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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일기'를 써야 하는데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린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동료가 "내일 기획서 써야 하는데, 휴~"라고 말하며 고통스런 표정과 한숨을 지었다.

글을 쓸 때면 뇌를 쥐어짜는 고통을 맛 보기도 하고 가끔은 구토가 나올 것처럼 막다른 지점에 놓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글을 쓴다. 글을 잘 쓰고 싶다. 이 글은 강원국 작가가 충남 홍성에 내려와 강연했던 내용 '말과 글로 행복한 삶'의 부분을 발췌해서 내 생각을 곁들여보았다.
 
'말과 글로 행복한 삶'이란 주제로 강연중인 강원국 작가
 "말과 글로 행복한 삶"이란 주제로 강연중인 강원국 작가
ⓒ 홍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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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들이 읽고 들으면서 살아요. 말하고 쓰지 않죠. 남의 말을 듣고 남의 생각을 읽고 거기에 맞춰가면서 살죠.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글쓰기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자기가 없어요. 내가 없어요. 내가 없이 살아요. 관계 속에서 그냥 살아요."

나의 글쓰기 경력을 조금 살펴보면 학창 시절과 대학생 시절까지 주로 일기였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하얀 노트에 연필로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누가 볼까 열쇠를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일기장을 꽁꽁 숨겨두었던 기억이 있다. 일기는 나만 볼 수 있는 글이었고, 남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글이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하루에 일어난 사건을 시간별로 쓰고, 정해진 형식에 맞춘 글쓰기를 했다. 내 생각은 필요 없는 글이었다.

"말하고 쓴다는 것은 내가 주체로서 뭔가 중심에 서는 일이에요. 그럴 때 뇌는 좋아해요. 뇌가 세상에 태어나 맨날 남의 말 듣고 남이 시키는 거 하고 자기는 남의 영향만 받고, 남의 말에 설득당하고, 내가 없이 살길 원하지 않아요. 내가 누군가의 대상으로 살고 싶지 않거든요.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거든요."

남편의 제안으로 나 혼자만 보는 일기가 아닌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역신문에 나의 '시골살이' 이야기를 연재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는 글쓰기가 뭔지도 잘 몰랐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조금씩 쓰던 중이어서 쉽게 생각했다.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쓰고 고치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무엇을 써야할지, 어떻게 써야할지.' 답이 없는 문제를 갖고 씨름하는 기분이란.

매번 글을 쓰면서 '그만한다고 해야지~ 왜 사서 고생인가!' 하는 마음이 계속 올라왔다. 그래도 마감일에는 글을 보냈다. 그리고 신문에 게재된 나의 글을 보면서 그동안 글쓰기의 고통 때문에 몸부림쳤던 마음이 모두 녹아내렸다. 뭔가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고 마음이 뿌듯했다. 그때 처음 글쓰기의 매력을 맛보았다.

"50살이 넘으니 직장에서 나와 누가 어디를 보라고 하는 사람이 없고, 내가 봐야될 때가 없어요. 이리저리 보다보니 제가 관심 있는 것을 찾았어요. 글쓰기. 그동안은 남의 말을 듣고 글을 썼어요. 읽고 들은 거죠. 그건, 쓴 게 아니에요. 내 글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게 글쓰기에요."

글쓰기의 매력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밥벌이를 위한 직업을 찾아 나섰다. 삶의 주인 되는 기분은 뒤로 한 채 알량한 월급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직장을 구했다. 직장에서는 강원국 작가의 말처럼 읽고 듣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내 생각을 만들고 표현하기 보다는 리더의 생각을 읽어내고 열심히 들어가며 행동했다.

덕분에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도 해주고,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몇 년 후에도 같은 자리일 것만 같았다.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는 죽을 때 관속에서 후회할 것 같았다. 결국 월급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른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외치며 겉으로는 당당히, 하지만 속으론 두려운 채로 안정적인 선을 넘었다.

"관찰력은 자기가 보고 싶은 데를 보는 거예요.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자기가 진짜 관심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뚫어져라 보는 거예요. 그게 꽂히는 거죠. 어떤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람에 대해 알려고 하고 저는 이런 게 다 관찰력이라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일종의 관점이거든요.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에요."

