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 1회 방송 중 한 장면

2019년 8월 2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 1회 방송 중 한 장면 ⓒ tvN

 
유재석이 우리나라 대표 MC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언제부터인가 유재석이 나온다 하면 안 봐도 다 알 것만 같은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MC 유재석의 장점들은 이제 너무 익숙해졌고, 편안한 그의 이미지가 '낡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늘 함께해 익숙해져 버린 유재석의 이미지에 새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tvN <일로 만난 사이>이다.

이 프로그램은 진행에 유능한 MC 유재석을 황량한 들판에 풀어 놓는다. 진행을 하고 싶어도, 토크를 하고 싶어도, 일이 먼저이다 보니 일에 치어 그럴 틈이 없다. 토크라도 할라치면 함께 한 게스트가 뭔 녹차 밭에서 어색한 토크냐며 핀잔을 준다. 그를 하루 고용하신 주인장께서 '일이나 제대로 하라'며 호시탐탐 잔소리까지 한다.

유재석의 장기를 도무지 펼칠 수가 없는 이 환경. 하지만 '토크' 한번 제대로 하는 이 예능에서 보여주는 유재석의 모습은 신선하고 새롭다. 
 
 2019년 8월 2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 1회 방송 중 한 장면

2019년 8월 2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 1회 방송 중 한 장면 ⓒ tvN

 
강호동, 이경규도 겪은 

사실 다들 한 번씩 겪은 일이다. < 1박 2일 >로 세상 부러울 것 없던 MC 강호동도 겪은 침체기다. 강호동은 한결같았지만, 그가 잠시 자숙하던 시기 달라진 예능 트렌드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호령하듯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강호동을 튕겨냈다. 그에게 손을 내민 건 나영석 피디였다. 강호동의 < 1박 2일 > 전성기를 함께한 나 피디는 그와 함께 <신서유기>를 만들었다. <신서유기>는 시즌6까지 이어지고 있고, 스핀오프 시리즈인 <강식당>까지 큰 사랑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 속에서 강호동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대신, 여전히 에너지는 넘치지만 조금은 부족한 '형님' 캐릭터를 살렸다. 

이경규도 마찬가지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예능 전성기를 열었던 그는, MBC를 떠나 KBS <남자의 자격>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또, 집단 예능 트렌드가 질 무렵,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패널로 등장하며 활발하게 자신의 새로운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여기에 자신의 취미를 예능으로 연결한 <도시 어부>까지, 이경구는 끝없는 '도전'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런닝맨 9주년' MC는 역시 유재석 방송인 유재석이 25일 오후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열린 SBS 예능 <런닝맨> 9주년 기념 팬 미팅 '런닝구' 포토월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런닝맨 9주년' MC는 역시 유재석 방송인 유재석이 25일 오후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열린 SBS 예능 <런닝맨> 9주년 기념 팬 미팅 '런닝구' 포토월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반면 유재석은 <무한도전> <런닝맨> 등과 함께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여러 예능 프로그램의 부침 속에서도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한 프로그램에 오래 출연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기회도 적었다. 
그런 유재석을 구한 건 JTBC <투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정효민 피디였다. 그는 유재석을 도와주는 후배도 선배도 없이, 진행할 꺼리조차 없는 들판에 풀어놓았다. 

첫 회는 녹차 밭. 푸르른 찻잎만이 무성한 녹차 밭에서 이효리-이상순 부부와 함께 녹차잎을 따야 했던 유재석은 뜻밖에도 그간 예능에서 보여주었던 안정감 있는 진행을 팽개치고 안절부절못한다. 물론 종종 깨 발랄한 도발을 감행했지만. 안정된 진행의 대가인 유재석이, 단순 반복된 찻잎 따기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의외의 '포인트'다.

이경규가 그렇고, 강호동이 그랬듯, 이제는 '대가'가 된 듯한 유명인이 그들의 빈틈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 보일 때 사람들은 그들의 또 다른 면모에 새롭게 호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다. 그간 똑 부러지게 진행을 잘하던 유재석이 칫잎 따는 단순한 일의 반복에 어쩔 줄 몰라하며 녹차 밭 고랑을 헤맬 때, 그리고 진행할 꺼리가 없어 무기력해 하고, 이효리의 도발적인 질문에 어쩔 줄 몰라 하다 솔직한 자신의 가정사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때, 박제된 예능에서 유재석이란 사람이 끄집어 내어지는 듯한 감회를 느끼게 된다. 

2회는 그런 감회를 배가시킨다. 유재석만큼 말도 잘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일도 잘하고,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한 차승원의 등장. 그는 늘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리' 역할이었던 유재석을 졸지에 '톰'으로 만들며 뜻밖의 웃음을 제공한다.  

이거야말로 무모한 도전 
 
 2019년 8월 2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 1회 방송 중 한 장면

2019년 8월 2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 1회 방송 중 한 장면 ⓒ tvN

 
알고 보니 일도 잘 못 하는 유재석, 더위에 쩔쩔매며 어쩔줄 몰라하는 유재석을 보다 보니 문득 차승원과 함께 그 말도 안되는 연탄을 나르던 시절의 <무한도전>이 떠오른다. 아니, 그 시절의 <무모한 도전>말이다. '도대체 저게 무슨 예능이야' 라고 했던 초창기 <무도> 시절 유재석은 동료들과 함께, 차승원과 그 고구마 밭에서 하루종일 진땀을 흘리며 쩔쩔매듯 그렇게 예능을 했었다. 심지어 주인장의 대놓은 편파적 잔소리는 안 그래도 일 못하는 유재석의 면모를 한층 살려내며 예능의 대가가 아닌 유재석의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한다. 

거기에 더한 건 진짜 말 그대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듯 연방 맛있다를 되풀이하며 먹은 점심 후 정자에서 차승원과 나눈 '나이 듦'의 이야기이다. 늘 예능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애쓰던 유재석이 이제 오십 줄에 든 차승원과 함께 오십이 되어가는 시절의 자기 속내를 터놓는 장면이야말로 <일로 만난 사이>의 백미였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 그저 세월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을 좀 더 편하게 바라보고 인정하게 되는 것, 그래서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것이라는 그 '평범한' 진리'를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두 '베테랑'을 통해 전해 듣는 울림은 또 다르다. 천하의 유재석이 이제서야 자신이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 내려놓고 편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진솔한 고백은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이 시끄러운 시대에 그래서 더 담백하게 오랜 울림으로 전해진다. 

<일로 만난 사이>는 묘하다. 일하느라 유재석이 잘하는 '토크'할 사이가 없다. 하지만 일하다 중간에 먹는 새참이 꿀맛이듯, 일하다 중간에 서로 잠깐씩 나누는 대화의 깊이와 무르익음이 장난이 아니다. 아마도 스튜디오에서 이효리와 차승원을 초대해 '토크'를 했다면 이런 대화가 등장했을까. 나이 듦과 내려놓음에 대한 이야기는 녹차 밭과 고구마 밭이어야 가능한 것이다. 거기에 유기농 녹차와 바다를 품은 고구마를 생산해내는 진득한 땀의 역사는 어떻고. 삶의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난 뒤에 먹는 밋밋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짜릿한 찬 물 한 바가지처럼. 일 속에서 드러난 자연스러운 유재석과 게스트들의 진솔한 모습과 대화는 범람하는 예능 속의 또 다른 '해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일로 만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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