는다면 취향대로 저마다 대답은 다를지언정, 상상력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쓰여야 한다는 당위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꿈꿔보는 '더 나은 세상'의 비전 속에 소외되고 단절된 인간의 모습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며, 사람과 사람,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고 어우러져 함께 사는 모습을 그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상상력은 '관계'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상상력을 통해 나만의 튀는 개성과 고유한 사고방식을 뽐내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상상력이 개인이라는 '점'에서 확장되어 다른 생명체를 향한 '선'이 되고 그 선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가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름답다.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인정받은 작품들을 보면 '관계'에 집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마르셀 뒤샹, 르네 마그리트, 존 케이지 같은 독창적인 예술가들은 모두 창작자와 관객이 쌍방향으로 상호작용하는 관계와 그 관계에서 생성되는 의미를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위대한 디자인은 기존에 없던 독특한 형태를 창작하겠다는 열정에서 나온 게 아니라, 사용자와 제품의 관계, 제품과 다른 제품과의 관계, 제품과 환경의 관계를 깊이 고민한 끝에 탄생된 것이다.

성경은 '해 아래 새 것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매우 과학적이면서도 영적인 이 정언은 우리의 상상력이 '없는 것을 꿈꾸는' 쪽보다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쪽을 향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우리가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고 착각하는 것도 알고 보면 새로운 관계의 창조일 뿐이라는 뜻이다. 없는 것을 꿈꾸는 상상력은 교만해지기 쉽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상상력 부족으로 생기는 일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세계, 가보지 못한 멀고 먼 세계,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세계를 내 삶 속으로 불러들이려면 내 존재는 작아져야 한다. 상상의 나래를 펴고 미지의 세계로 가기 위해 나는 작고 가벼운 하나의 분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와 상관없지 않다는 깨달음, 모든 생명과 물질은 궁극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신비와 만나게 된다.

이런 상상력이 없으면 내 세계는 좁아진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범위만 중요하다. 내 몸뚱아리, 내 가방 속, 내 공간 외엔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도 아무렇지 않다.
 
상상력이 없으면 내 세계는 좁아진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범위만 중요하다.
 상상력이 없으면 내 세계는 좁아진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범위만 중요하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내가 일회용 플라스틱 컵으로 음료수를 사서 마시다가 남기고 버리는 행동이 이 세상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 종이컵을 쓰고 다른 쓰레기들 속에 던져 버리는 것이 인류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지, 자연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상상하지 못한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나의 편리, 그것 외에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건 상상력 부족이 아니라 그냥 이기심이에요'라고 누군가는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하지만 그 말이 그 말이다. 왜냐면 상상력은 결국 사랑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깊은 관찰에서 나오고, 관찰은 남다른 관심에서 행해지며, 남다른 관심은 사랑에서 생겨난다. 상상력을 만드는 원천은 비싼 교재, 유명한 전시나 공연, 신기한 체험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것들도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인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발명도 사랑 때문에 생겨난다. 불편을 해결해주고 싶어서, 안전하게 보호하고 싶어서, 기쁨을 주고 싶어서, 마음을 쓰고 연구할 때 상상력은 가지를 뻗고 창의는 꽃을 피운다.

하지만 슬픈 사실은 상상하는 삶과 상상의 혜택을 누리는 삶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상상하는 삶은 굉장히 귀찮고 복잡한 세계로 뛰어드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상상력의 결과를 누리는 삶은 아주 편리하고 단순하다. 누군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복잡한 기술문명 덕분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단순해지고 편리해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상상력을 예찬하고 상상력의 결과물은 반기면서도 나 자신이 '상상하는 자'로 살고자 하지는 않는다. 상상력이 풍부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세상 모든 것이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웃, 우리 사회, 우리나라,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 북극곰과 사막여우, 고래와 바다거북, 내가 죽고 난 다음 세상, 심지어는 우주 쓰레기까지 모두 내 삶 속으로 들어온다.

바다에 형성된 거대한 쓰레기 섬이나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때문에 죽은 가엾은 동물의 영상이나 사진은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쓰레기 문제는 모두가 알고 있다. 알고는 있으면서도 나의 삶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지식은 있으나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작용하면, 내가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와 죄 없는 생명의 죽음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직접 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지만 상상력에 의해 형성된 이 관계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게 되고 재활용품을 씻어서 말리고 따로 모아 분류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사랑을 강요할 수 없듯이 상상력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쉽게 버린 플라스틱이 미세한 알갱이가 되어 바다생물들에게 먹히고 그것이 여러 단계의 먹이사슬을 거쳐 내 식탁에 놓인 음식이 되어 내 입으로, 내 소중한 자녀의 입으로 들어온다는 명백한 사실조차 상상할 수 없다면, 가공할 재난 영화를 만드는 상상력 따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태그:#미화원, #쓰레기, #재활용, #상상력, #관계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99,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의 빛을 비추도록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