강원국 작가는 50살이 넘어서 관심 있는 것을 찾았다는데, 나는 40살이 넘어서 나의 관심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정말 누가 어디 보라는 데가 없고, 가정에서도 배려를 해서 맘껏 내가 눈이 가는 곳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재미있는 것, 내 가슴이 뛰는 것을 마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게 돈이 되겠어!' '이 나이에 이걸 지금 시작해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나의 관심을 가로막곤 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러다보니 두려움의 말들이 내 단단한 생각에 항복하곤 했다. 정말 내가 보고 싶은 데를 보고 있으니 할 말도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많아진다.

내가 경험을 통해서 얻었던 나의 생각들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강해진다. 그런데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말보다는 글이 어려웠다. 어린 시절부터 한글을 배우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착각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결국 글쓰기의 '글'만 들어도 손사래를 치며 치를 떤다.

"글을 쓸 때 글감을 찾고, 글감을 만들려고 하면 이미 늦어요. 우리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에 하나죠.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 뭔가 만들어놓은 것을 써먹는 시간이에요. 만들어 둔 게 없으면 못 써요. 못 쓰는 것을 어거지로 쓰려니까 뭘 막 찾고, 머리를 쥐어뜯는 거예요."

글이 쓰고 싶어도 막히는 지점이 바로 글을 쓸 때 글감을 찾는다는 것이다.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그때 써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만으로 글이 완성되는 것은 극히 드물다. 우리는 그만큼 글쓰기에 대해 모르고 있다. 한 편의 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나 글쓰기의 특성을 모른 채 혼자 노트북의 흰 화면과 싸우고 있다. 이런 싸움은 글쓰기를 하려면 응당 거쳐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강원국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서 글을 좀 더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 방법은 바로 '메모'였다. 자신도 1700개 정도의 메모를 가지니까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단다. 그 말이 내 마음속에서 '유레카!'를 외치게 했다. 늘 완전한 글을 쓰려고 했던 무거운 욕심을 내려놓고 그때그때의 메모라면 충분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글쓰기를 남과 비교하니까 힘든 거예요. 내 과거와 비교하세요. 반드시 발전해요. 후퇴하는 법은 없어요. 잠깐 후퇴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길게 보면 진보하게 되어 있어요.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면 뿌듯한 거예요."

지역신문에 내 글을 연재한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그 글을 다시 보면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은 없나봐' 하고 스스로를 그렇게 단정 짓곤 했다. 그런데 3권의 책을 쓴 강원국 작가가 오래전 자신이 쓴 글도 허접했다고 인정하는 모습에서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계속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기쁨을 얻고, 내년에는, 5년 후에는 달라져 있을 나를 상상하며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5년 전의 글은 부끄럽지만 그동안에 틈틈이 써두었던 글을 다시 읽노라면 분명히 성장한 나를 볼 수 있다. 다만 '누구와 비교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사실 나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비교하는 대상을 쉽게 놓지 못한다. 이미 저 앞에 가고 있는 사람과 비교하며 지레 겁먹고 글쓰기를 포기하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내 속마음인 것을. 그때마다 '예전의 너를 봐, 지금 이순간도 넌 성장하고 있는 걸' 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준다.   

"지금은 뭘 알고 싶고, 호기심이 차 있고, 지금 너무 행복해요."

'왜 글을 써야 하는가?'의 답은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 행복이란 놈이 무언지 몰라 방황하는 사이 우린 애꿎은 파랑새만 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행복이란 것은 내 생각을 갖고, 내 말을 하고, 내 생각대로 사는 것뿐인데 말이다.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행복을 느끼는 부분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커다란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 멋진 집이 있어야 행복하겠지만 누군가는 숲속에 자신이 지은 오두막 한 채면 행복하다.

글쓰기는 내 생각을 만드는 아주 좋은 도구이다. 글을 써보지 않으면 이것이 내가 그냥 읽고 들은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한 것인지, 정말 내 것인지 모른 채로 떠들어댄다. 그런 말들은 보통 자기 생각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자기 생각이 아닌 글은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생각은 술술 잘 써진다.

글을 쓰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걸 궁금해 하고 있었다니!' 스스로 놀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게 질문을 쫓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시간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나란 존재가 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바로 몰입의 순간이다. 몰입하는 순간은 '행복'도 잊는다. 몰입의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때가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당분간은 강원국 작가의 강연이 동기부여가 되어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그런 동기부여는 약발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도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글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마주할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내일이 설렐 수 있다면 힘들더라도 조금은 더 참아낼 힘을 얻은 것 같다. 오늘도 설레는 하루를 보내며 메모를 한다. 나도 메모가 1000개가 넘어가면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태그:#강원국, #글쓰기, #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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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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